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농그룹 캐시카우 자리매김
신장결석 치유효과…약수로 입소문

“당신이 마시는 건 물이 아닌 에비앙”
프리미엄 전략으로 세계시장 접수

다농, 실적보다 가치…비전기업 등극
페트병 재활용해 탄소중립 견인차

에비앙은 연간 매출핵은 17억유로 안팎이다. 한화로 2조4000억원 정도다. 연간 생산량은 15억리터다. 생산량의 40%가 프랑스에서 소비되며 미국과 일본에선 가장 많이 수입되는 생수가 에비앙이다.
에비앙은 연간 매출핵은 17억유로 안팎이다. 한화로 2조4000억원 정도다. 연간 생산량은 15억리터다. 생산량의 40%가 프랑스에서 소비되며 미국과 일본에선 가장 많이 수입되는 생수가 에비앙이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 수 있었던 이유는 평양 일대가 석회질 토양이기 때문이었다. 석회질 토양에선 경수가 난다. 센물이라고도 불리는 경수엔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 물이 마르면 자국도 생긴다. 빨래를 하기 어렵다. 경수는 그대로 마시면 배탈이 날 수도 있다. 평양에 우물이 없었던 이유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대동강은 평양 주민들한텐 생존과 생활에 직결된 식수원이었다. 물론 김선달이 팔아먹은 건 대동강물이 아니었다. 대동강물에 대한 독점 판매권이었다. 물론 조선 시대에 그런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됐을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김선달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구전 설화를 소설화한 것이다. 반면 프랑스의 김선달인 에비앙은 실화다. 김선달처럼 에비앙도 석회질 토양 덕분에 시장성을 얻었다.

에비앙의 역사는 234년 전 프랑스 대혁명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에 터졌다. 프랑스 파리에 살던 레제르 백작은 난세를 피해 알프스로 도피했다.

이때 2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 가브리엘 까샤라는 사람의 집이었다. 까샤네 집 뒤뜰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레제르 백작한텐 신장결석이라는 지병이 있었다. 까샤네 우물을 매일 마시자 신장결석이 치유됐다.

이때부터 까샤네 우물은 약수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25년 가까이 지난 1824년 카샤는 우물에서 본격적으로 약수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카샤네 물이 최초의 브랜드명이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카샤네 동네엔 마을 이름조차 없었다. 1864년 나폴레옹 3세가 카샤네 물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마을에 에비앙이라는 이름을 하사한다. 1878년 에비앙은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로부터 제대로 치료 효과를 인정 받는다.

바야흐로 에비앙은 프랑스 의학계가 보증하고 프랑스 왕실이 인정한 약수가 된 것이다. 덕분에 파리에선 에비앙을 마시고 에비앙으로 목욕을 하는 게 유행이 됐다. 파리의 토양이 평양처럼 석회질이기 때문이었다. 파리 시민들에게 에비앙은 순식간에 생필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에비앙은 역사상 최초로 돈을 받고 판매된 물이다. 파리 김선달이었다.

연간 매출 2조4천억원

에비앙은 연간 매출핵은 17억유로 안팎이다. 한화로 2조4000억원 정도다. 연간 생산량은 15억리터다. 생산량의 40%가 프랑스에서 소비된다. 미국과 일본에선 가장 많이 수입되는 생수가 에비앙이다. 한국도 비슷하다.

그런데 프랑스 본토와 해외에서 에비앙의 포지셔닝은 좀 다르다. 사실 에비앙도 센물이다. 칼슘과 마그네슘과 탄산수소염 함량이 높다. 그래서 해외에선 이런 성분이 몸에 좋고 그래서 비싸다는 프리미엄 전략을 쓴다.

에비앙의 역대 광고 문구를 살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당신이 마시는 것은 물이 아니라 에비앙입니다.” “젊음을 마시자.” 에비앙의 효능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까샤네 약수로 처음 유명해진 에비앙의 역사를 떠올리면 에비앙다운 광고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에비앙은 상대적 연수로 팔린다. 가격도 소프트워터답게 저렴하다. 프랑스 평균 소비자 가격은 한국 평균 소비자 가격의 절반 이하다. 프랑스에서 팔리는 생수는 대부분 경수다.

한국인의 입맛엔 에비앙도 경수지만 더 하드한 물에 익숙한 프랑스인들한텐 에비앙은 약과다. 에비앙은 프랑스에선 단물이지만 글로벌에선 센물이다. 프랑스에선 국민 생수지만 글로벌에선 프리미엄 약수다. 에비앙은 스타 마케팅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프랑스 왕실한테 이름을 하사 받은 물 답게 로열이 스타로 바뀐 것 뿐이다.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이 호텔에서 에비앙만 마시는 스타로 유명하다. 물론 이런 마케팅비는 물값에 포함된다.

