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달빛기행
밤길 밝히는 한옥마을 ‘가을동화’연출
전통주 부스 ‘달빛주막’서 낭만 한사발

수원화성
어둠 깔린 뒤 성곽 조명은 치명적 유혹
팔달산 서장대 오르면 환상야경 만끽

서울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뿜으면 연인들 심쿵
황혼빛 한강서 누리는 선셋카약 백미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에 그냥 거닐기만 해도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은은한 달빛 아래 산책은 평범한 일상에 낭만을 덧칠하는 고운 빛 물감. 귀뚜라미 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풀잎 소리 들으며 걷다 보면 하루 고단함이 어느새 잊혀진다. 집 앞 시냇가며 공원만 걸어도 좋을 가을밤이지만 기왕이면 더 아름다운 밤 풍경을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산책 코스 세 곳을 소개한다.

천년 고도 신라의 달빛을 따라서, 경주 신라달빛기행

밤 시간 신라달빛기행이 시작되는 월정교의 모습
밤 시간 신라달빛기행이 시작되는 월정교의 모습

언제부턴가 경주 여행을 생각하면 밤의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친다. 특히 동궁과 월지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돌담 아래 은은한 조명으로 밤길을 밝힌 교촌한옥마을도 가을밤의 낭만을 더한다. 만약 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찾는다면 신라달빛기행을 추천한다.

신라달빛기행은 경주시의 대표 관광 명소인 첨성대(별)와 월정교(달)를 테마로 경주의 아름다운 야경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이다. 1994년 남산 칠불암 투어를 처음으로 시작됐다. 당시엔 종이컵 안에 작은 촛불을 넣고 경주 남산 자락의 석불을 보러 다녔다.

신라달빛기행에 참여하면 소원등을 꾸미는 시간을 갖는다
신라달빛기행에 참여하면 소원등을 꾸미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다 2003년 즈음부터 경주 시내로 내려와 분황사, 불국사, 서악서원, 첨성대 등에서 행사를 치렀다. 경주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한 동궁과 월지를 비롯해 경주 시내 문화 유적에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코로나19 이후로 지난해 3년 만에 재개한 신라달빛기행 행사는 매년, 매회차마다 조금씩 다른 코스를 둘러보는 식이다. 올해 신라달빛기행은 5월부터 10월까지 총 여섯 번에 걸쳐 진행되며 현재 10월 14일 6회차만 남은 상태다.

올해 마지막 신라달빛기행은 보다 특별하다. 밤뿐만 아니라 낮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오후 1시에 시작하는 이번 행사는 선덕여왕릉부터 진평왕릉까지 이어지는 황금들녘 산책 등의 일정을 포함한다. 이어 서악동삼층석탑 앞에서 구절초음악회를 감상한 후 본격 야간 달빛기행이 진행된다.

신라달빛기행에서 만날 수 있는 동궁과 월지
신라달빛기행에서 만날 수 있는 동궁과 월지

밤의 산책은 ‘별을 품은 달 트래킹’을 주제로 월정교에서 백등을 받아 들고 계림, 월성해자, 첨성대를 거쳐 다시 월정교로 돌아오는 코스다. 트래킹 코스 중간중간에는 별자리 스킨 프린팅, 셀프 포토존 등 다양한 체험도 준비돼 있다. 지역 예술인의 버스킹 공연 ‘별빛소리’, 전통주 부스 ‘달빛주막’ 등도 야간 기행의 재미를 더한다.

행사 참여는 신라문화원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접수하거나 당일 현장에서 접수도 가능하다. 지역주민은 물론 관광객들 누구나 신청할 수 있으며 오는 10월 행사의 참가비는 2만원이다.

 

가을밤에 나누는 꽃 같은 이야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는 수원화성의 야경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는 수원화성의 야경

신라의 밤길만큼 아름다운 조선의 밤길도 있다. 경기도 수원의 수원화성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시대 정조가 건설한 계획도시이자 요새다. 정조의 굳은 의지와 다산 정약용의 혁신적인 제안, 조선의 발달된 과학기술 및 그 과정을 담은 엄밀한 기록물 등 당대의 총체적인 역량이 한데 모인 예술과 기술의 합작품이다. 이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수원화성 성벽 길은 조명이 잘 돼 있어 해진 저녁에도 산책하기 좋다
수원화성 성벽 길은 조명이 잘 돼 있어 해진 저녁에도 산책하기 좋다

지금도 수원화성은 수원시의 중심에서 늠름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낮에도 나들이나 피크닉을 즐기기 좋지만 어둠이 깔리고 성곽 조명이 불을 밝히면 더욱 매력적인 자태를 뽐낸다.

