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괘한 물소리·사계절 절경 과시
기암괴석·장쾌한 폭포 ‘오감짜릿’
굽이굽이 드러나는 진경에 풍덩
전통적 정자문화의 진면목 만끽
영롱한 물빛, 선녀탕으로 입소문

선풍기나 에어컨도 없던 시절, 옛 선조들은 어떻게 더위를 이겨냈을까? 해답은 계곡에 있다. 시원하다 못해 뼛속까지 시린 계곡물에 탁족하고 너럭바위에 앉아 시조 한 수 읊조리면 어느새 여름도 저만치 물러나 있었을 터. 아름드리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새소리, 물소리 반주 삼아 노래 한 가락 절로 뽑게 되는 곳, 선현들의 풍류가 깃든 7월의 계곡을 찾아보자.

겸재 정선 그림 속 그 골짜기, 서울 수성동계곡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수성동 계곡은 왕족과 사대부도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수성동 계곡은 왕족과 사대부도 즐겨 찾는 명승지였다.

인왕산 수성동계곡(서울기념물)은 왕족과 사대부 등 양반이 자주 찾았던 곳이다. 뒤로는 인왕산이, 앞으로는 저택과 경복궁이 펼쳐지는 명승지였다. 한양도성 내에 자리해 조선의 왕족과 사대부, 중인이 자주 찾았던 계곡으로도 유명하다.

물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하여 붙은 수성동(水聲洞)이라는 지명에 걸맞게 맑고 경쾌한 물소리와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는 이곳을 그림과 시로 소개했을 정도다. 지금의 수성동계곡은 1971년 계곡 주변에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며 잠시 사라졌다가 2012년  다시 복원됐다. 한양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된 기린교를 비롯, 안평대군이 살던 집으로 추정되는 비행당 터 등이 계곡 내에 자리한다.

한여름의 신선놀음, 동해 무릉계곡

울창한 숲과 기기묘묘한 바위가 어우러진 동해 무릉계곡의 무릉반석과 삼화사.
울창한 숲과 기기묘묘한 바위가 어우러진 동해 무릉계곡의 무릉반석과 삼화사.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명승)은 청량한 물소리와 풍류를 만끽하기 좋은 피서지로, 거대한 기암괴석과 장쾌한 폭포가 환상적이다. 여름철이면 녹음이 우거진 계곡에서 선비처럼 탁족을 즐기려 전국에서 모여든다.

계곡은 호랑이가 건너다 빠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호암소부터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양새의 용추폭포까지 약 4km 간 이어진다. 매표소를 지나 나타나는 신선교에 오르면 왜 이곳의 이름에 ‘무릉’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실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의 장중한 산세가 펼쳐진다.

다리를 지나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면 약 1500평 규모의 너럭바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옛날 묵객들이 자연에 감탄하며 남긴 암각서가 너럭바위를 더 특별하게 한다. 나라에서 수륙재(국가무형문화재)를 설행한 삼화사도 무릉계곡에 자리한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경사가 완만한데다 수려한 경관까지 더해져 마치 한폭의 진경산수화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 이루는 쌍폭포는 보기만해도 스트레스를 속 시원히 날려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두타산의 장엄한 풍광이 한눈에 펼쳐지는 두타산협곡마천루를 들러보는 것도 좋다. 삼화사 템플스테이, 동해무릉건강숲과 무릉계곡힐링캠프장 등을 이용하면 밤의 무릉계곡까지 누릴 수 있다.

9곡9색, 굽이마다 절경이 펼쳐지는 괴산 화양구곡

화양이교를 지나 나타나는 2곡 운영담의 모습. 강 건너 절벽에 운영담(雲影潭)이라 쓴 한자가 인상적이다.
화양이교를 지나 나타나는 2곡 운영담의 모습. 강 건너 절벽에 운영담(雲影潭)이라 쓴 한자가 인상적이다.

