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간 글로벌 판매 부동의 1위
日 제품 불매운동에도 ‘무풍지대’
코로나 장기화, 오히려 반사이익
부진한 자동차와 물적분할 추진
전기이륜차 주도권잡기 본격화

한국에선 배달용 오토바이로 각인됐지만 사실 동남아에서 슈퍼 커브는 국민차다. 슈퍼 커브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 보급량이 많은 지역이다.
한국에선 배달용 오토바이로 각인됐지만 사실 동남아에서 슈퍼 커브는 국민차다. 슈퍼 커브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 보급량이 많은 지역이다.

다니 페드로사의 별명은 ‘리틀 사무라이’다. 키 158센티미터의 비교적 단신이지만 모터사이클 레이싱에선 경쟁자를 단칼에 베어버리는 매서운 코너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월드 챔피언을 3번이나 했다. 리틀 사무라이 페드로사도 혼다 슈퍼 커브를 타고 레이싱 트랙을 달린 적이 있다. 월드 챔피언을 6회나 했던 마르크 마르케스도 혼다 슈퍼 커브를 타고 레이싱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페드로사와 우승까지 다퉜었다. 2018년 1월 19일에 있었던 일이다.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레이싱 챔피언들은 혼다가 주최한 슈퍼 커브 레이싱에서 자웅을 겨뤘다. 슈퍼 커브는 배기량이 50cc다. 마르케스와 페드로사가 타는 레이싱용 모터사이클의 배기량은 1000cc다. 20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세계 챔피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속도 경쟁을 벌였다. 혼다 커브의 누적 판매 1억대를 기념하는 자리였다. 페드로사와 마르케스가 혼다 커브를 몰고 레이싱 트랙의 코너링을 커브로 도는 장면은 혼다 커브 역사에서도 레이싱 역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장면이었다.

혼다 자동차는 지지부진

혼다의 별명은 기술의 혼다다. 기술적 집념만큼은 경쟁사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마케팅과 세일즈에선 혼다가 최고라고 말하긴 어렵다. 혼다의 본질은 장사치가 아니라 기술자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에서 혼다가 힘든 이유다. 혼다는 올해 상반기에 고작 604대의 자동차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혼다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0.4%에 불과하다.

2019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직격탄을 맞았던 일본차는 현재 완전히 부활했다. 도요타가 대표적이다. 도요타의 고급차종인 렉서스는 상반기에만 1655대가 팔렸다. 2022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120.2%나 증가했다. 반면 혼다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던 2019년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판매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키의 D2C처럼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직접 혼다로부터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이키의 다이렉트 투 컨슈머는 지금 소매 판매의 대세다. 대리점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소비자 역시 투명한 정가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혼다가 간과한 게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자동차 시장에선 소비자도 딜러의 할인에 길들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동차는 수천만원 이상의 고가 제품이다. 딜러는 그런 소비자 심리를 이용해서 세일즈를 해왔다. 사실 이런 딜러 할인은 조삼모사다.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할인이나 악세서리는 이미 자동차 가격에 반영돼 있다. 손해 보면서 판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정작 소비자도 알고도 속는 걸 좋아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가장 싼 것만 아니다. 다른 소비자보다 싸게 샀다는 만족감이다. 원-프라이스 정책은 소비자에게 상대적 만족감을 줄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나이키와 같은 D2C에는 강력한 홍보마케팅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먼저 알고 제품을 찾아와야만 가능한 판매 방식이다. 나이키처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로 직접 소비자와 소통해야 가능하다. 인플루언서 마케팅도 필수다. 혼다는 나이키처럼 할 수 없었다. 수십억원을 들인 원프라이스 정책이 아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다.

올 상반기 자동차 판매 604대는 분명 아직 혼다 코리아의 전략이 소비자들한테 먹혀들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자의 감성은 투명한 가격만큼이나 불투명한 가격도 원한다는 것이다. 불투명한 가격이 자신에게만 유리하다면 말이다. 적어도 네 바퀴에서는 그렇다. 기술의 혼다답게 혼다가 혼다한 셈이다.

그런데 두 바퀴에선 얘기가 좀 달라진다. 혼다의 한국 이륜차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2023년 현재 판매되고 있는 오토바이 3대 중 1대가 혼다다. 2위 디엔에이모터스의 점유율은 20% 수준이다. 디엔에이모터스는 예전엔 대림오토바이였다. 2019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서도 혼다 오토바이만큼은 무풍지대였다. 배달 수요가 증가한 덕분이다. 2020년과 2021년에 등록된 이륜차는 모두 15만 대 안팎이었다.

설계원형 유지한 슈퍼 커브

이 시장을 혼다 오토바이가 독식하다시피 했다. 비결은 슈퍼 커브다. 슈퍼 커브는 흔히 배달용 오토바이라고 불린다. 코로나 시국으로 쿠팡잇츠나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슈퍼 커브의 수요도 증가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버튼 한 번으로 음식이 배달되지만 결국 누군가는 직접 배달을 해야만 완성되는 게 배달 서비스다. 슈퍼 커브의 기동성이 필수다.

사실 이륜차 시장에서 혼다는 한국뿐만 아니라 글로벌에서도 절대 강자다. 1960년대부터 단 한 번도 글로벌 판매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다. 혼다의 글로벌 이륜차 시장 점유율은 3분 1이 넘는다. 2022년에만 1400만대를 팔았다. 2021년에 비해 15% 증가했다.

