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0대 아우르는 패션템 자리매김
뉴트로 힘입어 어닝 서프라이즈 지속
잘나가던 시절 향수 자극, 소비 촉진

패스트 팔로어 전략 실패, 실적 악화
디지털 마케팅 등 미래브랜드 접목
오리지널 고수, SPA제품과 차별화

CEO 랄프 로렌
CEO 랄프 로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랄프 로렌. 요즘 2030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 스타일이다. 50년이 넘은 브랜드가 2030 세대의 최애 패션템이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심지어 6070까지도 랄프 로렌을 모르지 않다. 랄프 로렌은 60대한텐 클래식이고 40대한텐 젊음이고 30대한텐 멋이고 20대한텐 쿨이고 10대한텐 하입이다. 하입은 지금 뜨는 핫하다는 의미다. 뉴진스의 <하입보이〉처럼 말이다. 랄프 로렌은 올타임 페이버릿(all-time favourite) 아이템이 되고 있다.

덕분에 랄프 로렌은 매 분기 실적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랄프 로렌은 2023년 5월 발표된 2023년 1분기 실적 발표에서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랄프 로렌은 1분기 매출로 15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화로 2조400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1.14% 성장했다. 시장 전망치였던 14억7000만달러를 5% 가까이 상회했다.

1분기 주당순이익은 0.9달러였다. 전년 동기 대비 83.67%나 증가했다. 시장전망치는 0.61달러였다. 덕분에 랄프 로렌 주가는 6월 29일 현재 122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82달러 선이었다. 랄프 로렌의 시가 총액은 80억달러 육박한다.

상류층 패션 이미지 굳힌 폴로

랄프 로렌이 맨 먼저 주목한 패션 아이템은 넥타이였다.
랄프 로렌이 맨 먼저 주목한 패션 아이템은 넥타이였다.

랄프 로렌은 1967년 패션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 뉴욕에서 창업했다. 랄프 로렌이 맨 먼저 주목한 패션 아이템은 넥타이였다. 사실 넥타이는 기능적으론 별 쓸모가 없다. 냅킨도 아니고 단추도 아니다. 대신 넥타이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표식이다. 그래서 당시엔 2030도 4050처럼 넥타이를 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랄프 로렌은 이런 넥타이의 본질을 꿰뚫어봤다.

그래서 넥타이를 유달리 더 크게 만들었다. 비싼 해외 원단을 썼다. 폭이 유난히 넓고 화려한 랄프 로렌의 넥타이는 2배 이상 비쌌지만 비싸서 더 잘 팔렸다. 남과 나를 구분하고 나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행위가 패션의 본질이라는 걸 랄프 로렌을 잘 알고 있었다. 넥타이 하나로 세상을 뒤집어놨다.

다음은 폴로 셔츠였다. 폴로 셔츠는 지금까지도 랄프 로렌의 효자 상품이다. 랄프 로렌은 몰라도 폴로나 폴로 랄프 로렌이라는 셔츠 브랜드는 알고 있는 소비자가 많을 정도다. 사실 폴로 셔츠는 피케 셔츠의 하나일 뿐이다. 피케는 프랑스어로 면직물을 뜻한다. 피케 셔츠는 원래는 운동복이었다. 프랑스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가 즐겨 입었다. 지금까지도 악어 무늬 로고로 유명한 라코스테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라코스테 덕분에 테니스용 피케 셔츠는 일상복으로도 유행하게 됐다. 스포츠복이 일상복이 된 거의 최초의 사례였다.

랄프 로렌도 피케 셔츠에 주목했다. 가죽 제품처럼 원재료 가격은 비싸진 않아서 수익률이 높으면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대량 공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넥타이였다. 그런데 랄프 로렌이 주목한 스포츠는 테니스가 아니었다. 폴로였다. 4인 1조로 말을 타고 공을 차는 기마 하키 경기였다. 폴로는 전형적인 상류층의 플렉스 스포츠다. 일단 말을 탈 줄 알아야 한다. 말이 있어야만 한다. 쉽게 말해 말도 안 되게 부자여야 할 수 있는 스포츠다. 랄프 로렌이 폴로를 자기 브랜드의 시작점으로 삼았다는 건 랄프 로렌 브랜드의 본질을 보여준다.

랄프 로렌은 프레피룩의 대명사로 통한다. 프레피룩은 미국 상류층의 2세와 3세들이 즐겨 입었던 스타일이다. 상류층 가문의 자제들도 살기는 저택에 살아도 대학은 다녀야 한다. 이들은 학교 친구들과도 가문의 어르신들과도 다르게 보이고 싶어했다. 결국 셔츠, 피케셔츠, 자켓, 니트, 바지, 벨트, 넥타이, 양말까지 여러 가지 패션 아이템들을 겹쳐 있어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집안에 이런 질 좋은 패션 소품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분과 재력을 과시했다.

