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행 시 금융·조달 리스크 심화
국내외 공급망 ESG관리도 강화
여력 부족해도 결국은 가야할 길

ESG는 원래 투자자들이 사용하던 용어였다. 일부 금융기관이 자산의 중·장기적 수익과 안정적 관리를 위해,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투자대상 기업의 비재무적요소, 즉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고려하면서 시작됐다.

최근 몇 년간 그야말로 ESG 광풍이 불었다. 과거에도 ‘전략적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CSV(공유가치창출)’ 등 오늘날의 ESG 경영과 사실상 다를 바 없는 개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이 사회 전반의 관심을 받았던 적은 없었다. 국내외 모든 기업과 금융기관이 앞다퉈 ESG 비전을 선포하고, ESG 위원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강화될 것만 같던 ESG도 최근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 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인해 ESG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장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ESG나 논하고 있는 것은 한가한 소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경쟁하듯 ESG 관련 제도 도입에 나서던 각국의 정부들도 제도 도입 시기를 늦추거나 기준을 낮추고 있다는 뉴스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국내에서도 상장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겠다고 한다.

ESG경영은 거부할 수 없는 대세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경영자의 가장 큰 역할은 판단과 선택이다. ESG 경영이라는 것도 결국 과거 6시그마, 블루오션 등 여러 경영 전략처럼 일시적 유행인가, 앞으로도 지속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인가?

누구나 쉽게 중소기업도 ESG 경영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문제는 돈이다. 법·규제 수준 이상의 환경, 노동, 안전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설비나 시스템 도입에 필요한 초기 직접 투자뿐만 아니라, 운영 인력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간접 비용도 계속 발생한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더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ESG 경영은 중소기업에게도 단기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 중소기업 경영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중소기업은 장기 이슈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다. 지금 당장 우선순위가 아닌 일에 자원을 투입한다는 것은 기업 전체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필자의 견해는 ‘아니다’였다. 특별히 여유가 있는, 즉 장기 이슈에 자원을 배분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중소기업은 ESG에 아직은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中企 다수, ESG경영 관심 미미

첫째, 국내 중소기업 대다수는 비상장이고 회사채를 발행하는 경우도 드물어, 기업의 ESG 경영 수준이 자금조달 여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둘째, 중소기업은 B2C보다는 B2B 중심이 대부분이라 소비자의 요구를 직접 직면할 경우가 적고, 국내 소비자의 경우 환경이나 사회이슈에 대한 관심이나 실제 지불의사 규모도 낮아 매출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낮았다. 마지막으로는 일부 해외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국내 대기업의 공급망 ESG 관리 수준이 낮아, 고객사로부터의 요구도 많지 않았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ESG 경영은 투입비용 대비 경제적 실익이 매우 낮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중 무역분쟁도 ESG 변수

하지만 최근 같은 질문에 대한 필자의 답변은 ‘반드시 해야 한다’로 변했다. 첫째, 금융감독 정책의 변화다. 최근 기업들에게 ESG와 관련해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이슈 가운데 하나는 ‘ESG 공시제도 의무화’인데, 그 이유는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에 목적이 있다. 2015년 G20에서는 금융기관이 기후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함과 아울러 해당 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필요한 투자 및 대출대상 기업의 기후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둘째, 조달 정책의 변화다. 최근 각국 정부들이 조달과정에서 ESG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이다. 미국 연방조달청은 최근 계약 규모 5000만달러(약 650억원) 이상 기업은 Scope 1, 2, 3 온실가스 배출량 및 기후변화 관련 지배구조, 전략 및 위험관리 정보를 CDP를 통해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과학기반 감축목표의 수립도 요구하고 있다.

다음은 유럽의 공급망실사지침(CSDDD) 도입과 국내 대기업의 공급망 관리 정책의 변화다. 유럽의 고객사들은 EU법에 의해 공급망 실사가 의무화됐고, 국내 대기업도 공급망 ESG 관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의 경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8개 기업(전세계 340개 기업)이 CDP 공급망 프로그램을 통해 협력사에게 기후변화 정보를 요구하고 있으며, 1000개 이상의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이미 대응 중이다.

마지막은 ‘미·중 무역전쟁’에 있다. 모든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ESG, 그 가운데서도 인권과 기후변화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가장 널리 활용하는 명분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뿐만 아니라 EU도 중국 견제를 위해 기후변화 및 인권 관련 무역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어 국내 중소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ESG는 결국 돈을 움직이는 금융기관이 돈을 좇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낸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의 환경 및 사회 수준 개선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ESG를 단순한 유행이나 여유 있는 기업이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사회공헌 정도로 생각하면, ESG의 맥락을 놓치기 십상이다. 선택과 책임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ESG의 맥락을 읽고,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결국 기업의 몫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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