화서문과 장안문을 거쳐 방화수류정, 활터까지 이르는 성벽 길은 조명이 잘 돼 있어 저녁에도 산책하기 좋다. 특히 화홍문 옆의 호수인 방화수류정은 SNS에서 유명한 데이트 핫 플레이스다. 팔달산 서장대에 오르면 수원화성과 도시의 풍경이 어우러진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도 있다.

수원화성의 숨은 데이트 명소, 용연과 방화수류정
수원화성의 숨은 데이트 명소, 용연과 방화수류정

화성행궁은 이름 그대로 왕이 수원에 내려오면 머무는 행궁이었다. 조선 시대 전국에 조성한 행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규모와 격식을 갖춘 곳이어서 더 특별하다. 일제강점기에 쓰임을 달리하며 훼손됐다가 2002년 중심권역의 복원공사를 마치며 지금의 모습을 찾게 됐다.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여전히 복원을 진행 중이지만 지금 모습도 충분히 웅장하고 아름답다. 다른 고궁과 마찬가지로 일반 관광객들의 입장을 허한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월, 화요일을 제외한 모든 요일에 야간 개장한다.

화성행궁 야간개장에는 매년 12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수원시의 각종 축제 및 행사 등과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올해는 ‘달빛화담’을 주제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 수원문화재야행 등 밤의 궁궐을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다양한 야간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화성행궁 야간 개장은 10월 29일 일요일까지 불을 밝히며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에 걸쳐 밤 7시~9시 30분까지 진행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500원이나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다.

 

낭만 가득한 한강의 밤, 서울 반포대교와 잠수교 일원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와 세빛섬의 밤풍경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와 세빛섬의 밤풍경

도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은은한 빛으로 주변을 밝히는 한강의 다리들은 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그 가운데에서도 오색찬란한 무지개빛 아래로 분수를 뿜는 반포대교는 서울의 수많은 다리 중 가장 로맨틱한 다리로 꼽힌다.

하루 5~6번에 걸쳐 물을 뿜어내는 반포대교의 달빛무지개분수는 2008년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 분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상류 쪽부터 하류 쪽까지 그 길이만 1140m에 달한다. 음악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이 한강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스윙 노즐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보는 장소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잠수교 아래서 바라보면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리의 전체 경관을 더 넓은 시야에 담아내고 싶다면, 약 1.2km 떨어진 잠원한강공원의 카페도 좋다.

9월 3일부터는 다리 아래서 특별한 축제가 펼쳐지는 중이다. 지난 봄 약 97만 명이 다녀간 ‘2023 차 없는 잠수교 뚜벅뚜벅 축제’가 가을을 맞아 다시 찾아온 것. 축제 기간 중 자동차는 통행금지, 오로지 보행자만이 잠수교를 누빌 수 있다.

각종 플리마켓과 푸드트럭이 들어서고 다양한 버스킹 공연이 펼쳐진다. 빈백에 누워 편안하게 책을 읽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노을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찍는 선셋 포토 존도 마련돼 있다.

하반기 잠수교 축제는 오는 11월 12일까지 이어진다. 운영 시간은 9월 기준, 일요일 정오부터 밤 9시까지이며 추석 연휴 제외, 10월은 9월보다 한 시간 앞당겨진 밤 8시까지다.

세빛섬에서 출발하는 카약과 튜브스터는 낭만적인 밤의 한강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저녁 무렵부터 해가 질 때까지 즐기는 선셋 카약은 혼자 또는 둘이서 한강의 고즈넉한 매력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노를 젓다 보면 어느새 붉게 물든 한강에 고요히 스며든다.

물 위에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는 원형 보트인 튜브스터는 늦은 밤까지 운영해 도란도란 한강의 야경을 만끽하기 좋다. 최대 6명까지 탑승 가능하며, 테이블이 있으니 간단한 식음료(주류 금지)를 준비하는 것도 팁이다.

- 신다솜 칼럼니스트 - shinda.writ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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