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후계자 발굴⋅육성이 가족기업 장수 비결

상사가 부하로부터 조직의 이익이 아닌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챙기면 ‘갑질’이 된다. 몇 년 전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땅콩 회항' 논란, 미스터피자 사례, 종근당·몽고식품·대림산업 등에서 불거진 운전기사 폭행, 폭언과 같은 갑질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런 일들을 통해 인간 존엄의 원칙을 늘 염두에 두면서 ‘을’의 눈물을 닦아주고 최소한의 체면과 위엄을 지켜주는 첫걸음인 후대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가족기업 승계의 시작과 마무리는 바로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족기업 승계는 경영자가 후계자를 선정하고 약 10∼15년의 장기간에 걸쳐 교육과 학습을 거쳐 경영권을 넘겨주는 과정이다. 경영자가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서서히 이전하면서 자신의 개입을 점차 줄인다.

잘된 승계는 인성과 능력을 갖춘 후계자를 발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경영자는 후계자의 ‘암묵지’ 형태로 된 잠재된 능력을 측정과 관찰이 가능한 ‘형식지’로 끌어내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통해 자질 있는 후계자를 만든다.

후계자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지니는 의무감, 기업 경영자로서 가지는 책임감을 기업가정신으로 응축해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명예로운 가문을 만든다. 선대의 가훈과 철학을 알고 최근의 기술과 경영을 이해하는 역량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설계해 조직안정과 기업발전을 이끄는 리더십으로 이어진다.

교황청과 교회의 종(bell)을 전문적으로 제작하기 위해 1000년도에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주물기업 ‘폰데리아 폰티피시아 마리넬리(Pontificia Fonderia Marinelli)’는 장인정신을 1023년간 이어온 이탈리아의 가족기업이다. 주조소가 마리넬리 가문의 후손에게는 학습장이자 놀이터다. 그들은 후계자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성⋅능력 고려해 경영권 점차 이전

가훈⋅원칙 공유하고 사회공헌 중시

자식승계 집착 말고 적임자 찾아야

1568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설립한 아르누보 스타일의 고급 와인잔 전문 제조업체 폰 포슁거(von Poschinger)는 자사의 모든 제품에 새기는 ‘P’가 왕실이 사용하는 ‘명품 유리제품’의 보증임을 가문의 자부심으로 드러낸다. 이는 기술력을 응축하는 고된 과정의 결과물이다. 배우자는 사업의 어려움과 시련을 이해하는 가문에서 간택한다.

스웨덴 발렌베리(Wallenberg)에서 후계자가 되려면 반드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 강인한 정신력과 고취된 애국심을 보여줘야 한다.

세계적 금융 중심지에 진출해 실무 경험을 익히며 금융 흐름을 보는 안목을 기르고 국제적 인맥을 관리해 네트워크를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과 원칙을 공유하고 중시하며, 번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부모는 일요일 아침마다 자녀들과의 산책 등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공감대를 쌓는다. 형제는 옷을 대물림하며 우애를 나누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게 한다. 할아버지는 손자녀에게 지혜를 전하는 한 세대 건넌 격대 교육(隔代敎育)을 일상화한다.

일본은 가업승계 결정에 혈연보다 기업을 우선한다. 누구든 능력과 의지만 확인되면 승계 후보에 오를 수 있는 기업문화다. 가족경영도 적지 않지만 대개 3대째부터 양자(養子) 승계를 한다. 장자가 있더라도 경영자로서 자질이 부족하면 능력 있는 사위, 내부직원, 외부인재 등에서 양자를 선발해 후계자로 삼는다. 가업의 승계에 상품을 다루는 개인 자질과 관계 기능을 중시한다. 여기에 노렌(暖簾, のれん)(일본에서 가게나 식당 입구에 거는 헝겊으로 된 발)을 더해 경쟁력 있는 노포(老鋪) 즉 장수기업을 이어간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영자가 피, 땀, 눈물을 흘려 후계자를 찾으나 그 과정이 어렵고 실패하기도 한다. 후대 교육은 이처럼 어렵다. 차라리 나의 자녀와 남의 자녀를 바꿔 교육해 보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역자교지(易子敎之)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한국가족기업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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