우뚝 솟은 산과 깊은 계곡을 보물처럼 간직한 충북 괴산. 그 중에서도 압권은 화양구곡(명승)이다. 화양구곡은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km에 흩어져 있는 계곡으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전 구간을 볼 수 있다.

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곶 등 아름다운 풍광이 자그마치 아홉 곳에 연이어진다. 굽이굽이 드러나는 풍경에 취해 걷다 어느새 더위는 잊혀져 있다. 계곡 입구까지 쫓아오던 자동차 소음마저 사라지고 계곡물과 바람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귓가에 퍼지며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도 준다. 여름에는 허가된 장소에서 물놀이도 가능해 가족 단위 피서객에게 특히 인기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은 말년에 이곳 화양구곡에 내려와 지냈다. 화양구곡의 아홉 경치 이름은 우암이 새상을 떠난 뒤 제자 권상하가 스승이 머물던 곳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더위를 씻어주는 계곡 산책을 마무리하고 괴산읍으로 가면 몇몇 문화재를 더 볼 수 있다. 소설 «임꺽정≫의 저자 홍명희의 아버지이자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다는 소식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홍범식의 고가를 비롯, 조선 후기에 제작한 목조여래좌상과 목조관음보살좌상가 있는 개심사, 500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키며 지방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한 괴산향교 등이다.

풍류 찾아 떠나는 여행, 함양 화림동계곡

화림동계곡은 함양을 넘어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은 화림동계곡의 백미로 꼽히는 거연정의 모습.
화림동계곡은 함양을 넘어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진은 화림동계곡의 백미로 꼽히는 거연정의 모습.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로 알려진 함양에는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인생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그 가운데 수려한 풍경과 여러 누정을 품은 화림동계곡은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화림동계곡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으로 칭송한 안의삼동(安義三洞)에 속한다. 계곡을 따라 기이한 바위와 반석,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완성하고, 그림 같은 풍경을 조망하는 명당에 정자가 들어섰다. 탐방로는 총 2개 구간인데 화림동계곡의 백미,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이 특히 인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인 함양 상림은 일대를 공원으로 꾸며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고풍스러운 한옥이 모인 개평한옥마을에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 유명한 일두고택을 비롯해 문화재로 지정된 고택이 여럿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남계서원까지 알차게 돌아보자.

바람이 깎고 시간이 쌓아올린 부안 봉래구곡

물에 비치는 산을 곁에 두고 걷는 봉래구곡 여정.
물에 비치는 산을 곁에 두고 걷는 봉래구곡 여정.

바다와 산을 두루 품은 전북 부안군의 변산반도는 매번 새로운 자연을 발견하는 여행지다. 최근에는 전북서해안 국가지질공원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바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에 있는 봉래구곡은 약 20km에 이르는 하천 지형 아홉 곳을 이른다.

1곡부터 5곡까지 왕복 2시간 남짓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아쉽게도 6~9곡은 1996년 부안댐이 완공되면서 물에 잠겨 볼 수 없지만 여전히 봉래구곡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봉래구곡 여행은 자생식물관찰원과 실상사 터를 지나 5곡 봉래곡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 암반에 새겨진 글자들이 감입곡류인 봉래곡의 아름다운 풍경에 힘을 더한다. 미선나무와 꽝꽝나무,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등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자생식물관찰원도 재밌다.

4곡 선녀탕과 3곡 분옥담은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지름에 비해 깊이가 깊은 항아리 모양 포트 홀 하천 지형으로 맑고 영롱한 에메랄드빛 물이 신비롭다. 1곡 대소로 향하는 길은 봉래구곡 여정에서 가장 신비롭다. 직소폭포에 비해 소담하지만 넓은 암반에 앉아 맑은 계곡물에 손발을 담그고 쉬기 좋다. 봉래구곡 여행은 대소에서 끝나지만, 내변산 정상 관음봉과 고즈넉한 내소사까지 길이 이어진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 shinda.write@gmail.com / 자료=한국관광공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