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용병공급, 전쟁범죄 주도
푸틴의 요리사→해결사로 자리매김
바그너 서열 1·2위 동시에 추락사
푸틴, ‘배신하면 죽음’ 경고장 날린듯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과 우트킨이 같은 비행기에 탔다는 것부터 기이한 정황이었다.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드미트리 우트킨은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서열 1위와 2위였다. 프리고진과 우트킨은 그 동안 절대로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대통령과 부통령이 따로 이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 세계 전장에서 피를 뿌리고 다니는 바그너 그룹의 특성상 대표와 부대표가 따로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23일은 예외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그너 그룹의 전용기인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제트기에 함께 탔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인 프리고진이 평소 애용해온 전용기였다. 프리고진과 우트킨을 포함한 바그너 그룹의 수뇌부를 모두 태운 전용기는 8월 23일 모스크바 이륙한 이후 갑작스럽게 추락했다. 한쪽 날개를 잃은 채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탑승자는 전원 사망했다.

푸틴 대통령은 즉시 프리고진의 죽음을 공식화했다. 나아가 “유능했지만 심각한 실수도 했다”며 평가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공로를 치하했다. 무덤을 파주고 묘비명까지 직접 써준 것이다. 프리고진이 스스로 죽음을 가장하고 사라진 것이라면 이렇게 죽음을 신속하게 공식화해버릴 리가 없다. 러시아 정부는 프리고진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제하고 있다.

러시아군대에 식자재공급

사실 러시아 정부가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프리고진이 아니다. 프리고진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원 아래 설립한 용병기업이 바그너 그룹이다. 1인자와 2인자를 한꺼번에 사고사로 처리한 것부터가 프리고진 사후에 바그너 그룹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의 주효한 전쟁 무기이기 때문이다. 자칫 관리에 실패할 경우 지난 6월 24일 벌어졌던 프리고진의 바그너 쿠데타와 같은 대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바그너 그룹은 결코 만만한 조직이 아니다. 일단 계열사만 70개다. 정부 발주 사업을 수주하면서 안정적으로 매출을 일으켜왔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각국 정부의 국책 사업을 수주해왔다. 물론 여기서 국책 사업은 각종 전쟁 범죄들이다. 그 대가로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석유 같은 천연자원을 받았다. 동시에 러시아 군대를 대상으로 각종 식자재 공급업을 해왔다.

지난달 29일 러시아 모스크바 성바실리성당 인근 한 교회 앞에 마련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추모 장소.
지난달 29일 러시아 모스크바 성바실리성당 인근 한 교회 앞에 마련된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추모 장소.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에 용병을 공급했다. 러시아 정부의 용역을 받아서 각종 해외 이권 사업에 불법 개입했다. 해외 파괴 공작과 요인 암살을 해왔다. 러시아 국내 여론 조작을 위해 댓글 부대도 운용해 왔다. 특히 바그너 그룹은 주둔지 지역에서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했었다. 공포는 전쟁의 주무기 중 하나기 때문이다.

정작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안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화려한 본사 건물까지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대접을 받는다. 러시아 밖에선 깡패 집단 취급을 당하지만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에 지출한 예산은 2조5000억원에 달한다. 2022년 러시아의 국방비는 3조르불 정도다. 한화로 약 42조원에 달한다. 바그너 그룹에 지출된 예산은 2022년 러시아 국방비의 6%에 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2023년 국방비를 43% 증액해서 5억르불로 확대했다. 한화로는 120조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재 국면에선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연히 바그너 그룹으로 흘러들어가는 예산도 증액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 갑자기 추락사한 것이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비즈니스적으로 본다면 바그너 그룹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뜻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미 지난 6월 프리고진의 난 이후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 그룹을 완전히 장악하려고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걸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인수합병”이라고 표현했다.

바그너그룹 용도는 ‘더러운 칼’

바그너 그룹의 수장은 프리고진이지만 사실 바그너 그룹을 만든 건 프리고진이 아니다. 체첸 전쟁과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던 러시아 군인인 드리트리 우트킨이다. 우트킨은 단순한 병사가 아니었다. 러시아 총참모부 정보총국 출신의 특수전 전문가였다. 현대전은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불린다. 단순히 무기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심리전과 사이버전을 통해 상대방의 전의를 꺾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다. 바그너 그룹이 필요한 이유다.

전시에 적국의 전의를 무너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민간인 살상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벌이는 민간인 살상의 주요 목적이다. 비정하고 비겁하지만 승리를 위해선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바그너 그룹은 정부군이 아니다. 그래서 민간인 살상에서 훨씬 자유롭다. 국제적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국제적 비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한테 불리할 수 있다. 이것도 하이브리드전의 연장이다. 현대전은 총과 포탄만 갖고 하는 게 아닌 것이다. 사실 우트킨은 바그너 그룹을 만들기 전에 슬라브 군단이라는 용병 기업을 만들어서 활동했다. 2013년 바그너 그룹을 창설헀다. 2014년 2월 크림 반도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자편에서 싸우면서 바그너 그룹의 존재를 처음 알렸다.

