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중소 조선사 ‘때아닌 인력 이탈’
중대형 조선사 물량 늘자 中企 인력 줄줄이 빠져나가
E-7 등 외국인력대책엔 “관리·통역 인건비 가중” 난색

인력공급·생산설계 등 외부관리 업체에 의존도 심화
숙련공은 60대 초고령화 가속…일자리 공백 ‘초읽기’

코로나로 수출물량 증발해…‘관공船’ 내수경쟁만 격화
일부 中企는 ‘작업환경개선’ 등 생존 자구책 마련 급급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최첨단 탐사·연구 장비 35종이 탑재된 6천톤급 탐사선 진수식을 열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탐사선도 중소 조선사가 건조하는 관공선 중에 하나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6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최첨단 탐사·연구 장비 35종이 탑재된 6천톤급 탐사선 진수식을 열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탐사선도 중소 조선사가 건조하는 관공선 중에 하나다.

중대형 조선업계로 사람들이 점차 이동하려는 낌새가 보입니다. 내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주요 인력들이 빠져나려는 분위기에요.” 익명을 요구한 중소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 전언이다.

한국 조선산업이 10년의 불황을 이겨내고 최근 초호황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중소 조선사들은 때아닌 ‘인력 이탈’을 체감하고 있다.

중대형 조선사들이 늘어난 수주 물량의 납기를 서두르기 위해 생산⋅설계·R&D 등 각종 분야의 인력을 블랙홀처럼 대거 빨아들이면서 상대적으로 작업 환경과 인건비 열세에 놓인 중소 조선사가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할 조짐이다.

지난해 초만 해도 조선업계는 대·중견·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전부 고질적인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조선업 근로자 수는 9만503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4년 말 20만3400명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감소세를 지속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조선업계 생산인력이 무려 1만4000명 가량 부족할 것으로 내다볼 정도로 상황이 어두웠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1년 사이에 조선업 분야에선 E-7(외국인 기능인력), E-9 비자(저숙련 인력)에 대한 제도 개선을 연쇄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여기엔 산업부, 법무부, 고용부 등의 숨 가쁜 협업이 불가피했다.

최근 정부가 3년간 매년 5000명의 인력을 조선업계에 투입하는 긴급 조치를 단행한 것도 이러한 인력난 대비를 위한 일환 중 하나다. 외국인 근로자 수급 대책으로 조선업계는 지난해보다 2배 이상 규모의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중소 맞춤형 인력대책 필요

하지만 중소 조선사 입장에선 ‘딴 나라 이야기’다. 이는 직접 고용과 인력 하도급 시스템이 탄탄한 중대형 조선사의 생산인력 공급망과는 달리 외부 인력업체와의 단기 계약에 의존하는 중소 조선사의 인력 시스템 간의 격차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중소 조선사는 외국인 근로자를 비롯한 저숙련 생산인력의 대부분을 외부 인력관리 업체를 통해 협력하는 실정이다. 설계 인력도 중대형 조선사 출신이 차린 설계 사무소와 연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인력 이탈 물결에 내국인 숙련공까지 가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감돌면서 “중소 조선사가 문을 닫을 수 있는 인력 공백이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사들의 경쟁력은 건조 경험을 보유한 인력의 숫자로 판가름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신규 투입되는 저숙력 인력이 숙련 기능직이 되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과 관리 인력’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기원 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 전무도 “한편에선 외국인 근로자 채용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유는 직접 채용 부담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라고 업계 상황을 설명한다. 그는 “현장에선 인력관리·통역에 필요한 인건비와 기숙사 시설 투자 등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라고 하는데 정부가 중소 조선업계에 맞춤형 인력지원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제언했다.

또 다른 익명의 관계자는 “수년 전 평택 삼성반도체 현장이 활황이 되면서 조선업계 인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도 중소 조선사들은 자신들의 숙련공들을 지켰는데,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라며 “선체 용접·조립, 선장생산 등 숙련 기술자들은 평균 60대을 넘은 지 오래인데다가 남은 인력마저 중대형 조선사로 빼앗긴다면 10년 뒤에 현장에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역설했다.

중소 조선사가 고숙련 인력을 지킬 수 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연령 탓이 컸다. 더 높은 임금 일자리로의 경력이동 보다는 20년 넘게 자리 잡은 일터가 ‘삶의 터전’이 되면서 중소 조선업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중소 조선업계의 업체 수는 약 100여개 이며, 종사자 수(내국인+외국인)는 대략 4000명 정도다.

당장 발등의 불은 ‘일감난’

사실 조선산업은 중대형 선박과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사의 업황과 인력 생태계가 완전히 분리된 이중시장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8개 회원 조선사는 수출 중심의 중대형 선박을 개발한다. HD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케이조선, HJ중공업, 대선조선, 대한조선 등 중대형 조선사가 바로 대한민국 조선산업을 이끄는 본진이다.

여기에 중대형 조선사의 건조 작업에 들어가는 밸브, 설비, 장비 등을 납품하는 조선기자재업계의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중소 조선사 보다는 더 나은 편이다.

반면에 내수 시장 중심의 중소형 선박들은 대부분 중소 조선사에서 만들고 있다. 주력 건조 선박으로 해양 이동 선박, 해양 경비, 해양 레저, 수산업 선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기원 전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그나마 있던 수출물량은 뚝 끊기고 관공선 중심의 내수시장 경쟁만 치열해지고 있다”며 “인력난보다 당장 발등의 불이 ‘일감난’일 정도”라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중소조선공업협동조합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 조선업계의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한 필수 정책은 납품단가 현실화를 위한 지원방안 수립과 관급물량 확보 및 해양플랜트 제작 등을 통한 일감 지원이 78.1%로 꼽혔다.

스마트·친환경 선박에 대한 기술개발 지원은 5.2%에 불과했다. 일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을 반영한 한편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개발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다.

중소 조선산업은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국가 핵심기간산업이지만, 이처럼 산적한 문제들로 조선산업 호황이라는 도전과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중대형 조선사와 상호 보완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특별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일각에선 중소 조선업계 규모가 중대형 조선사 한 곳의 인력 규모와 비슷할 정도로 적기 때문에 정부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원 전무는 “중소 조선사라고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일부 중소기업은 옥외작업을 내부 공장화로 전환하면서 작업환경을 개선해 납기를 단축하고 원가절감 이익을 다시 근로자들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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