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작품 스트리밍, 글로벌 초대박 흥행
K-콘텐츠에건 승부수 적중 ‘무빙앓이’
한국콘텐츠 선점한 넷플 라이벌로 등극

1·2세대 초능력자 이야기 궁금증 유발
막 내렸지만 시청자 관심은 여전히 ‘무빙’
상승세 탄 디플, 새 작품 ‘최악의 악’선봬

빌드업은 강풀 작가의 최대 장기다. 처음엔 전개가 느린듯하다. 그렇지만 캐릭터 하나 하나의 서사가 쌓여가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만화 연재가 거듭될수록 캐릭터의 뒷얘기가 더 궁금해진다. 강풀 작가의 인물들한텐 모두가 사연이 있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빌드업이 끝나고 캐릭터가 완성될 즈음 거대한 사건이 시작된다. 사건의 스케일은 결단코 작지 않다. 덕분에 독자들은 기다린 보람이 있다.

드라마 <무빙>도 마찬가지였다. 김봉석과 장희수라는 두 명의 주인공과 그들의 부모들인 김두식과 이미현과 장주원의 관계가 빌드업되자 관객은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초능력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살며 사랑하고 키워가는 이야기였다. US히어로와 K히어로의 차이는 어쩌면 이것이다.

US히어로의 초능력은 우연한 사건사고로 얻어지기 마련이다. 스파이더맨이나 헐크가 대표적이다.

반면 K헐크인 무빙의 장주원한테 괴력과 치유력보다 중요한 건 가족과의 관계다. 가족 관계 때문에 초인적 능력을 진정 발휘하게 된다. 그런 관계를 맺기 전까진 초능력은 타고난 재능 정도에 불과하다. 무빙의 캐릭터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타고난 초능력을 진정으로 발휘하게 된다.

1세대 초능력자와 2세대 초능력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1세대 초능력자들은 가족을 갖고 관계를 맺고 능력의 쓸모를 알기 전부터 국가 권력에 이용을 당한다. 그들의 쓸모는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의 쓸모에 따라 쓰인다. 반면 2세대 초능력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자신의 쓸모를 선택할 수 있다. 부모 세대 초능력자들이 그럴 수 있도록 지켜줬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구하는 노란 우비를 입은 히어로가 될 수도 있다. 신체 건강한 체대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국가공무원이 될 수도 있다.

남북 초능력자 맞장에 시선집중

무빙은 2023년 8월 9일 7편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이후부턴 매주 수요일 오후 4시에 2편씩 공개했다. 독특한 스트리밍 방식이었다. 넷플릭스는 모든 시리즈를 한꺼번에 공개한다. 유명한 빈지워치 방식이다. 반면 디즈니는 매주 1편이나 2편씩 공개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무빙은 넷플릭스식 빈지워치와 디즈니식 연속극 방식을 혼합했다. 소비자가 콘텐츠에 몰입하게 만들고 동시에 기다리게 만들려는 전략이었다.

대신 무빙 7편째에선 매우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도록 설계했다. 무빙은 초능력자 1세대 부모와 2세대 자식의 이야기다. 시작은 2세대 초능력자인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주무대다. 학원물 장르에 가깝다. 7편 이후부턴 1세대 부모의 과거사가 드러난다. 첩보물과 느와르물이 뒤섞인다. 후반부는 초능력 액션물이다. 남북한 초능력자들이 학교에서 맞대결한다. 이런 구조 덕분에 무빙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도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성공했다.

학원물과 첩보물과 느와르물과 멜로물을 오가는 장르 변형은 강풀식 빌드업의 약점을 보완해 줬다. 빌드업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폭발력이 큰 대신 시작은 계단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즈니 플러스가 빈지워치와 연속극 방식을 혼합하면서 무빙의 약점은 강점이 됐다. 한방에 중간까리 스토리가 전개된 것이다.

이건 또 사전 제작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시리즈 무빙의 제작은 2021년 8월 시작됐다. 2021년 8월 20일 전체 출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진행한 대본 리딩이 스타트였다. 첫 대본 리딩에는 동명 원작 웹툰의 창작자이자 드라마의 시나리오까지 집필한 강풀 작가도 함께 했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주목

그런데 무빙이 무빙하기 시작했던 당시는 아직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디즈니 플러스는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다. 본토인 미국에선 2019년 11월 12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건 2년 뒤인 2021년 11월이었다. 그런데 무빙 촬영은 3개월 전에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 무빙은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하기 전부터 먼저 무빙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디즈니는 2021년 무빙의 제작사인 스튜디오앤뉴와 5년간 드라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스튜디오앤뉴가 디즈니 플러스에 매년 1편씩 드라마 시리즈를 독점 공급하는 계약이었다. 그 첫 작품이 무빙이었다. 여기서 디즈니의 우선 순위가 드러난다. 스트리밍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 라인업이 먼저였다는 뜻이다. 디즈니 플러스보다 무빙이 먼저였다.

