달러화 초강세에도 수출실적↓… 동조화 현상은 옛말
원화 약세로 제조원가 증가, 매출⋅영업이익 동반하락
엔저도 변수, 日과 겹치는 품목 많아 가격경쟁력 저하

#1 “예전엔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출이 늘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발달하면서 과거의 프레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 지난 4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

#2 “수출 중소기업의 가장 큰 수출 리스크로 절반 이상(54.9%)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꼽았으며, 이어 ‘환율변동’(44.4%)이라고 답하면서 올해 수출 환경이 ‘나쁘다’고 응답한 곳이 5.2%에서 26.7%로 21.5%p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 지난해 12월 중기중앙회 발표한 ‘2023년 中企 수출전망 및 무역애로 실태조사’ 결과   

#3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5월1일부터 5월31일까지 한국 투자자들의 일본 주식 순매수 규모는 3443만 달러에 달한다. 4월부터 50만 달러 순매수로 돌아섰다. 5월 접어들면서 폭풍 매수가 시작됐다. 50배나 증가했다. 실제로도 일본 증시는 활황이다.
- 본지 9면 신기주의 기업인사이트 칼럼 ‘일본 아식스 부활 나래’ 중 발췌

지난 12일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15개월 이상 무역적자가 이어진 것은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12일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무역수지는 작년 3월부터 지난달까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15개월 이상 무역적자가 이어진 것은 1995년 1월~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1년 사이에 한국 수출 구조의 특이성이 급격하게 변이되고 있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큰 도움이 된다는 ‘고환율 특수’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에 큰 치명타를 받은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이다. 또한 초유의 엔저(엔화 가치 하락) 현상으로 일본 제품과 경합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갈수록 곤두박질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환율에도 업종과 수출입 기업 불문하고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어닝 쇼크(실적 충격)에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전까지 환율이 상승하면 중소기업의 수출량이 늘고 수익이 증가하는 ‘동조화’ 현상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게 아니냐는 우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소기업계는 환율 급등이 중소기업 수출 경쟁력 제고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과 기대를 했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해 8월 공동 발표한 ‘환율상승의 중소기업 수출 영향과 정책과제’ 이슈 리포트에 따르면 “환율상승은 수출 중소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채산성 개선과 수출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며 실제 2008년 금융위기부터 2021년까지의 원·달러 환율 추이와 중소기업 수출액 추이를 비교 분석한 바 있다. 수치상으로 2008년부터 2021년까지 환율 추이와 중소기업 수출액은 견고한 동조화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있다. 고환율이 수출 실적과 수익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대폭 줄어드는 ‘이상 징후’가 감지되는 것. 지난해 역사적인 킹달러(달러화 초강세)로 원화가 크게 약세화됐지만 한국경제의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실제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 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4.7%, 순이익은 17.31%나 줄어들었다. 그 여파로 올해 1분기 주요 상장사들의 어닝 쇼크도 속출했다.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기업들의 특성상 수출 부진은 무역수지 15개월 연속 적자라는 뼈 아픈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시간차를 두고 수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과의 하도급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수익성에 큰 악재로 작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들어서도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의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고환율 특수를 누리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 실험기기를 수출하는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해외 거래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실적이 60%나 감소했다”며 “글로벌 시장의 수요가 급감한 데다가, 제조원가가 함께 올라가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뒤바뀌는 환율⋅수출 역학관계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해 8월 공동으로 이슈 리포트를 발표하면서 “환율 변동에 대응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환리스크 대응 지원과 함께 강달러 상황이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시장을 면밀히 살펴 명확한 정책 시그널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고환율 특수 호재가 실종되는 이유가 뭘까.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진단한 대로 글로벌 공급망이 더욱 촘촘해지면서 환율과 수출의 역학관계가 뒤바뀌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중소기업은 대부분 제품 생산을 위해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수출하고 있다. 이런 수출 구조에서 원화 약세라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원자재와 중간재를 사와야 한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논리다.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과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중소기업들의 제조원가 부담을 더욱 부추키고 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영향으로 국내 기업의 수익성 및 안정성 지표가 악화했다는 ‘2022년 기업경영분석(속보)’ 분석을 지난 13일 내놨다. 기업의 외부 차입이 늘면서 기업들의 부채비율은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업 3곳 중 1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기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좀비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경고다.

특히 한은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운전자금 수요 증가 등으로 외부 차입이 증가함에 따라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 모두 상승했다”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원자재 가격 급등 부담으로 수익성 악화의 늪에 빠진 중소기업계는 올해 10월 시행되는 ‘납품대금 연동제’의 시장 안착 중요성을 강조한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대·중소기업간 수위탁거래에서 제값 받기와 공정거래를 정착시키고 수입 원자재로 중간재를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원가 부담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정부⋅국회, 현장 지원책 마련 시급

한국 수출 중소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또 다른 변수가 있다. 바로 일본의 엔저 기조의 장기화다. 엔저는 우리 수출 중소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는 긴밀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한일 양국의 수출 품목 가운데 겹치는 제품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한일 경제 구조 탓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수출경합도는 69.2로 한국과 미국(68.5), 한국과 독일(60.3), 한국과 중국(56.0)보다 높다. 수치가 100에 근접할수록 경합도가 높다는 뜻인데 한·일 경합도는 수출시장에서 어느 국가보다 치열한 경쟁을 한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석유화학·철강·자동차 등 일본과의 경쟁이 치열한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경합에 따른 타격을 예상했다. 또한 지난해 1~3분기 엔·달러 환율이 1%p 오를 때마다 수출 물량이 0.2%포인트 감소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주 <중소기업뉴스> 기업인사이트(9면)에 게재한 일본의 아식스 성공 분석 칼럼과 같이 올해 들어 갑자기 국내 투자자들이 앞다퉈 일본 주식을 대거 사들일 만큼 인기를 끄는 이유도 일본의 △엔화가치 △밸류에이션 △제조업 경쟁력 등의 강점이 도드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일의 유사한 경제 구조와 원화·엔화 저평가의 온도차 만으로 양국 기업의 실적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고 속단할 수도 없다. 일본의 수출 기업들 역시 해외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해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기본 구조는 한국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원자재 가격 급등의 폭탄을 일본 기업도 피할 수 없었다. 실제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기업인 도요타는 지난해 순이익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와 비교해 20%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다만 한국이 일본과 비교해 수출 기업의 비중이 더 크고, 원자재 가격 급등에 훨씬 취약한 구조가 우리기업의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GDP 가운데 수출 비중은 2021년 기준 35.6%로 일본의 12.7% 보다 2배 넘게 높았다. 아울러 한국 경제의 중화학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보다 높기 때문에 국제 원유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 가격 변동은 한국에만 더욱 큰 악재가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올해 수출 시장은 반도체 부진 여파까지 덮치면서 한국의 대 중국 수출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하는 위기 상황”며 “역사적인 원화 저평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수출 중소기업의 실적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정부·국회가 현장이 원하는 정책과 지원을 적시에 마련해 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