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여행 캐리어
폴리카보네이트 접목해 소재 혁신
‘히든카드’ 8개 멀티휠로 시장 접수

LVMH에 인수, 럭셔리 브랜드 변신
패션화에도 성공, 매출 등 고속성장

여행 캐리어 아닌 여행 자체’가 목표

12일. 10월 초 추석 연휴까지 놀 수 있는 최장 휴일이다. 10월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일단 추석 연휴가 6일로 늘어났다. 9월 28일 추석 전야부터 10월 3일 개천절까지 내리 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차 휴가를 사흘만 뒤에 붙이면 10월 9일 한글날까지 황금 연휴가 완성된다.

이미 해외 여행 상품은 동이 났다. 하나투어 해외 여행 상품은 추석 연휴 예약이 예전에 비해 34%나 증가헀다. 특히 유럽과 미국과 캐나다처럼 장거리 해외 여행은 90% 이상 소진됐다. 긴 연휴엔 장거리 여행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건 역시 항공기용 캐리어다. 여행의 시작은 여행용 짐을 챙기는 것이다.

리모와는 프리미엄 럭셔리 항공기용 캐리어다. 리모와의 특징은 3가지다. 튼튼하다. 가볍다. 이동성이 높다. 이런 리모와의 특징은 20세기 초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행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리모와의 역사가 곧 여행의 역사다. 게다가 독일 회사인 리모와는 2016년 프랑스 회사인 LVMH에 인수되면서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났다. LVMH가 소유한 루이비통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 여행을 상징하는 브랜드다. 독일 캐리어 브랜드인 리모와는 LVMH에 인수되면서 21세기의 루이뷔통으로 거듭나고 있다. 프랑스 여행 가방 브랜드 루이비통이 독일 여행 가방 브랜드 리모와를 인수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가방 장인의 손길로 탄생

리모와는 1898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창업주는 가방 장인인 파울 모르스첵이었다. 파울 모르스첵은 나무와 가죽으로 여행 가방을 만드는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파울 모르스첵은 독일 쾰른에서 코퍼파브릭 파울 모르스첵이라는 이름의 가방 브랜드를 만들었다. 퀠튼에는 유명한 쾰른 대성당이 있다. 고딕 양식의 뾰족 첨탑 2개가 특징인 교회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열리던 곳이다.

리모와에는 지금도 쾰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리모와의 로고는 쾰른 대성당의 첨탑을 상징화한 것이다. 흔히 리모와의 M자로 오해받는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장거리 여행의 중요한 교통 수단은 기차와 배였다.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된 건 193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여행자들은 직접 트렁크를 운반하지도 않았다. 짐꾼이 짐을 대신 날라주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이 시절 여행용 가방의 핵심 기능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무조건 튼튼하고 커야만 했다. 파울 모르스첵은 아주 튼튼하고 매우 큰 여행용 가방을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었다. 특히 리모와의 차별성은 크기였다. 파울 모르스첵 시절 리모와의 광고를 보면 나무로 만든 초대형 트렁크를 홍보하고 있다. 이걸 들고 여행을 다니냐고 물을 정도였다.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륙간 여행의 수단이 배에서 비행기로 바뀌었다. 태평양 상업 항로와 대서양 상업 항로를 개척한 건 팬암 항공사였다. 항공업계의 전설적인 CEO인 후안 트리페는 1927년 팬 아메리칸 월드 항공을 창업했다. 1935년에 태평양과 대서양 노선을 개척하면서 글로벌 항공사의 개척자가 됐다. 보잉의 대표적인 항공기인 보잉747도 사실 후안 트리페가 보잉에 의뢰해서 설계한 것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팬암은 이제는 사라진 항공사다. 단지 리나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디카프리오는 팬암 파일럿인 척 하고 세계 여행을 다닌다. 팬암의 등장으로 글로벌 여행의 트렌드는 기차길과 바닷길에서 하늘길로 바뀐다. 리모와도 이런 여행 트렌드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한다. 배와 달리 비행기로 여행하려면 짐이 가벼워야 한다. 비행기 여행에선 무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하늘길이 열렸을 때 리모와의 주인은 파울 모르스첵의 아들 리하르트 모스르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 무렵 쾰른 공장에서 불이 났다. 나무와 가족 소재 부품은 모두 타버렸다. 남은 건 알루미늄 뿐이었다. 아들 리하르트 모르스첵은 알루미늄을 소재로 한 여행 가방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위기는 기회였다. 이게 지금도 리모와의 시그니처인 금속 하드케이스의 시작이었다.

