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중동정세 ‘강건너 불’ 아냐
생계 걱정없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경제의 발목 잡지 않는 민생정치 간절

몇 년 전 군대 선배의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에 간 적이 있다. 모든 아빠에게 딸이란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전국금융산업 노조 위원장을 지내 강철 같은 의지를 가졌으리라 생각한 그가 결혼식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여덟 살짜리 딸을 잃은 아버지가 <인질이 된 것보다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 낫다>라며 눈시울이 붉어진 사진을 보며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슬픔이 하늘에 닿으면 이런 표현도 있구나 싶었다. 좀처럼 친구 집에서 자는 일이 없었는데 하필 그날 딸이 그런 선택을 했으니 운명의 장난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사소한 일인 듯했던 일이 운명을 가르는 경우가 개인이든 국가든 얼마나 많은가.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를 분실하지만 않았다면 감시원이 빙산을 미리 보아 뱃머리를 돌릴 수도 있었던 타이타닉호 사고, 원전이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한 모의실험이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된 체르노빌 참사, 또 비엔나 미술학교에서 두 번이나 퇴학당하고 그렇게도 원하던 예술가가 끝내 되지 못하고 히틀러가 독재자로 유태인 대량 학살을 주도한 일은 운명의 가혹함을 절감하게 한다.

안경 낀 그 여덟 살 딸 아빠의 얼굴이 예전에 거래하던 이스라엘 고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해봤다. 단장의 고통도 이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자지구라고 이러한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폭격으로 여섯 살 아들을 잃은 의사 이야기도 뉴스에 나왔다. 상대방의 군사시설을 타격하는 것이 1차 목표라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을 보면 막대한 민간인의 피해가 늘 뒤따른다.

중동의 정세가 불안하면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대외 의존도가 유독 높은 우리나라는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인도주의적인 시각에서도 강 건너 불이 아닌 데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북한을 지척에 두고 있는 우리에겐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강대국과 이웃하고 있으면 고난의 역사가 반복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당대의 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 이르는 동안 끊임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이스라엘은 멸망까지 당해 디아스포라가 돼 2000년간 세계 각지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그 이후로도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난은 계속 이어졌다. 이슬람 칼리프 제국을 거쳐 오스만과 영국 통치까지 받았다. 이렇게 정신없이 외세에 시달리니 독립국가를 세울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페르시아는 1935년경에 이란으로 국명을 변경했으니 수천 년에 걸친 이런 질긴 악연도 유례가 드물 것이다.

회사가 속해 있던 지자체의 요청으로 지역 축제에 참석한 외교관들의 통역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이스라엘 대사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도착했는데, 아프리카의 대사는 직원들과 함께 평범한 SUV를 타고 행사장에 도착했다. 어쩔 수 없는 경제력의 차이가 느껴졌다. 그 아프리카 대사에게 대통령님은 건강하시냐고 했더니 잘 계신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나중에 깨달았는데 40여 년간 대통령직에 있었던 전임 대통령이 아니라 그 직을 승계한 그 아들에 대해 물어봤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정권 교체만 순조롭게 이루어져도, 외부의 침략 없이 평범한 일상만 누려도, 생계에 대한 걱정만 없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는 요즘이다. 모쪼록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고 견인할 수 있는 단계로 비상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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