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갤럭틱, 관광객 3명 태우고
인류 최초 상업용 우주투어 성공
브랜슨, 세계 톱 인플루언서 등극
기행 일삼아 브랜드 홍보맨 자처
‘고객의 즐거운 인생’이 경영철학
자신만의 프렌차이즈 왕국 구축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

인류 최초의 상업용 우주 관광 여행은 버진 갤럭틱의 몫이었다. 지난달 29일 우주관광기업 버진 갤럭틱은 3명의 우주 관광객에게 우주 투어를 제공하는데 성공했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엔 모두 6명이 탑승했다. 그 중에서 2명은 조종사와 부조종사였다. 다른 1명은 버진 갤럭틱 비행 교관이었다. 항공사로 치면 승무원이고 여행사로 치면 가이드인 셈이다.

나머지 3명이 승객들이었다. 2명은 이탈리아 공군 장교였다. 1명은 이탈리아 과학자였다. 각자 과학 실험 장비를 들고 타긴 했지만 솔직히 모두 기초적인 것들이었다. 이들은 분명 버진 갤럭틱으로부터 우주선 티켓을 구매한 우주 관광객들이었다.

버진 갤럭틱은 이번 우주 관광에도 특유의 어부바 방식을 사용했다. 대형 항공기에 유인 우주선을 실어서 이륙한 다음 공중에서 발사하는 방식이다. 모선인 VMS이브는 동체 아래에 우주선 VSS유니티를 매달고 이륙했다. VSS는 버진 스페이스십 유니티의 약자다. VMS이브는 고도 1만3500미터까지 상승했다. 고도 13.5㎞는 대륙간 항공기가 운항하는 최대 고도다. 여기에서 VSS유니티를 분리했다. VSS유니티는 최대 마하 2.88의 속도로 급상승했다. 곧바로 고도 85.1㎞에 도달해서 준궤도 비행을 진행했다.

지구와 우주의 경계면은 카르만라인이라고 불린다. 고도 100㎞ 상공이다. 준궤도 비행은 카르만라인까지 비행하는 걸 뜻한다. 정말 우주를 찍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버진 갤럭틱의 우주 여행은 실제로 우주를 찍고 온 건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국제항공연맹 기준으론 고도 100㎞부터가 우주다. 미국 연방항공국에 따르면 고도 80㎞부터가 우주다. 실제로 미 연방항공국은 고도 80㎞ 이상 비행 경험이 있는 조종사에게 우주비행사 칭호를 부여하고 있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 여행은 국제항공연맹 기준으론 우주 여행이 아니다. 미 연방항공국 기준으론 우주 여행이다.

버진 갤럭틱의 시험 비행 당시 모습
버진 갤럭틱의 시험 비행 당시 모습

음반 대박으로 연쇄창업가 변신

상관없다. 버진 갤럭틱의 창업자이자 버진 갤럭틱의 모회사 버진그룹 회장인 리차드 브랜슨의 기준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객의 즐거움이다. 관광객이 스스로 우주에 다녀왔다고 느끼면 우주 여행이다. 아무리 고도가 높아도 우주 여행의 경험이 즐겁지 못하면 그건 우주 여행이 아니다. 이게 리처드 브랜슨의 경영 철학이다. 기준은 즐거움이다.

버진 갤럭틱이 어부바 방식을 선택한 것도 그래서다. 수직으로 세워진 우주 발사체 꼭대기에 하늘을 보고 누워서 우주로 향하는 건 훈련 받은 우주비행사들한테도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로켓이라는 게 사실상 거대한 화약 덩어리다. 우주 관광이라기보단 우주 모험에 가깝다.

반면 어부바 방식은 인천공항에서 항공기를 타듯 우주 여행을 떠나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버진 갤럭틱 우주 여행의 총 비행시간은 90분이다. 모선에서 우주선이 분리된 다음 음속으로 우주로 갔다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는 시간은 4분 남짓이다. 그렇다고 나머지 86분은 버리는 시간은 아니다.

브랜슨 회장한테 86분은 고객의 우주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즐거움을 고조시킬 수 있는 엔터테이닝 시간이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우주로 진입하는 즐거운 시간인 것이다. 이때 기내식을 먹을 수도 있다. SF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지구 구경을 할 수도 있다. 특별한 우주복을 입고 즐겨볼 수도 있다. 어쩌면 브랜슨 회장한텐 80㎞냐 100㎞냐는 중요하지 않다. 고객한테 정말 중요한 건 과학이 아니라 경험이란걸 알기 때문이다.