에비앙 역사는 프랑스 산업사

그렇지만 에비앙이 비싼 파리 김선달이 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알프스라는 취수원과 프랑스라는 토양과 마케팅이라는 연금술 때문만은 아니다. 에비앙의 역사는 사실상 프랑스 산업사와 일맥상통한다.

에비앙의 본체는 다농이다. 다농은 프랑스 최대 농산물가공 그룹이다. 한국 소비자들한텐 요거트 액티비아로 유명하다. 실제로 액티비아와 에비앙은 다농의 양대 캐쉬 카우 브랜드다.

다농의 에비앙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탄소중립적인 생수다. 보틀 투 보틀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수용 패트병을 재활용해서 다시 패트병을 만드는 게 보틀 투 보틀인데 에비앙의 비율은 28%에 달한다. 
다농의 에비앙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탄소중립적인 생수다. 보틀 투 보틀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수용 패트병을 재활용해서 다시 패트병을 만드는 게 보틀 투 보틀인데 에비앙의 비율은 28%에 달한다. 

다농은 몇 개의 식품가공기업이 수십년에 걸쳐서 인수합병을 거듭하면서 탄생한 기업이다. 다농의 시작은 191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창업자 이삭 카라소가 장염을 앓던 아들 다니엘 카라소를 위해 요거트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다니엘의 애칭이 다농이었다.

신장결석을 치료한 에비앙과 장염을 치료한 다농은 먹거리 건강이라는 키워드로 일맥상통한다. 다농은 프랑스 시장으로 진출했다. 공장을 건설하고 사세를 넓혔다. 2차 대전이 터졌다. 이삭 카라소는 다농 본사를 뉴욕으로 이전했다.

이때 미국 회사명이 다논이 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다농은 1967년 치즈 제조사 제르베와 합병된다. 이때부터 제르베 다농이 된다.

그렇지만 제르베 다농의 새로운 주인은 따로 있었다. 수숑 뇌브젤이라는 유리병 회사였다. 수숑 뇌브젤의 앙투완 리부는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앙트완 리부는 1960년대 프랑스 유리병 용기 산업을 일통한다. 용기 시장을 장악하자 다음은 거기에 담을 내용물 시장에 관심을 돌렸다. 앙투완 리부의 레이더망에 걸린 회사가 치즈 회사와 요거트 회사가 합병한 제르베 다농이었다. 앙투완 리부는 1973년 제르베 다농을 인수합병해버린다.

그렇게 프랑스 최대 유리 식품 가공 회사인 BSN 제르네 다농이 탄생한다. 결국 이름이 너무 길어서 다농으로 리브랜딩을 하게 된 것이다.

다농2세, 선택과 집중에 방점

그런데 앙투완 리부가 이끌던 수숑 뇌브젤은 제르베 다농을 인수합병하기 전부터 에비앙의 지분 25%를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는 페트병이 아니라 유리병의 시대였다. 덩치를 키운 앙투완 리부의 다농은 결국 에비앙의 지분 100%를 사들인다.

그리곤 회사의 모태였던 유리병 부문을 정리해버린다. 유리 제조업 기업에서 식품 가공업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94년 다농 그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1996년엔 앙투완 리부의 아들 프랑크 리부가 다농의 경영권을 물려받는다. 그렇다고 다농이라는 뿌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농이라는 이름의 원조인 아들 다니엘 카라소는 다농의 명예회장으로서 2009년까지 건강하게 생존한다. 별세 당시 103세였다. 다니엘 카라소야 말로 다농 요거트의 장수 효과를 입증하는 산증인이었던 셈이다.

다농의 창업주 앙투완 리부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다농을 키웠다. 한때 다농은 요쿠르트부터 파스트, 통조림, 소스, 비스킷, 시리얼, 사탕, 치즈, 맥주까지 거의 모든 식품을 다루는 다각화 식품 기업이었다.

그런데 아들 프랑크 리부는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다농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딱 4개 식품 카테고리만 제외하고 모든 계열사를 매각해버렸다. 4개는 요쿠르트와 생수와 이유식과 기능성 건강식이었다.

기준은 식품을 통해 소비자의 건강에 기여한다는 비전이었다. 장염을 고친 요거크와 신장결석을 고친 에비앙은 당연히 다농의 비전에 딱 맞아떨어지는 제품이었다.

