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업주 호소, 엄살로 매도해선 곤란
회사 접을 경우 피해는 우리 모두의 몫
재기 힘쓰는 기업인에 응원의 박수를

지난 추석 연휴 때 지방의 조그만 기업 대표인 친구를 만났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플라스틱 기념품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모처럼의 만남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요즘 회사 형편이 어렵다고 했다. 근자에 자재비와 인건비 따위가 많이 올랐지만, 현재의 매출과 이익으로는 감당이 안 되고, 점점 사업을 운영할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 요지였다.

필자는 속으로 ‘기업하는 사람들치고 어느 때든 힘들지 않은 때가 있었나?’라고 생각하면서 솔직히 그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 친구를 힘들게 한 진짜 이유가 다른 것임을 알았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냥 엄살을 부리는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회사의 사정을 잘 아는 직원들조차 ‘당신은 사장이니까 그래도 우리보다 나은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섭섭함을 넘어 인간적 배신감마저 든다고 했다. 그의 말에는 분노의 감정이 묻어났다. 그럴 만했다. 그는 회사가 어렵더라도 직원들 월급만큼은 제때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주변 사람들과 모임이 있으면 구차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의 지갑을 열 때가 많았다고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우리나라 편의점 업주들 중 약 30% 정도가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월 수익을 벌고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으로 한 달간 일하고 얻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가 편의점 업주의 월 수익보다 높은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업주라는 이유로, 또는 사장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절박한 하소연이 엄살로 치부되거나 외면당하는 현실은 분노와 서글픔을 자아내게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수행하는 업무 측면에서 직원과 사장의 경계선이 모호한 영세 사업장들이 주변에 많다. 그런데 이런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해서 사업 운영에 따르는 위험과 부담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사장이라는 지위가 자랑스럽기보다 그들을 짓누르는 멍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필자의 친구를 포함해서 말이다.

직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복지 수준을 높이기보다 본인의 탐욕을 채우려는 사장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대다수의 사장님들은 어려운 여건에서 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성장의 열매도 공정하고 정당하게 나눠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분들은 바로 이러한 선량한 기업인들이다.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는커녕, 용기를 꺾는 생각과 말들은 정말이지 어리석기 그지없다. 그들이 용기를 잃고 회사를 접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모두의 몫임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약자라 할 아르바이트생이나 이들을 고용하는 소상공인들을 편 가르기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간에라도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주변 사람이 비를 맞고 있으면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산이라도 받쳐주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할 터이다. 친구와 술자리가 파할 때쯤 그는 이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 보고 자꾸 엄살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사장 한번 해보라!”

 

이태희
대구한의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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