 

외관  줄무늬가 트레이드 마크

2023년 리모와는 125주년을 맞았다. 1세기가 넘는 역사 속에서 리모와는 경영 세대 교체와 소재 세대 교체 그리고 여행 트렌드 교체의 교집합을 찾아내서 매번 변신에 성공했다. 1930년대가 시작이었다. 아버지 파울 모르스첵과 달리 아들 리하르트 모르스첵은 젊은 경영자답게 변화한 요즘 여행 트렌드를 잘 알고 있었다. 소비자는 가죽과 나무 대신 단단하지만 가벼운 금속 하드케이스 트렁크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1937년 알루미늄 소재 트렁크를 개발했다. 디자인은 독일 항공기 제조사인 융커스에서 영감을 받았다. 융커스는 동체가 알루미늄 합금으로 이뤄져 있고 동체 외관엔 줄무늬가 있었다. 리모와도 가방에 좁고 긴 연속적인 줄무늬를 만들었다. 그루브라고 불리는 디자인이다. 지금까지도 리모와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때 리하르트 모르스첵은 브랜드 이름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리모와로 바꿨다. 리하르트 모르스첵 트레이드 마크라는 뜻이었다. 그루브는 독일 브랜드 특유의 실용성을 보여준다. 당시 항공기용 트렁크에는 바퀴가 없었다. 트렁크에 바퀴를 달기에는 당시 바퀴 기술은 정밀하지 않았다. 결국 여행자들은 트렁크를 들고 다니거나 끌고 다녀야만 했다. 결국 지면과 짐과의 마찰이 문제였다. 울퉁 불퉁한 그루브는 디자인적 요소만이 아니다. 가방과 지면의 접촉면을 줄여서 끌고 다니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독일식 프리미엄이다. 프리미엄은 기능으로 가격을 설명한다. 럭셔리는 비싸기 때문에 비싼 것이다. 리모와는 리하르트 모르스첵 이후 독일식 프리미엄 브랜드로 발돋움하게 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프리미엄의 원칙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리모와는 여행 가방의 소재 경쟁을 선도하는 브랜드가 됐다. 이때 개발한 소재가 두랄루민이다. 두랄루민은 알루미늄에 구리와 마그네슘을 섞은 합금 소재다. 알루미늄보다 더 가볍고 튼튼하다.

리모와는 두랄루민으로 만든 가방을 토파즈라고 명명했다. 이때부터 여행용 가방도 캐리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소재에 그루드 무늬 덕분에 여행자가 직접 짐을 운반할 수 있게 됐고, 이 시절부터 리모와는 제트셋족들의 대명사가 됐다. 비행기에서 여행을 하면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을 제트셋족이라고 부른다.

리모와는 1976년 비즈니스용 방수 캐리어를 개발했다. 이것도 새로운 여행 트렌드에 발맞춘 변화였다. 단순한 관광 여행에서 비즈니스 여행이 늘어나는 트렌드였다. 항공기들도 비즈니스석을 만들고 기업 고객들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 촬영이 많은 영화 촬영팀이나 포토그래퍼들을 겨냥했다. 완벽한 방수 기능과 충격 흡수 기능을 갖춘 가방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일반 여행객들한텐 필수적이지 않지만 고가 장비가 필요한 소비자한텐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이때부터 리모와는 트렌드세터들을 타기팅하기 시작했다. 패션계와 영화계 유명인들처럼 일반 소비자들이 추종할만한 사람들을 리모와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했던 셈이다.

이때 리모와는 3대 경영자인 디터 모르스첵이 이끌게 됐다. 다시 한번 여행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경영 트렌드와 소재 트렌드를 바꾸는 변신을 해낸 셈이다. 사실 리모와는 도전받고 있었다. 여행 캐리어 시장은 레드오션화됐다. 아메리칸 투어리스트나 샘소나이트 같은 브랜드들이 등장했다. 두랄루민 같은 금속 소재의 하드케이스를 대신할 플라스틱이나 인조가죽 소재 소프트케이스 가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드케이스의 시대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확실히 시장 트렌드는 하드케이스가 아니었다.