15세 때인 1965년 첫 사업으로 학생 잡지 <스튜던트>를 창간했을 때부터도 그랬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브랜슨은 학생 눈높이에 맞춘 잡지를 만들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대 학생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경험을 제공해줬기 때문이었다. 존 레논을 인터뷰하고 철학자 사르트르를 만났다. 베트남 전쟁도 취재했다. 그렇지만 잡지는 돈이 안 됐다. 광고에 의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브랜슨은 잡지에 들어오는 음반 광고에 주목했다. 잡지 대신 음반 유통 사업으로 전환했다. LP레코드를 우편 배송해주는 유통업을 시작했다. DVD 우편 판매로 시작한 넷플릭스와 닮은 꼴이다. 넷플릭스보다 30년 가까이 앞섰던 셈이다. 정작 음반 우편 판매도 벽에 부딪혔다. 우체국 파업 때문이었다. 당시 브랜슨한텐 새로운 유통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유통 방식은 외부 역량에 의존해야만 했다.

파업 같은 변수로 사업이 통째로 흔들렸다. 브랜슨은 음반 유통 대신 음반 제작에 집중했다. 대학가에 음악 감상실을 겸한 음반 매장을 냈다. 이때부터 버진이라는 브랜드명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직원 중 하나가 이렇게 제안했다. “다들 사업이 처음이니깐 버진 어때?”

브랜슨한텐 행운이 따랐다. 음반 제작업은 흥행 사업이다. 대박이 날 수도 있지만 쪽박을 찰 수도 있다. 브랜슨은 처음 제작한 앨범부터 대박을 냈다. 무려 500만장 이상을 팔아버렸다. 이후 스팅과 필 콜린스와 섹스 피스톨즈의 음반을 내면서 일찍 청년 재벌이 됐다. 이때부터 브랜슨은 연쇄창업가로 변신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일론 머스크의 초기 성공 스토리와도 닮아 있다. 머스크 역시도 온라인 결제 대행 서비스인 ZIP2를 성공시키면서 일찍 부자가 됐다. 이때부터 스페이스X를 창업하고 테슬라를 인수하면서 연쇄창업가가 됐다. 그런데 머스크와 브랜슨은 사업 동기가 전혀 다르다. 머스크는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려고 한다. 에너지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하려고 전기차를 만든다. 지구 멸망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려고 화성으로 가려고 한다.

반면 브랜슨은 지루함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게 목표다. 사람들의 인생을 끊임없이 즐겁게 해주는게 목적이다. 그러면 당연히 돈도 벌린다고 믿는다. 브랜슨이 버진그룹의 주력 사업인 항공 사업에 뛰어든 것도 그래서였다. 결국 우주 관광 사업까지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

대형 수송기 화이트나이트투(WhiteKnightTwo)에 실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버진갤럭틱의 스페이스십2.
대형 수송기 화이트나이트투(WhiteKnightTwo)에 실려 하늘로 날아오르는 버진갤럭틱의 스페이스십2.

탱크 몰고 코카콜라 간판에 돌진

브랜슨이 창업한 버진 애틀랜틱은 LCC 항공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저비용 항공사, 즉 로우 코스트 캐리어라고 불리는 LCC는 풀 서비스 캐리어 즉, FSC라고 불리는 대형항공사와 덩치만이 아니라 철학부터가 다르다. 고객이 항공사한테 원하는건 무겁고 값비싼 서비스가 아니라 가볍고 필요한 서비스라는 철학이다. 브랜슨은 일등석을 없애고 이코노미석을 더 많이 배치했다. 대신 이코노미석에도 개인용 모니터를 설치했다. 여행을 즐겁게 만들어주는데는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브랜슨은 원조 인플루언서다. 억만장자라는 자신의 영향력을 미디어를 통해 극대화해서 자신이 가진 상품을 파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해왔다. 버진 애틀랜틱을 창업할 때는 신문 1면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1998년 버진 콜라를 출시할 당시에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탱크를 몰고 코카콜라 간판을 향해 돌진해버렸다.

세계 1위 코카콜라를 상대로 버진 콜라가 탱크처럼 도전하겠단 뜻이었다. 2007년 버진 아메리카 첫 비행 때는 124m 높이의 호텔 카지노에서 번지 점프를 했다. 웨딩 업체인 버진 브라이즈를 창업했을 때는 스스로 웨딩드레스를 입는 퍼포먼스를 했다.

버진그룹의 계열사는 가장 많은 때는 400개에 이르렀다. 지금은 200개 안팎이다. 사실 200개도 엄청난 숫자다. 이렇게 버진그룹의 계열사가 늘어난건 리처드 브랜슨 회장의 독특한 창업 방식 때문이다. 브랜슨의 별명은 닥터 예스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답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버진그룹 직원이든 고객이든 스타트업 창업자든 브랜슨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다. 대신 창업할 때는 버진이라는 브랜드를 써야만 한다. 회사 지분의 50%는 버진그룹이 소유한다. 그래서 버진그룹의 본질은 프렌차이즈 그룹에 가깝다. 버진이라는 브랜드와 브랜슨이라는 인플루언서라는 2개의 기둥이 프렌차이즈를 지탱한다. 버진그룹에선 제품 개발은 전문성을 가진 제휴 파트너가 책임진다. 치킨이나 피자 프렌차이즈가 각 제품의 맛과 품질은 사장님이 책임지는 것과 같다.