그런데 우트킨은 2016년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을 본격적으로 키우려던 시기였다. 우트킨은 러시아 TV의 화면에 우연히 한번 잡혀서 존재가 노출된 이후엔 완전히 잠행을 시작했다. 대신 전면에 나선 건 푸틴의 요리사로 유명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었다. 프리고진은 군사 작전 전문가가 아니다.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핫도그를 팔아서 자수성가한 요식업 사업가였다. 프리고진이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운영하던 뉴아일랜드라는 선상 레스토랑은 러시아 고위층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했다. 여기 단골이 푸틴이었다.

푸틴은 1999년 집권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만찬도 프리고진의 뉴아일랜드에서 열었다. 이때 프리고진이 직접 푸틴과 부시한테 음식을 서빙했다. 2003년 푸틴의 생일 연회도 뉴아일랜드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프리고진은 푸틴의 요리사라고 불리게 됐다.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 군사 전문가에서 요리사로 바뀐 건 본격적으로 러시아 정부가 바그너 그룹을 더러운 칼로 쓰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푸틴과 러시아 정부의 의지를 정확하게 수행할 인물이 필요했다. 사실상 바그너 그룹을 푸틴이 장악한 것이다. 동시에 우트킨이 가진 네오 나치 경력도 숨겨야만 했다. 우트킨은 바그너의 전면에 나서기엔 약점이 너무 많았다.

프리고진은 바그너의 수장을 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에서 푸틴의 해결사가 됐다. 원래 프리고진의 본업은 콩코드 케이터링이라는 회사였다. 군부대 급식을 독점하는 급식 업체였다. 뉴아일랜드에서 맺은 푸틴과의 인연으로 대형 이권을 챙긴 것이다. 이번엔 급식과는 비교가 안 되는 거대한 이권을 얻은 것이다. 전쟁이었다.

권력강화 위해 우크라 침공

러시아한테 전쟁은 비즈니스다. 푸틴의 집권은 1기와 2기로 나뉜다. 2000년대 푸틴 집권 1기의 기반은 올리가르히였다. 러시아의 천연자원을 독점 수출하는 신흥재벌을 올리가르히라고 부른다. 푸틴은 2000년대 러시아 경제를 천연자원 수출로 성장시켰다. 그런데 푸틴이 대통령 연임 금지 규정 때문에 총리를 했다가 2012년 다시 대통령으로 재집권했을 때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를 대상으로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는 올리가르히 대신 다른 집권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로바키였다. 실로바키는 KGB 출신과 군정보국 출신과 군산업체가 결합된 군산복합 카르텔이다. 실로바키는 러시아 권부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실로바키가 장악한 러시아는 늘 전쟁이 필요한 국가일 수밖에 없다. 전쟁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고 돈을 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결과다. 실로바키들한테 전쟁은 하나의 비즈니스다. 각종 국제 분쟁에 개입하면서 무기 수출도 하고 군사적 영향력도 확대하고 천연자원도 벌어들였다. 그런데 국제법상 러시아 정부와 러시아 정부군은 함부로 국제 분쟁에 개입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그너 그룹 같은 용병 기업을 본격 육성하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은 러시아 정부를 위해 일하지만, 러시아 민간 기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바그너 그룹의 쓸모가 처음 드러나 사례가 2015년 시리아 내전이었다. 바그너 그룹은 당시 알아사드 정부군을 도와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다. 그 댓가로 석유와 가스 매장량 25%를 확보했다. 그 뒤로 전 세계 분쟁 지역은 바그너 그룹의 사업장이 됐다. 수단, 리비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모잠비크가 일터였다. 자원채굴권과 금과 다이아몬트와 석유를 대가로 받았다. 바그너 그룹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대 빌딩 본사를 세울 만큼 큰 기업이 됐다. 이 돈이 실로바키들한테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푸틴은 바그너 그룹을 국내용으로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의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가 패트리어트 미디어 그룹이다. 푸틴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미디어 비즈니스를 한다. 이름부터가 애국이다. 당연히 정부 광고를 싹쓸이했다. 해외 사업부에 이어 국내 사업부까지 만든 셈이다. 푸틴은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과정에서도 바그너 그룹으로 재미를 봤다. 용병이기 때문에 러시아군 공식 사상자 수에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부담 없이 쓰는 카드였다.

전 세계에서는 PMC라고 불리는 민간군사기업이 60개 이상 존재한다. 종사자는 1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 출신 군인들이 대부분이다. 50개 국가 이상이 이들의 사업장이다. PMC 산업은 2020년대 들어 3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전에서 바그너 그룹 같은 PMC의 효율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전쟁의 외주화와 국가 없는 전쟁이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국가와 국가 간 전쟁은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국가의 존재를 지운 PMC를 앞세운 대리전이 국가 이익을 놓고 벌어지게 될 확률이 크다.

어떤 식으로든 제2의 프리고진이 등장해서 이름만 바꾼 바그너 그룹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러시아에게 전쟁은 산업이다. 군대는 기업이다. 시장은 확대일로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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