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27일 적용… 대응 실태 살펴보니
안전관리인력 둘 여력 없고 매뉴얼도 미비… 76%가 ‘무방비’
처벌에만 치중하면 역효과… 현장 연착륙 방안이 선결 과제
국회에 발의된 ‘2년 더 유예’법안, 회기내 반드시 처리 필요

지난 7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상견례 자리를 갖고, 중소기업 입법과제들을 논의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제야말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여야 정치권과 기업계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황정아 기자
지난 7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상견례 자리를 갖고, 중소기업 입법과제들을 논의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제야말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데 여야 정치권과 기업계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황정아 기자

 

“50인 미만 기업 제조현장을 잘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 소기업으로 운영되고 대표 혼자 산안법이다 보건법이다 챙기기 바쁜데 중대재해처벌법까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합니까? 당장 법시행보다는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는 상황부터 만들어야죠.”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이 중대재해처벌법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경우도 근로자가 일하다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면 안전 확보 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게 된다. 하지만 대상 기업들의 대다수는 준비가 상당 부분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전 전담부서 설치 7.2% 뿐

지난 1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지역상공회의소 22곳과 함께 50인 미만 회원 업체 64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9.9%는 내년 1월 26일까지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를 더 연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재 국회에는 50인 미만 기업 대해 규모의 영세성과 인력부족 등의 상황을 감안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이처럼 2년 유예 개정안이 국회에 올라간 이유는 50인 미만의 대다수가 ‘준비 부족’의 무방비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 76.4%가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39.6%)하거나 ‘조치사항 검토 중’(36.8%)이라고 밝혔다. 36% 가량이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하지만, 제도 시행까지 불과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별다른 조치 없는 기업 39%와 합쳐 75%가 넘는 중소기업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직격탄을 맞게 될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 대처가 어려운 이유가 있다. 가장 많은 응답으론 ‘안전관련 법 준수사항이 방대’(53.7%‧복수응답)하다는 점이다. 50인 미만 중소기업의 대부분이 대표 혼자 ‘원맨 경영’을 하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준수사항을 따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전체 응답기업 중 ‘안전보건업무 전담부서를 두고 있다’는 기업은 불과 7.2%에 그쳤다.

이어 중소기업들은 ‘안전관리 인력 확보’(51.8%)에 따른 인력문제를 손꼽았다. 아울러 ‘과도한 비용부담 발생’(42.4%), ‘안전지침 위반 등 근로자 안전인식 관리’(41.7%) 등 법 이행 리스크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이 당장 정부에 바라는 역할도 ‘업종별 안전매뉴얼 배포’(59%·복수응답)가 가장 많았다.

이와 관련 경기도에서 기계부품을 가공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당장 법시행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중소기업 현장에선 안전매뉴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정도다”라며 “이건 마치 시험 범위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막바로 시험을 시작하고 커트라인을 통과못한 학생을 형사처벌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안전인력·인건비 지원(49.8%) △안전투자 재정·세제 지원(47.6%) △명확한 준수지침(43.5%) △안전체계구축 컨설팅 등 기술지원(30.7%) 등을 정부가 당장해줘야 할 역할이라고 꼬집었다.

‘처벌 만능주의’ 법안 재고해야

특히 대한상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이 적용되더라도 “재해 감소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50인 이상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사고 추이를 보면 법 시행 전인 2021년 대비 지난해 년 사망건수는 1.7% 감소에 그쳤기 때문이다. 올해도 3분기 현재 전년동기대비 4.4% 증가했다. 줄지 않는 산업재해 통계에 대해 더 당혹하고 있는 곳은 막상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강행하려는 야당이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평가 토론회에서 행사를 공동주최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대표발의해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해 안타깝다”며 참석한 민주노총을 비롯해 정의당 의원 등에게 토로했다. 이는 법·제도가 중소기업 현장에 문제없이 안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법의 강력한 처벌 효과가 산재 감소로 나타나지 않는 ‘수치’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만능주의 함정에 빠진 법이라고 지적한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예방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이 때문에 이 법이 논의되는 과정부터 “과연 법의 실효성이 있는가”라는 논란이 있었다. 처벌 규정이 모호한 데다 경영자가 징역을 살 수도 있는 법이다 보니 중소기업 경영자는 ‘교도소 담장’을 걷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해 경영자가 법의 취지라고 하는 실질적인 사고 예방보다는 법적 책임 회피에 힘을 쏟느라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줄기차게 제기됐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간의 걱정과 우려는 올해 늘어난 산업재해 사망사고 수를 통해 ‘팩트’가 증명된 것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야당은 법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 법 시행의 대상을 확대(50인 미만 중소기업)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산업재해 통계에서 드러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논란을 잠재울 심산으로 법 적용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을 2년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굳은 입장이다.

한편 지난 7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중소기업인 간담’에서 홍 원내대표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제도 개선이나 관련 입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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