대신 브랜슨과 버진그룹이 홍보와 마케팅을 책임진다. 프렌차이즈 본사가 광고비를 써서 브랜드를 알리는 것과 같다. 여기서 리처드 브랜슨이라는 인플루언서는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홍보맨 역할이다. 브랜슨이 기행을 계속하는 이유다. 브랜슨은 이미 소셜 미디어 시대에 세계 최고의 인플루언서로 등극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링크드인, 유뷰브에서 브랜슨은 늘 화제의 인물이다. 브랜슨은 버진그룹 안에서 인플루언서와 프렌차이즈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런 선순환이 결국 우주공간까지 사업을 확장하게 만든 동력이다. 2021년 7월 리처드 브랜슨은 직접 버진 갤럭틱의 어부바 우주 관광을 다녀왔다. 지구 귀환했을 때는 마치 아이언맨이 지상에 강림한 것과 같은 화려한 장면을 연출했다. 팝스타가 총출동한 마케팅 행사였다. 브랜슨식 비즈니스의 절정이었다.

우주 끝까지 올라갔던 브랜슨식 버진 경영은 이미 우주에서부터 한계에 부딪혔다. 지난 5월 버진 오빗은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버진 오빗은 2017년 버진 갤럭틱에서 분사한 우주발사대행업체다. 버진 갤럭틱이 우주 여객 운송업체라면 버진 오빗은 우주 화물 운송업체다. 역시 어부바 방식으로 우주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사업체다. 버진 오빗은 2021년 1월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기업가치가 40억달러까지 급상승했다.

그렇지만 너무 느리고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이후 2023년까지 3년 동안 6차례 발사 시도를 하는데 그쳤고 2차례나 실패하고 말았다. 결정타는 2023년 1월 영국 콘월에서 시도한 발사였다. 소형 인공위성 9개를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36개국에 200여 사업체 확장

버진 오빗의 발사 방식은 보잉747를 개조한 코스믹걸이라고 불리는 모선에서 런처원이라고 불리는 로켓을 발사하는 형식이다.

여객 운송과 달리 화물 운송에선 무게가 중요해진다. 사람 무게에 비해 위성 무게가 무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주 관광은 롤로코스터처럼 우주에 잠깐 다녀와도 그만이다. 위성은 필요한 궤도 높이에 정확하게 도달해야만 한다. 그래서 버진 오빗은 소형 위성체 시장에 집중했다. 누리호에도 탑승했던 1m 안팎의 큐브 위성이 대표적인 소형 위성체다. 통신 기술 발달로 위성의 크기가 작아지고 있어서 열린 시장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소형 위성은 큰 위성과 함께 발사되는게 일반적이다.

버진 오빗의 방식은 비유하자면 1개만 배달하는 쿠팡 잇츠 시장이다. 1개만 배달하는 음식 배달 시장은 배달 시장이 숙성돼야 열린다. 무엇보다 브랜슨이 선임한 버진 오빗의 댄 하트 최고경영자는 뉴스페이스보단 올드스페이스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할 비전이 없었다. 2021년 우회 상장됐던 버진 오빗은 이번 파산으로 주주들한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500억 원 가까운 상장수수료를 받아챙긴 월가 증권사만 이익을 남겼을 뿐이다.

브랜슨의 버진그룹은 어부바 그룹이다. 브랜슨이라는 인플루언서와 버진이라는 브랜드에 업혀서 전세계 36개국에 200개 사업체까지 확장했다. 대부분 브랜슨의 인지도가 높은 영연방 국가들이다. 정작 글로벌 1위 사업체는 없다. 핵심 계열사인 버진 애틀랙틱과 버진 오스트레일리아 항공은 코로나 시국에 파산 신청을 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다.

버진 애틀랜틱은 2020년 8월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면서 일부 노선의 항공기 운항이 중단됐다. 브랜슨이 처음 항공사 창업에 나선 건 휴가길에 갑자기 항공기가 취소되는 불편을 겪어서였다. 이렇게 일방적 일정 취소로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항공사를 이용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직접 더 나은 항공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정작 버진 애틀랜틱이 항공편을 일방적으로 취소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브랜슨은 우주 여행 비용을 낮추는데 성공했다. 2001년 인류 최초로 민간 우주 관광에 나섰던 억만장자가 지불했던 비용은 2000만달러였다. 버진 갤럭틱의 우주 항공 티켓값은 초창기엔 20만달러였다. 100분의 1이다. 지금은 수요와 비용이 모두 증가하면서 45만달러로 두 배 이상 올랐지만 여전히 50분의 1이다. 리처드 브랜슨은 200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브랜슨 경은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인플루언서 프렌차이즈 왕국을 건설했다. 결국 최초의 우주 여행 항공사가 됐다. 브랜슨이 브랜슨했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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