랄프 로렌은 프레피룩을 하나의 패션 제품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가슴에 폴로 로고까지 붙였다. 스포츠 웨어를 평소에 입는다는 건 부유함 뿐만 아니라 젊음과 건강까지도 과시할 수 있는 패션 스타일이다. 폴로 셔츠를 입고 땀에 살짝 젖은 채 강의실로 뛰어들어왔다면 이건 폴로나 테니스를 하고 공부하러 왔다는 뜻이다. 시쳇말로 재수 없을 수 있다.

‘위대한 개츠비’로 글로벌 브랜드 등극

랄프 로렌 제품들
랄프 로렌 제품들

그렇지만 이런 걸 재수 없어 하면서도 차라리 재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 패션 소비자의 이중성이다. 랄프 로렌은 넥타이와 폴로 셔츠에 이어 프레피룩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랄프 로렌에서 막 사 입은 프레피룩은 진짜 프레피룩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랄프 로렌은 아메리칸 클래식이 된다. 아메리칸 클래식이란 결국 미국이 패권 국가로 승승장구하던 시기 미국 엘리트층이 즐겨 입던 패션이다. 1960년대 미국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4.2%였다. 중국의 2010년대 경제성장률 못지 않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경제 성장률은 1970년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오일쇼크가 겹치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1974년 마이너스 0.6%까지 주저 앉는다.

이때 랄프 로렌을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어준 영화가 개봉한다.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다. 지난 2013년 개봉한 리나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의 원조격이다. 원조 <위대한 개츠비>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랄프 로렌을 입고 등장했다. 역설이다. 극장 밖 경제 상황은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관객들은 랄프 로렌 프레피룩을 차려 입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아메리칸 클래식은 향수다. 패션은 트렌드가 될 때만큼 향수가 될 때도 강력한 소비를 촉진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잘 나가던 시절의 향수를 충족시켜주는 패션 아이템에 돈을 쓴다. 동시에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에 돈을 쓴다. 클래식이면서 클래스인 것이다.

2020년대 랄프 로렌의 부활은 아메리칸 클래식의 회귀만으론 설명할 순 없다. 과거에 대한 향수만으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수는 없다. 모든 패션 브랜드는 미래 트렌드를 선점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런 점에서 랄프 로렌은 너무 오랫 동안 클래식에 머물러 있었다. 그건 창업자인 랄프 로렌이 너무 오래 CEO 자리를 지켜온 탓도 있었다.

랄프 로렌은 2015년까지 48년 동안 랄프 로렌의 CEO였다. 패션계에선 매우 드문 경우다. 조지오 아르마니나 랄프 로렌처럼 혁신에 성공한 창업자이자 전설적인 디자이너 정도가 장기 집권에 성공한다. 단순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은 재능이 갈리면 자리도 갈린다.

랄프 로렌도 세대 교체를 시도했다. 2015년 랄프 로렌이 물러나고 후임 CEO로 스테판 라르손을 선임했다. 스테판 라르손은 H&M 출신으로 SPA 브랜드 전문가였다. H&M 뿐만 아니라 미국의 SPA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갭도 회생시켰다. 이른바 패스트 패션이라고 불리는 SPA 브랜드는 싸게 만들고 빠르게 만들어서 유행을 제빨리 카피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쓴다. 그런데 창업자 랄프 로렌은 이런 스테판 라르손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싫어했다. 랄프 로렌에게 랄프 로렌은 언제나 퍼스트 무버여야만 했다.

창업자와 CEO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갔다. 이사회가 둘 사이를 중재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스테판 라르손의 패스트 팔로워 전략과 랄프 로렌의 퍼스트 무버 전략은 양립하기 어려운 비전이었다. 결국 2017년 스테판 라르손은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때 이미 랄프 로렌의 매출은 매년 10억 달러 이상씩 감소하고 있었다. 탑매니지먼트 사이의 비전 갈등도 문제였지만 진짜 문제를 방치된 브랜드 노후화였다.

랄프 로렌은 10대와 20대 소비자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그리고 틱톡 같은 디지털 마케팅 미디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랄프 로렌 산하엔 여러 브랜드들이 있다. 폴로 랄프 로렌은 중저가 브랜드다. 랄프 로렌 칠드런은 아동용이고 랄프 로렌 컬렉션은 여성이다. 랄프 로렌 퍼플 라벨은 고가 브랜드다. 여기에 폴로 골프도 있다. 게다가 대형 유통 체인을 통해 저가 도매 물량까지 유통되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많이 훼손됐다.

