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 공정거래법 산책(6)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중소포장’은 대기업인 ‘대형마트’에 포장지를 납품했다. 중소포장은 여러 업체로부터 종이를 값싸게 구매해 포장지를 제조했는데, 어느 날 대형마트로부터 앞으로는 종이를 대형마트 대주주의 아들 김철수가 설립한 ‘대형제지’로부터 구매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대형제지의 종이는 품질이 좋지 않고 다른 업체보다 값도 비쌌기 때문에 중소포장은 그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대형마트는 대형제지로부터 종이를 사지하지 않으면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며, 대형제지와 거래하면 포장지 납품가를 올려주겠다고 했다.

중소포장은 대형마트의 제안을 거절하면 대형마트와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형제지로부터 종이를 비싸게 매수했고, 대형마트는 약속대로 포장지의 납품가를 올려줬다. 그런데 얼마 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중소포장이 대형제지를 부당하게 지원했다며 중소포장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판사 : 공정위는 중소포장이 대형제지로부터 종이를 비싸게 매수한 것이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부당한 지원행위라고 봤네요.

중소포장 : 억울합니다. 저희는 갑질의 피해자일 뿐입니다. 저희는 매출의 90% 이상을 대형마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가 거래를 중단하면 저희는 망합니다. 이번 사건의 실체는 대기업인 대형마트가 중소기업인 중소포장을 이용해서 대형마트의 계열회사인 대형제지를 지원한 것입니다. 대형마트가 과징금을 내야죠.

공정위 : 대형마트는 부당지원행위를 인정하고 과징금을 납부했습니다. 공정거래법은 사업자가 ‘다른 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중소포장이 대형제지를 지원한 행위 역시 공정거래법이 금지하는 부당지원행위입니다.

중소포장 : 중소기업이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게 위법하다고요?

공정위 : 예, 공정거래법을 읽어보세요.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2022년 여름 서울중앙지법은 계열사 부당지원행위 등으로 기소된 대기업 회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최근 대형 피자 프랜차이즈의 회장은 치즈 유통 단계에 다른 업체를 끼워 넣는 등의 방법으로 부당지원행위를 했다며 유죄판결을 받았죠. 이제 회사 경영진이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기소됐다는 뉴스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당지원행위가 무엇이기에 문제되는 것일까요?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또는 ‘다른 사업자와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함에도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부당지원행위라는 단어만 보면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대해서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당초 입법취지와 달리 규제 대상이 넓고, ‘부당한’ 지원행위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는 것이죠.

부당지원행위 금지의 도입 경위

과거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장려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대기업집단이 형성됐습니다. 대기업을 통해 짧은 시간에 큰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지만, 경제력 집중이라는 부작용이 생겼죠. 정부는 1986년 지주회사의 설립금지, 상호출자의 금지, 출자총액의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력 집중의 억제’ 규정을 공정거래법에 신설했습니다. 위 규정은 경쟁제한 효과를 개별적으로 따지지 않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집단을 일률적으로 규제한다는 비판이 컸지만, 소위 재벌로 인한 경제력 집중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 특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입어 도입됐죠.

그러나 이후에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재벌이 내부거래를 통해 초기시장을 확보하고, 이후 그룹의 브랜드를 바탕으로 관련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확장해나간다는 것이었죠. 이에 정부는 1996년 대기업의 내부거래를 통한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에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을 신설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국회 입법과정에서 대기업의 계열회사에 대한 지원행위만을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재계의 큰 반발에 부딪치게 됩니다. 또한 중소기업 역시 다양한 목적에서 부당지원행위를 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죠.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이 결국에는 모든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일반 불공정거래행위의 한 유형으로 도입됩니다.

부당지원행위의 성립요건

부당지원행위 금지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지원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앞서 본 이유로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은 대기업집단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자에게 적용됩니다. 지원 객체 또한 단순히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중소기업의 다른 중소기업과의 거래가 ‘지원행위’에 해당할 수 있죠.

문제는 이렇게 보면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의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법원은 ‘부당성’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지원주체에 ‘지원의도’가 필요하다고 봐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의 적용범위를 제한합니다. 대법원은 부당지원행위의 부당성을 ‘지원객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저해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후 공정위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나아가 지원주체의 지원의도까지 공정위가 입증해야 한다고 봤죠.

앞서 사례에 대입해 보면, 공정위는 중소포장의 지원행위로 대형제지가 속한 종이 공급 시장의 경쟁이 저해됐다는 점, 나아가 중소포장에 지원의도가 있었다는 점까지 증명해야 중소포장을 부당한 지원행위로 제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해석은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이 남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반대로 정작 규제돼야 할 대기업의 계열회사에 대한 지원행위가 규제되지 않는 부작용 역시 생겼습니다. 이는 2013년 공정거래법에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되는 계기가 됐죠.

갑의 요구로 인한 부당지원행위의 경우

중소포장은 억울할 수 있습니다. 갑인 대형마트의 요구에 응했던 것뿐이고 대형제지에 대한 지원과정에서 특별한 이익을 얻지도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중소포장의 지원행위로 대형제지가 이익을 얻었고, 그로 인해 종이제조 시장에서의 경쟁이 저해됐으며, 중소포장에 지원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역시 유사한 사례에서 중소포장의 행위가 부당지원행위로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기업의 요구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계열회사를 지원한 경우, 중소기업은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의 당초 입법취지가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갑의 요구로 갑의 계열사를 지원한 을에게 어느 정도의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할지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 위 사례는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0두36267 판결, 대법원 2022. 9. 29. 선고 2019두53419 판결 등을 바탕으로 필자가 창작한 것임..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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