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지난달 22일 최저임금 구분 적용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다. 지난해 공익위원 권고로 구분적용에 대한 연구용역도 시행했었고, 유례없이 5번의 회의에서 심의해 구분 적용 필요성에 대한 경영계의 주장이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이뤄졌었다. 숙박․음식점업, 편의점, 택시운영업과 같이 기업의 지불능력이 매우 열악한 업종부터 시범적으로 적용하자는 경영계의 진전된 제안도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으로 하여금 이번에는 다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필요한 논의로 치부하고 지속적으로 대화를 회피하는 노동계와 작은 부작용과 우려에도 망설이는 공익 등 최저임금위원회의 분위기는 지난해와 다름이 없었다. 결국 또다시 구분 적용이 무산되고 말았다.

업종별 구분 적용은 최저임금 수준을 감액하고 인건비를 줄여 사용자가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일자리를 지키고 국가경제 발전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이다. 고율 인상이 누적된 최저임금으로 인해 생존을 염려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많지만 특정 업종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많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비율이 12.7%였는데 숙박․음식점업의 경우에는 31.2%에 달한다.

최저임금을 특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업종이 있음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임금수준, 영업이익, 생산성 등 각종 지표가 업종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 단일한 최저임금체계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아울러 해외에서도 미국(지역), 일본(지역․업종), 영국(연령), 호주(업종) 등 다양한 방식의 구분 적용이 이뤄지고 있다. 결국 업종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고 업종에 속한 평균적인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구분 적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상식적이고 필요한 제안인 셈이다.

하지만 구분 적용 제안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한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최저임금 수준 결정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노동계가 일방적으로 퇴장한 가운데 노사 최초제시안이 제출됐다. 한계상황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감안해 경영계는 ‘동결’을, 노동계는 생계비 보장을 이유로 무려 26.9% 인상한 1만2210원을 요구했다. 노동계의 요구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처해 있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법인 파산신청건수는 올해 5월 누계기준 592건으로 전년동기대비 56.2% 증가했으며, 노란우산공제에서 지급한 폐업공제금 지급건수도 올해 5월 누계기준 4만8000건으로 전년동기대비 51.3%나 증가해 현장에서 느끼는 폐업의 공포는 상당히 크다. 자영업자의 대출잔액은 1000조를 돌파해 지속해서 신기록을 갱신 중이고, 중소기업의 절반(49.2%)은 영업이익으로 이자 등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물론이고 동결마저도 힘겨운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2018년과 2019년 현실을 외면한 결정이 얼마나 현장에 혼란과 부작용을 가져왔었는지 경험한 바 있다. 또다시 최저임금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폐업, 고용축소, 법위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수준 결정만큼은 바뀌길 기대한다. 최저임금의 주요 지급주체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현실을 최저임금의 결정기준으로 삼아 합리적 결정이 이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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