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늪 건너는 소기업 5%에 불과
작아도 살아남는 지원정책이 우선
소규모 장수기업이 지역경제 근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중견기업의 허리역할을 복원하고자 하는 성장사다리정책의 전제는 중소기업은 단계별로 대기업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의 늪을 건너는 소기업은 미국의 경우도 5%를 넘지 못한다. 나머지 95%는 성장을 도모하다가 성장의 늪에 빠져 폐업을 하게 되거나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가 실패한다.

이를 증명하듯이 2020년 기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수는 730만개로 전체의 약 99.9%를 차지하고 있으며 종사자 수는 1700여만명으로 전체의 81%에 달하는 반면, 대기업집단군에 해당하는 회사는 2100여개, 중견기업수는 5500여개에 불과하며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의 99%는 중소기업에 해당한다.

성장사다리정책은 중소기업에서 성장한 기업이 계속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탄생했다. 즉, 중소기업 중에서 중견기업으로의 성장가능성이 높고 혁신역량이 있는 기업으로서 ‘중견기업 성장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2조 제2항에 해당하며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으로 보는 기업이 정책지원의 대상이 된다.

성장사다리정책은 중소기업 → 중견기업 →대기업으로의 성장이 가능한 ‘희망의 사다리 구축’을,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핵심과제로 여긴다. 그리고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체계를 구축해 일자리 창출의 동력으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규모가 크다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든다는 논리는 대기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산업성장시대의 사고방식이다.

모든 기업이 반드시 성장기를 거쳐야 할 이유는 없다.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성장의 늪이라는 변곡점을 거쳐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업은 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침몰하게 된다.

반면에 장수기업들은 비즈니스 모델이 잘 작동했던 창업 초기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성장보다는 창업가가 직접 통제 가능한 규모로의 유지를 선택한 것이다. 어떤 사업에서는 이러한 의사결정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

기업이 성장해야만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역사회 경제의 근간은 소규모 기업이 지탱하고 있으며, 이러한 소규모 장수기업이 다수 확보될 때 국가의 균형발전도 가능하다. 규모가 크다고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든다는 논리는 대기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고성장시대의 산업정책적인 사고방식이다. 저성장시대에는 기업이 소규모로 남는다고 할지라도 핵심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존속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지방의 외진 곳에 위치한 소규모의 중소기업이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기업이 많다. 내열 바코드라벨을 생산하는 YS테크는 매출액 10억엔에 종업원이 24명에 불과하나 이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다. 아마이케고오센은 종업원이 45명밖에 되지 않으나 세계에서 가장 얇은 의류직물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IMF 외환위기 사태 직전까지 성장 중심의 산업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2~3%대에 머무르고 있다. 고도성장 시대가 끝났음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고도성장 산업시대의 가젤 육성 기업정책에서 벗어나 저성장시대에 적합한 작은 장수기업 육성 산업 모델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존에 적합한 기업으로 자리 잡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가치가 있다. 결론적으로 성장만이 능사는 아니다.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은 성장을 하도록 하되, 굳이 모든 기업에게 성장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작은 장수기업으로 남는 것도 일자리 유지 측면에서 재평가해야 한다.

 

박주영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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