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청와대 중기특위가 제시한 중소기업정책 12과제는 상생(相生, win-win)과 협업(協業, collaboration)에 뿌리를 둔 의욕적 플랜이었다. 8월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으니 벌써 성과를 생각할 때가 됐다.
항목별로 보면 상당한 성과가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상생과 협업의 관점에서 보면 실망적이다. 상생과 협업을 잘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데 한국에서는 정치권, 행정부, 경제, 산업, 사회 모든 영역에서 상생과 협업이 빛을 보지 못한다.

‘살 生’이 아니라 ‘낳을 生’
첫째, 단어의 의미부터 틀렸다. 우리는 윈윈 본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해석한다. 심지어 종교간의 상생, 노사간의 상생, 자연과의 상생 등, 공생과 다름 없는 격하된 의미로 남용된다. “서로 相 살 生, 서로 살자”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은데, 미안하지만 이것은 틀린 해석이다.
윈윈의 본래 뜻은 ‘살 生’이 아니라 ‘낳을 生’이다. 서로 살자가 아니라 “함께 낳자(출산하자)”고 외쳐야 한다. 출산의 수고가 필요하다. 있는 것을 그냥 나눠 먹는 것은 타협이지 상생이 아니다. 타협에서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생기게 된다. 상생은 타협보다 한 차원 높다. 훨씬 가치가 큰 방안을 새롭게 출산한 다음 나누는 것이 상생이다.
둘째, 상생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상황인식이 부족하다. 지금은 국가간, 산업간, 기업간, 공사(公私)간 경계선이 무너지고, 경쟁구도와 협력구도가 병행되며, 상생과 협업의 새 매커니즘이 등장하는 신경제 시대이다.
그런데 지난 5월에 발표된 산업자원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강화방안’과 이에 대한 산업연구원의 최근 해설자료 등을 보면, 불공정거래, 비용전가 등 대기업 횡포를 막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상생을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경쟁구도와 양극화 시각에서 상생을 논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동기 면에서 빈약하다. 정부는 “기업들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상생을 권하는 정부도 세계적 감각과 차이가 크다.
셋째, 정부기관 스스로가 상생협력을 경험해야 한다. 대·중소기업협력재단이니 대·중소협력위원회니 그런 것보다 정부기관이 직접 참여하는 정부기관간 파트너십, 정부와 사기업간 파트너십, 정부와 비영리조직간 파트너십, 정부와 중소기업간 상생 프로젝트, 구인구직 파트너십 등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해보면 개념적 숙련을 얻을 것이다. 일부 관료들은 “대·중소기업 상생문제는 당사자간 이해가 결부된 것이므로 정부의 개입 여지가 매우 적다”는 식으로 발뺌을 한다.
과연 그런가? 뉴욕주립대(알바니)의 정부기술센터(CTG) 자료를 보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벨기에, 유럽 각국은 정부가 ‘신 협업모델’의 중심에 서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은 공공부문과 사기업부문을 종횡으로 연결함으로써 정부서비스를 다양하게 창출해내는 파트너십 시대이다. 공공부문과 사기업부문을 엄격하게 나누는 것이 시장경제라고 우기는 것은 유치한 경제원론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정부 프로젝트, 행정개혁, 중소기업문제, 정부파트너십 등 글로벌 또는 국가적 과제를 편의적으로 쪼개어 정부 각 부처에 할당하고 장벽을 치니 실패하기 십상이다.

大·中企 슈퍼골은 반드시 존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추구하는 목적과 가치기준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목적과 가치기준이 달라도 상생은 가능하다. 왜냐하면 대기업에게도 중요하고 중소기업에게도 중요한 공통적 상위목적(super goal)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협업 현장인 공급사슬이나 신제품개발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슈퍼골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그밖의 다른 분야에서도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면 공통의 이해와 가치를 포함하는 슈퍼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은 신뢰구축, 윈윈 철학, 가치중심, 창의성, 개념적 숙련을 요구한다. 상생과 협업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과목이다. 상생의 본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좀더 깊이 있는 접근을 해야 한다.

이 재 관
숭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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