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판사의공정거래법 산책(8)하도급법상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금지

최근 들어 공정거래법의 중요성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가 지켜져야 가능하다. 이 법의 목적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경제력 집중,       부당공동행위,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 자유로운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 중소기업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공정거래법 이해를 돕고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허승 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공정거래법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오피스텔 신축공사를 수주한 대형건설은 중소건설 등 협력업체에 공사내역서가 포함된 입찰계획서와 함께 토목공사 견적서를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대형건설 담당자는 이메일을 보낸 후 협력업체에 일일이 전화해 하도급업체로 선정되더라도 추가 협상이 있다고 개별적으로 알렸다. 여러 협력업체가 대형건설에 견적서를 제출했고, 중소건설이 가장 낮은 가격인 21억원을 제시했다. 대형건설은 중소건설에 20억원에 하도급계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했고, 중소건설은 이를 수락해 20억원에 하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얼마 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부당 하도급대금 직권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대형건설은 아직 공사 중인 중소건설의 하도급대금을 원래 제시했던 가격인 21억원으로 증액해줬다. 실제로 진행된 직권조사 결과 공정위는 대형건설이 하도급법상 금지되는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을 했다며 대형건설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판사 : 공정위는 대형건설이 최저입찰금액인 21억원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한 것이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이라고 봤군요.

대형건설 : 저희는 경쟁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을 통해 하도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단지 수의계약을 체결할 업체를 정하기 위해 사전에 여러 협력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았을 뿐입니다. 협력업체가 오해하지 않도록 담당직원이 개별적으로 추후 협상이 진행된다고 알리기까지 했습니다.

공정위 : 아닙니다. 이메일에 입찰계획서가 첨부돼 있었습니다. 이를 본 협력업체는 경쟁입찰이 실시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대형건설 : 만약 경쟁입찰이 있었다고 해도 저희는 중소건설이 공사를 마치기 전에 하도급대금을 증액해줬습니다.

공정위 : 처음 계약을 체결할 때 하도급법을 위반한 이상 나중에 하도급대금을 증액해줬어도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의 규제

올해 4월 부산지방법원은 15개 수급사업자의 하도급대금을 최저입찰금액보다 약 17억원 낮게 결정해 기소된 건설회사와 그 대표이사에게 하도급법위반을 이유로 각각 3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죄질이 좋지 않지만, 건설회사가 이미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등을 이유로 과징금 57억원을 납부한 점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죠. 최저입찰금액보다 낮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을까요?

원사업자는 하도급대금을 낮추기 위해, 수급사업자는 하도급대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협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하도급대금을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자율에 맡기면 지나치게 낮은 하도급대금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하도급대금이 낮게 결정되면 수급사업자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다시 자신의 하수급업자에게 더 낮은 하도급대금을 강요하게 되죠. 이처럼 하도급대금은 단순히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사이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도급거래질서 전반의 문제로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도급법상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 금지

공정한 하도급거래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원사업자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낮은 하도급대금을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하도급법 제4조 제1항은 “부당하게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해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가 합의로 정한 하도급대금이 ‘부당하게 낮은 수준’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공정위가 하도급법 제4조 제1항을 근거로 원사업자를 제재한 사례는 찾기 어렵습니다.

하도급법은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4조 제2항에서 원사업자가 특정한 행위를 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했다면 그와 같이 결정된 하도급대금을 하도급법 제4조 제1항의 ‘부당한 낮은 수준의 하도급대금’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경쟁입찰에 의해 하도급계약을 체결할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최저가로 입찰한 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대금을 결정하는 행위”(7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위 사례에서 대형건설은 중소건설이 제시한 최저입찰금액인 21억원보다 낮은 20억원에 중소건설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대형건설은 21억원보다 낮은 20억원으로 하도급대금을 정한 정당한 사유를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을 하지 못하면 20억원의 하도급대금이 실제로 낮은 수준인지와 관계없이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으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공정위가 ‘부당하게 낮은 수준의 하도급대금’을 증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원사업자 역시 ‘최저입찰금액보다 낮게 하도급대금을 결정한 정당한 사유’를 증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재판에서도 거의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재판에서는 원사업자가 ‘경쟁입찰’을 했는지가 주로 다퉈집니다.

하도급법상 ‘경쟁입찰’이란

원사업자가 경쟁입찰을 했다고 인정되면, 원사업자는 사실상 경쟁입찰을 통해 받은 최저입찰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하도급대금을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도급법령은 어떤 경우가 ‘경쟁입찰’에 해당하는지를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실제 사건에서 원사업자가 경쟁입찰을 했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홈페이지에 가장 낮은 가격의 견적을 제출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고 공고한 후 여러 회사를 한 장소에 모아 견적을 받은 다음 하도급업체를 선정했다면 경쟁입찰이라고 보기 쉽겠지만, 단순히 여러 회사로부터 견적서를 받았다는 사정만으로는 경쟁입찰이라고 보기 어렵겠죠.

아직 하도급법상 ‘경쟁입찰’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정의한 대법원 판결은 없지만, 법원은 ① 복수의 업체가 참가했고, ② 사전에 낙찰자 선정기준 등이 공지됐으며, ③ 입찰참가자들이 경쟁입찰로 인식했다면, 하도급법상 ‘경쟁입찰’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특히 원사업자가 낙찰자 선정기준을 명시적으로 공지하지 않더라도 입찰참가자들이 입찰계획서 등을 통해 가격이 핵심적 평가대상임을 알 수 있었다면 낙찰자 선정기준을 공지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전에 추가 협상이 있을 수 있다고 고지했고, 실제 협상을 통해 하도급대금을 결정했어도 앞서 본 요건이 충족되면 경쟁입찰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경쟁입찰이 아니라고 보면 원사업자들이 하도급법 규제를 쉽게 회피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의 판단시기

그렇다면 공사 진행 중 하도급대금을 최저입찰가격 이상으로 인상했다면 하도급법의 제재를 피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할 수 없습니다. 하도급법은 하도급계약을 체결하는 시점에 부당한 대금결정행위 금지를, 계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부당한 대금 감액 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당한 하도급대금 결정이 있었는지 여부는 최초 계약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즉, 계약 체결 후에 공사대금을 증액해 주는 것은 이미 위반행위가 성립된 이후의 사정에 불과합니다. 결론적으로 앞선 사례에서 대형건설의 주장은 모두 재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위 사례는 서울고등법원 2020. 10. 8. 선고 2020누3258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2. 5. 26. 선고 2021누36280 판결 등을 참조해 필자가 창작한 것임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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