사실 디즈니 플러스는 무빙 제작 기간 전에 내내 힘든 시기를 보내야만 했다. 로컬 콘텐츠가 부족해서였다. 디즈니 플러스가 2021년 11월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한국 로컬 콘텐츠는 단 7편 뿐이었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한텐 실망스러운 지점이었다. 이미 한국 OTT 시장의 중심축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 콘텐츠가 주종목인 토종 OTT인 웨이브와 티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넷플릭스도 2019년 킹덤의 흥행을 계기로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를 늘려가던 시기였다. K좀비 열풍을 일으킨 킹덤은 넷플릭스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결국 초대박 흥행작 오징어 게임으로 이어진다.

분명한 건 한국 소비자가 OTT를 보는 건 글로벌 콘텐츠를 보기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내 음악 시장의 판도가 팝송에서 K팝으로 넘어간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건 후발주자인 디즈니 플러스한텐 불리한 상황이었다. 디즈니 플러스의 차별적 강점이 글로벌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월트디즈니와 마블 그리고 루카스필름으로 이뤄진 디즈니의 스튜디오가 콘텐츠 파이프라인이었다. 겨울왕국과 어벤져스 그리고 스타워즈로 승부를 봐야했다. 정작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 스트리밍을 시작하자 한국 소비자들은 한국 드라마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다. 고작 7편에 불과했다. 곧바로 디즈니 플러스에는 볼 것이 별로 없더라는 반응이 나왔다.

인기 힘입어 시즌2 제작 공식화

무빙의 총제작비는 650억원이다. 무빙은 20편으로 이뤄진 시리즈다. 1편당 30억원 꼴이다. 편당 제작비만 놓고 보면 넷플릭스의 킹덤과 유사하다. 그렇지만 넷플릭스와 달리 K콘텐츠 투자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디즈니한텐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다. 무빙은 2021년 8월 23일부터 2022년 7월 11일까지 323일 동안 촬영됐다. 당연히 프로덕션 기간에 제작비가 가장 집중적으로 소진된다.

사실 디즈니는 무빙 촬영이 끝난 2022년 하반기부턴 비상경영에 들어가야만 했다. 적자가 누적된 탓에 2022년 11월 급기야 디즈니 CEO가 교체됐다. 전설적인 디즈니 CEO였던 밥 아이거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부메랑 CEO를 다시 불러들일 만큼 디즈니가 다급했다는 의미다.

역시나 밥 아이거는 공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약 7000명을 감원했다. 7조원을 감축했다. 만일 무빙이 한 방을 때려주지 못한다면 디즈니 플러스의 K콘텐츠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무빙은 승부처였다.

김소현 월트디즈니코리아 대표는 지난 9월 22일 디즈니 플러스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시즌2 제작을 공식화했다. 아직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원작자인 강풀 작가가 무빙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4년이 걸렸다. 그런데도 디즈니는 이미 시즌2를 히든 텐트폴로 세운 것이다. 무빙IP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디즈니는 플러스이기 때문이다.

디즈니 플러스는 9월 27일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인 <최악의 악>을 선보인다. 지창욱과 위하준이 주연한 수사물이다. 비질란테라는 히어로물도 있다. 남주혁이 낮에는 경찰대생이고 밤에는 자경단인 인물을 연기한다. 이제 슬슬 수확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투자는 투자기와 수확기로 나뉜다. 지금 투자하면 2년 뒤에 수확이 시작된다. 매달 수확이 가능한 라인업을 만들어야 지속적인 매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그 중에서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이른바 텐트폴이 있어야 성장이 가능하다. 텐트폴은 반드시 시즌2로 이어달리기를 해야만 한다. 무빙을 통해 디즈니 플러스도 홈런 라인업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투자기에 제때 투자를 했던 덕분이다. 결국 투자는 타이밍이다. 홈런 흥행작이 브릿지가 된다. 그렇게 성공으로 무빙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리스크가 컸던 무빙으로 디즈니 플러스도 가장 큰 무빙에 성공했다. 무빙에 나오는 대사와 같다. “잘 난다는 건 잘 떨어지는 것이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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