 

프랑스 연금술과 손잡은 리모와

그런데 리모와는 2000년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하드케이스를 선보이면서 다시 한번 소재로 여행 트렌드를 바꾸기 시작한다. 폴리카보네이트는 방탄 유리로 활용되는 소재다. 가벼운데 튼튼하다. 대신 무게는 기존 금속 하드캐리어의 절반 이하다. 폴리카보네이트는 지금은 두랄루민과 함께 리모와를 상징하는 소재다.

이때 리모와가 선보인 또 하나의 비밀 무기는 8개의 멀티휠이었다. 리모와는 편리한 이동성으로 유명하다. 4개 코너에 각각 2개씩 총 8개인 멀티휠 덕분이다. 리모와는 사무실 의자에서 360도 회전하는 멀티휠의 영감을 받았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보호되면서 8개 바퀴로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리모와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여행 캐리어가 됐다.

2016년 1월 LVMH는 리모와의 지분 80%를 6억4000만 유로에 인수했다. 한화로는 8000억원 정도였다. 리모와의 회장은 여전히 디터 모르스첵이었다. 대신 LVMH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의 3남 알렉산드르 아르노가 리모와의 CEO를 맡았다. 프랑스 루이비통이 독일 리모와를 인수한 것이다.

이것도 리모와의 변신이었다. 리모와는 바야흐로 프리미엄에서 럭셔리가 돼야 하는 시기였다. 동시에 패션화돼야만 했다. 패션화는 끊임없이 이미지를 변신하면서 새롭게 브랜드를 변신시키는 것이다. 2030 소비자층을 겨냥하려면 패션화가 필수다. 동시에 럭셔리화를 해야만 했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이 사용하기 때문에 그걸 사용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이 럭셔리의 다른 특징이다. 럭셔리는 선망으로 움직인다. 이런 패션화와 럭셔리화를 가장 잘 하는 기업은 LVMH다. 리모와는 프랑스의 연금술과 손잡은 것이다.

이때부터 리모와는 알렉산드르 아르노의 지휘 아래 서비스에 집중하기 시작헀다. 글로벌 14개 주요 도시 5성급 호텔에선 리모와 수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몽클레르, JW앤더슨, 슈프림과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를 패션화시켰다. 특히 슈프림과의 콜라보는 리모와를 트렌디한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결정타였다. 비스포크 서비스로 자신만의 개인화된 리모와를 만드는 트렌드도 만들었다. 2023년은 리모와의 125주년이다. 9월에는 뉴욕에서, 2024년 봄에는 리모와의 고향 쾰른에서 이벤트를 연다. 1898년부터 시작된 리모와의 역사를 보여주는 행사다.

덕분에 코로나 때 여행이 멈추면서 주춤했던 매출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리모와 코리아만 해도 2022년 매출은 359억원으로 코로나 시절인 2020년 91억원에 비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리모와는 LVMH 그룹 승계의 변수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에건 5명의 자녀가 있다. 장녀 델핀 아르노는 루이비통을 이끈다. 장남 앙트완은 벨루티와 로로피아나를 이끈다. 3남 알렉상드르는 리모와를 이끈다. 4남 프레데릭은 태그 호이어를 이끌고 있다. 특히 25세이 최연소 리모와 CEO가 된 알렉상드르는 아버지처럼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이다. 리모와의 럭셔리화와 패션화를 성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슈프림과의 콜라보는 34초 만에 온라인 매진됐다. 리모와의 기존 경영진이라면 못했을 일이다. 루이비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고 버질 아블로와는 투명 리모와를 만들었다.

알렉산드르는 리모와를 단순한 여행 캐리어 브랜드로만 보고 있지 않다. 리모와를 여행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리모와 호텔을 계획하고 있다. 리모와 캐리어를 들고 와서 리모와 호텔에 체크인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패션의 완성은 여행이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 옷을 입기 때문이다. 리모와가 LVMH 제국의 일부가 된 이유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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