원래 혼다의 시작은 네 바퀴가 아니라 두 바퀴였다. 혼다는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1946년에 창업했다. 원래 혼다 소이치로는 작은 자동차 수리 센터를 운영했다. 부품을 도요타에 납품도 했다. 그러다 1945년 혼다 소이치로의 자동차 공장이 지진으로 무너졌다. 혼다 소이치로는 잔여 재산을 도요타에 매각했다. 45만엔 정도 되는 돈으로 1946년 10월 혼다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1948년 공동창업자 후지사와 다케오와 함께 혼다기연공업을 만들었다. 기술은 혼다 소이치로가 맡았다. 경영은 후지사와 다케오가 맡았다. 이것이 지금의 혼다다.

혼다가 처음 만든 제품은 자전거에 직렬 엔진을 매단 오토바이였다. 1950년대로 접어들면서 혼다 오토바이는 기술적 발전을 이룬다. 어느 날 혼다 소이치로는 야근을 하다가 소바 배달을 시켰다. 정작 도착한 소바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혼다 소이치로는 배달하기 쉽고 한 손 조작도 가능한 오토바이가 필요하다는 시장 수요를 찾아냈다. 그렇게 개발한 오토바이가 C-100이었다. 지금의 슈퍼 커브다.

슈퍼 커브는 지금까지도 혼다 소이치로의 설계 원형이 유지되고 있는 제품이다. 많은 업그레이드가 이뤄졌지만 중심이 낮고 조작이 편리한 원형의 장점을 구태여 변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슈퍼 커브는 2017년 누적 판매량 1억대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모터사이클 레이서들인 페르도사와 마르케스까지 슈퍼 커브를 타고 기념 레이싱을 벌였다.

한국에선 배달용 오토바이로 각인됐지만 사실 동남아에서 슈퍼 커브는 국민차다. 슈퍼 커브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동남아시아는 오토바이 보급량이 많은 지역이다. 태국만 해도 전체 가구의 87%가 최소 1대 이상의 오토바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시장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2022년 베트남에선 240만대의 혼다 커브가 팔렸다. 시장 점유율은 80.7%에 달한다. 2022년 기준 하루 평균 6575대가 팔려나갔다. 동남아시아에서 혼다 오토바이가 인기인 건 튼튼한 내구성과 막강한 연비 덕분이다. 혼다가 직접 시연한 실험에 따르면 슈퍼 커브는 12층 높이에서 떨어뜨려도 엔진이 작동했다. 평균 연비는 리터 당 63킬로미터가 넘어간다. 동남아시아는 가처분 소득이 낮아서 4륜 자동차를 타기 어렵다. 혼다의 이륜차가 인기인 이유다. 이런 인기 덕분에 혼다 오토바이에 한해선 원-프라이스 정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소비자 스스로 슈퍼 커브를 탄 사진을 SNS에 올리고 스스로 커스텀한 오토바이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혼다는 두 바퀴 뿐만 아니라 두 다리에도 강했다. 2000년 발표한 이족 보행 로봇 아시모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아시모는 혼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그렇지만 혼다 역시 일본 경제처럼 2000년 무렵부터 잃어버린 20년으로 보냈다. 아시모의 기술력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결국 이족 보행 로봇의 주도권은 혼다에서 테슬라로 넘어간 상태다.

AI 접목, 자율주행 이륜차 개발

테슬라는 2021년 8월 2족 보행 로봇 옵티머스를 공개했다. 옵티머스를 1000만대 이상 양산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까지 발표했다. 인공지능 회사 xAI와 옵티머스가 결합하면 지능이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혼다는 아시모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

대신 혼다는 아시모의 기술력을 오토바이에 적용했다. 자율주행 이륜차를 개발한 것이다. 2017년 CES에서 선보인 자율주행 오토바이 NC750S는 스스로 움직이고 균형도 잡는다. 하단에 무게 중심을 둬서 운전자가 없어도 스스로 선다. 2017년 CES 공개 당시에는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아시모가 이족 보행으로 균형을 잡는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혼다의 자율주행 오토바이는 아직 상용화되지 못했다. 기술력에서 앞서지만 세일즈에선 늦는 혼다의 약점이 여기서도 드러난 셈이다.

이륜차 1등 혼다는 현재 쫓기는 상태다. 전기 오토바이에서 한발 늦은 탓이다. 중국 전기 이륜차 브랜드인 야디는 2022년 580만대를 팔았다. 600만대가 팔린 전기 자전거까지 더하면 2022년 판매량은 1180만대에 이른다. 내연기관 오토바이를 1400만대를 판 혼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3위 역시 인도의 전기이륜차 브랜드인 히어로 모터코프다. 전기 이륜차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이미 대만에선 배터리 교체형 전기 오토바이 브랜드인 고고로가 인기다. 전기 오토바이 시장은 2030년엔 304억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지금의 2배 이상이다. 혼다는 2022년 뒤늦게 전기 오토바이에 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3년 동안 10종의 전기 이륜차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 중엔 물론 전기 슈퍼 커브도 있다. 2040년부턴 전기 모터사이클만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혼다는 혼다 오토바이를 물적 분할해서 따로 상장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혼다 자동차와 혼다 오토바이라는 두 바퀴로 달리겠다는 계획이다. 혼다는 늘 두 바퀴에 강했다.  혼다의 다음 60년 시동 버튼이 켜졌다.

- 글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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