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규제개혁 핵심과제에 포함됐다.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기업투자를 막는 ‘킬러규제’의 개혁을 주문했다. 특히, 2015년 시행된 화평·화관법은 중소기업의 경영활동을 옥죄는 환경분야의 대표적인 킬러규제로 지목됐다.

화학물질 규제를 총괄하는 환경부 역시 발 빠르게 제도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난 25일, 환경부장관 주재로 산업계 간담회가 개최됐고, 이 자리에서 화평·화관법의 개정방향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환경부의 금번 개정방향을 보면, 중소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 개선방안들이 다수 포함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화평법 상 신규화학물질의 등록 기준이 기존 0.1t에서 1t으로 조정될 예정이다. 이전부터 중소 사업장에서는 EU보다 엄격한 국내 기준으로 인해 유해성 자료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료생산에 수천만원의 비용이 지출될 뿐만 아니라, 등록 완료까지 2~6개월이 소요된다. 이렇듯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불필요한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화관법의 경우에는 화학물질의 독성을 3개로 구분해 현행 획일적 관리기준을 차등화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추진된다. 그간 중소기업들은 영업허가를 받기 위한 화학사고 예방 관리계획서 작성, 설치 검사, 그리고 허가 이후에도 매년 실시되는 정기검사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함을 호소해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업신고제 도입, 정기검사 주기 차등화와 같은 실효성 있는 개선책이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법 개정을 통해 하루빨리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개정방향에 더해 화학물질등록제도의 전면적인 개편 또한 검토해봐야 한다. 정부가 매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4~500억원 규모의 등록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장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기존화학물질의 경우 취급량에 따라 2030년까지 등록이 유예돼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중소기업의 등록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단순히 지원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규제의 틀을 과감히 탈피해, 화학물질등록제도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먼저, 국외평가가 완료된 신빙성 있는 유해성 자료를 정부가 적극 확보·활용해 기업의 제출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정부는 유해성 정보를 공공 목적으로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은 해당 정보를 등록자료로 제출하는 경우 상업적 활용으로 간주돼 지식재산권 분쟁의 소지가 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국외 공개 정보를 정부가 적극 인용해 물질에 대한 평가를 진행함으로써 기업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또한, 정부주도로 고위험물질 등 우선순위가 높은 화학물질을 분류해 목록화하고 위해성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 일본에서도 기존화학물질 중 우선평가물질을 지정해 목록을 작성, 평가를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에만 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화학물질 제조·수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동일한 자료에 대한 개별기업들의 중복구매와 외화유출이라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보완하고, 기업의 규제이행 부담을 대폭 경감할 수 있다.

킬러규제의 개혁이 하반기 국정 운영의 성패를 가를 화두로 떠오른 지금, 화평·화관법 개정의 과감하고 조속한 추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침 제2차 화학물질 평가 등에 관한 기본계획에 이어 제3차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시기와도 맞아떨어진다.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화학물질 규제를 합리적으로 보완할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