생활용품 업체 출신 CEO 선임

랄프 로렌은 미국 남성 의류 브랜드들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프레피 룩인 '아이비릭 스타일'
랄프 로렌은 미국 남성 의류 브랜드들과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프레피 룩인 '아이비릭 스타일'

랄프 로렌 이사회는 2017년 후임 CEO로 프록터앤갬블 출신의 퍼트리스 루벳을 선임한다. 패션 브랜드 출신이 아니라 생활용품 업체 출신을 최고경영자로 선택한 것이다. 미국 패션계는 퍼트리스 루벳에게 매우 비판적이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션 기업의 CEO로 탈취제 팔던 기업 출신이 왔기 때문이었다. 퍼트리스 루벳은 패션업계를 바라보기보단 대중 소비자를 먼저 봤다. 루벳은 랄프 로렌을 2030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되도록 만드는데 집중했다. 우선 디지털 마케팅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메타버스 기업 로블록스와 손잡고 메타버스 랄프 로렌 콜렉션을 만들었다. 스냅챗과 손잡고 자신의 아바타에 랄프 로렌을 입혀볼 수 있는 비트모지를 개발했다. 스냅챗 카메라로 랄프 로렌 로고를 찍으면 랄프 로렌 온라인 콜렉션을 볼 수 있게 연결했다.

유통도 나이키식 D2C 방식으로 재편했다. 온라인에서 보고 다이렉트로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저가 도매 판매가 근절됐다. 소비자가 패션과 호흡하는 방식으로 패션 소비자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오프라인 매장에도 스마트쉘프라는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비대면 소비를 선호하는 제파 세대의 취향을 반영한 판매 방식이었다.

랄프 로렌 카페도 만들었다. 경험을 중시하는 제파 세대가 랄프 로렌 브랜드를 입고 마시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이런 공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산됐다. 102030 소비자들한테 랄프 로렌이 점점 새롭고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창업자 랄프 로렌과 전임자 스테판 라르손은 랄프 로렌의 정체성을 놓고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서로 자신의 과거 성공 방정식을 돌려감기하려고 했다. 퍼트리스 루벳은 랄프 로렌이 무엇인지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정해주는 것이라는걸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랄프 로렌은 5060한텐 향수고 3040한텐 젊음이고 1020한텐 하입한 브랜드로 재정의됐다.

이런 퍼트리스 루벳의 전략이 가장 적중한 시장은 한국이었다. 랄프로렌 매출에서 한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아래에서 23%까지 빠르게 늘어났다. 최근 2년 동안 한국 시장의 성장세는 각각 18%와 36%에 달한다.

특히 영업이익은 60%나 늘어났다. 한국 2030 세대의 뉴트로 열풍도 크다. 아메리칸 클래식도 뉴트로의 하나다.

여기에 경쟁자인 SPA 브랜드가 부진해졌다. 점점 더 소비자들은 빠른 카피 제품보다 오리지널에 열광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디지털 흡수력이 높은 시장이다. 랄프 로렌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했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흐름도 한몫 했다. 한국 역시 고속 성장기에서 빠르게 장기적 저성장기에 접어들고 있다. 랄프 로렌이 처음 등장했던 시기의 미국 경제와 닮아 있다.

위대한 개츠비 / 애니 홀 속 폴로의상
위대한 개츠비 / 애니 홀 속 폴로의상

랄프 로렌의 클래식과 클래스가 한국 소비자들이 지금 패션에서 원하는 것이란 의미다. 2030 소비자들은 가장 어려운 경쟁을 뚫고 가장 적게 벌고 있는 세대다. 어렵게 얻은 성과를 숨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숨길 이유도 없다. 그렇게 클래식과 클래스가 교차하게 된다. 중저가 무신사와 차별되는 랄프 로렌이 팔리는 교차점이다.

게다가 랄프 로렌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온라인 직구를 막았다. 한국 랄프 로렌의 가격이 더 높아도 동일 제품을 해외에서 직구할 방법은 없어진 것이다. 과거 랄프 로렌이 넥타이를 더 비싸게 팔았던 것과 같은 전략이다. 비싸도 비싸서 사는 것이다. 가격 자체가 나를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2022년 한국에서 미국 본사로 송금한 수익만 1300억원이 넘는다. 랄프 로렌 어닝 서프라이즈는 한국이 열일한 결과다. 덕분에 2023년 랄프 로렌 매출은 65억달러가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랄프 로렌이 은퇴하면서 기록한 70억달러 매출에 근접하는 수치다. 한국이 열일한 결과다. 한국의 클래스다.

- 신기주 더 밀크 코리아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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