반면 다농은 프랑스 국민 비스킷 브랜드로 통했던 뤼를 과감하게 매각해버렸다. 다농은 뤼를 1986년 인수했다. 프랑스 비스킷 시장 점유율 1등이었다. 매출은 3조원이 넘었다. 다농은 2007년 뤼를 크래프트에 매각했다.

결과적으로 다농은 건강한 비전에 충실한 사랑 받는 식품 기업이 됐다. 대신 몇몇 1등 제품에 의존하는 단촐한 매출 구조를 가진 기업으로 변했다. 에비앙도 그 중 하나였다.

에비앙은 유럽을 대표하는 생수지만 미국 시장의 주인공은 아니다. 미국에선 네슬라와 코카콜라와 펩시가 단물 생수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데 2005년 유럽 생수 시장 진출을 노리는 펩시가 에비앙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다. 이땐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수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힐 정도였다.

반면 다농 주가는 14%나 급등했다. 프랑스 주식 시장은 다농이 에비앙을 좀 더 공격적으로 경영해주길 원한다는 방증이다. 비전 기업이 된 이후 다농은 실적보단 가치를 더 앞세우는 기업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해임된 엠마뉘엘 파베르 다농 CEO
2021년 3월 해임된 엠마뉘엘 파베르 다농 CEO

다농을 둘러싼 프랑스 시장의 상반된 시각이 극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2021년 3월 엠마뉘엘 파베르 다농 CEO의 해임 사건이었다. 파베르는 다농을 미션 기업으로 만들었다.

2014년 CEO에 취임한 이후 건강과 환경을 이익과 주가보다 우선하는 기업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사실 창업주의 아들 프랑크 리부가 다농을 건강 비전 기업으로 변화시킨 이후 이런 변화는 다농한텐 익숙한 것이었다.

반면 주식 시장은 다농의 이런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봤다. 파베르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야누스 무함마드와 함께 방글라데시에 빈곤 퇴지를 위한 사회적 기업을 세웠다.

사실 이것 역시 프랑크 리부 때부터 추진돼온 것이었다. 2019년엔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여성과 소수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글로벌 연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결정타는 2020년 탄소 배출로 인한 비용을 순익에서 제외하고 주당순이익을 발표하는 이른바 탄소 조정 주당순이익 회계 도입이었다. 에비앙은 페트병에 담겨 판매된다.

에비앙으로 벌어들인 돈에서 페트병으로 인한 탄소 배출을 제외하고 주가에 반영하겠다는 뜻이었다. ESG경영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급진적 정책 중 하나였다.

생수시장 해마다 빅뱅

물론 당연히 다농의 EPS는 떨어졌다. 물론 당연히 주가도 하락했다. 결국 블루벨이라는 이름의 행동주의 펀드를 선두로 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2020년 유니레버와 네슬레 같은 경쟁 기업의 주가는 40% 안팎으로 상승했다. 반면 다농의 주가는 30%나 폭락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장이 미쳐 돌아갈 때인데도 다농 주가는 바닥을 쳐버린 것이다. 게다가 다농은 코로나로 2000명이나 해고를 해야만 했다. 양적완화의 혜택은 놓치고 코로나의 피해만 입은 것이다.

결국 다농 이사회는 다농의 ESG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던 엠마뉘엘 파베르를 해임하는 것으로 시장을 달랬다. 프랑스에선 이걸 프랑스 자본주의의 영혼을 놓고 벌이는 투쟁이라고 분석했다. 파베르가 지속 가능 경영에 집착하다 자신의 지속 가능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다농의 에비앙은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탄소중립적인 생수다. 보틀 투 보틀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수용 패트병을 재활용해서 다시 패트병을 만드는 게 보틀 투 보틀이다. 에비앙의 보틀 투 보틀 비율은 28%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식약처 규제로 인해 보틀 투 보틀은 아직 불가능하다. 재활용 용기에는 다시 음료를 못 담게 돼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의 생수 시장 규모는 2조2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4000억원 수준에서 5배 이상 급성장했다.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10%씩 폭풍 성장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플라스틱 페트병 소비가 폭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시장에선 300개 안팎의 생수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다. 솔직히 생수 원가는 1병 당 200원 안팎으로 본다. 페트병을 포함한 탄소배출비용이 포함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이건 시장의 65%를 지배하는 탑3인 제주삼다수, 아이시스, 백산수도 자유롭지 못하다.

비싼 에비앙을 사마실 필요는 없지만 에비앙이 비싼 이유를 알아둘 필요는 있다. 한국 시장에서도 봉이 김선달처럼 물만 팔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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