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부장판사의 中企人이 알아야 할 법률분쟁 지식(1) 손해배상예정액 제도에 관한 실무상 쟁점

법률 분쟁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손해배상책임을 넘어 임직원의 형사처벌이나 폐업, 심지어는 기업 자체를 뺏기기도 한다. 분쟁 발생을 피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법률 분쟁은 상법, 노동법,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법률이 동시에 문제 되는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법률 분쟁 대비를 돕기 위해 허승 부장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법률분쟁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 서용남

 

조달청은 청사 신축을 위한 입찰을 공고했다. 입찰공고에 의하면, 공사입찰은 입찰담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손해배상예정액 제도’ 적용대상으로, 입찰담합을 한 낙찰자는 입찰금액의 10%. 입찰담합을 한 그 외 사업자는 입찰금액의 5%를 국가에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해야 했다.

대형건설과 중소건설은 공사입찰에 설계경쟁만 하기로 하고 입찰금액을 100억원으로 통일하기로 합의했다. 결국 대형건설이 공사를 낙찰받았고, 이후 계약금액이 증액돼 대형건설은 대한민국으로부터 공사대금으로 110억원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공분야 입찰담합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에 대형건설은 입찰담합을 자진신고했고, 1순위 자진신고자로 인정받아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반면 중소건설은 입찰담합을 이유로 과징금 5억원을 부과받았다.

공정위가 중소건설에 과징금을 부과하자 국가는 입찰담합을 이유로 대형건설에 10억원, 중소건설에 5억원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판사 : 입찰공고에 의하면, 대형건설이나 중소건설은 최종 결정된 계약금액이 아니라 자신이 입찰한 금액의 10% 또는 5%를 배상해야 하는 것인가요?

국가 :  예, 그렇습니다. 대형건설, 중소건설은 입찰에 앞서 담합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청렴계약서도 작성했습니다.

대형건설 : 저희가 잘못한 것은 인정합니다. 다만 제 신고로 입찰담합이 밝혀진 점을 감안해 1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대폭 감액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소건설 : 대형건설은 공사를 낙찰받아 상당한 이익을 봤고 자진신고로 과징금까지 면제받았으니 억울할 게 없습니다. 반면 저희는 입찰담합으로 이득을 보지 못했고, 과징금으로 5억원이나 납부했습니다. 여기에 손해배상금으로 5억원을 더 배상하면 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가가 입찰담합으로 본 손해는 많아야 5억원입니다. 그런데 대형건설과 저희로부터 손해배상금으로 15억원이나 받겠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란

조달청은 2016년부터 입찰담합 예방을 위해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란 공공분야 입찰담합 근절을 위해 국가나 공공기관이 입찰담합행위를 한 사업자에게 손해의 발생 여부나 손해액의 증명 없이도 미리 정한 손해배상예정액을 청구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공공입찰은 손해배상예정액 제도 적용 대상입니다. 그에 따라 손해배상예정액 제도가 문제가 되는 사건이 계속 증가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일부 소송에서 사업자들은 손해배상예정액 제도가 국가계약법에 반해 무효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예정액 제도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입찰담합 관련 손해배상청구의 어려움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기관이 과거 입찰담합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때 겪었던 어려움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입찰담합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입찰담합으로 인한 손해액(낙찰금액 — 가상 경쟁금액)을 증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상 경쟁가격, 즉 담합이 없었다면 얼마에 낙찰됐을지 증명하기는 어렵죠. 특히 계약금액을 미리 확정해놓고 건설사가 제출한 설계를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확정가격 최상설계 방식’의 입찰에서 담합이 이뤄졌다면, 그 담합으로 인한 손해가 얼마인지 증명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실무에서는 손해액 산정을 위해 경제학자를 감정인으로 선정해 계량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손해액을 추정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비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또한 감정인에 따라 손해액이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법원은 감정인이 산정한 손해액이 부정확할 수 있다며 감정인이 산정한 손해액의 70 ~ 80%만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하죠.   

다른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과거 국가가 군에 납품하는 기름값을 담합한 정유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는데, 손해액 산정의 어려움으로 소송이 종결되는데 무려 13년이 걸렸습니다. 1심판결 선고에만 10년 가까이 걸리는 사건도 있죠.

손해배상예정액 제도의 도입

과거에는 공공기관이 입찰담합을 한 사업자들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당시 공정위가 5년간 적발한 입찰담합 63건 중 공공기관이 입찰담합을 한 사업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건은 4건에 불과했죠. 결국 공정위는 입찰담합 근절을 위해 과징금 부과, 고발 등의 제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2010년부터 조달청 등 주요 공공기관에 ‘손해배상예정액 조항’을 도입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손해배상의 예정이란 채무불이행이 있는 경우에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약정하는 것입니다. 불법행위의 경우에도 손해배상의 예정이 가능한지 논란이 있지만, 현재 법원 실무는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손해배상의 예정이 있으면, 피해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액을 증명하지 않아도 미리 약정한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서 본 입찰담합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의 어려움이 모두 해소되는 것이죠.

한국전력공사가 2011년 1월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를 시범실시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기획재정부예규인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에 관련 규정이 신설되기에 이르렀죠. 현재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는 대부분의 공공기관 입찰에 적용됩니다.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를 둘러싼 논쟁

손해배상예정액 조항의 문구는 공공기관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담합사업자들은 계약금액의 10%를 배상해야 한다.”는 유형(A 유형)과 “담합을 한 낙찰자는 입찰금액의 10%를, 그 외 담합사업자는 입찰금액의 5%를 배상해야 한다.”는 유형(B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느 유형이 사업자들에게 더 불리할까요? A 유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B 유형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업자에게 불리합니다.

예를 들어 5개 업체가 설계점수로만 경쟁하기로 담합하고 모두 100억원으로 입찰금액을 적어냈고, 그 중 한 업체가 낙찰받았는데 이후 계약금액이 110억원으로 증액됐다고 생각해 봅시다. A 유형이 적용되면 5개 업체는 함께 11억원을 배상할 책임을 부담합니다. 1개 업체가 11억원을 먼저 배상하면 다른 업체에 책임 정도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책임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각 업체는 2억 2000만원씩 부담합니다.

반면 B 유형은 어떨까요? 다수의 하급심 판결은 B 유형을 각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는 조항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낙찰받은 업체는 10억원을, 나머지 4개 업체는 각각 5억원, 합계 30억원을 배상해야 합니다. 게다가 다수의 하급심 판결은 자진신고를 했거나 입찰담합을 통해 이익을 본 것이 없더라도 손해배상액을 감경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은 B 유형이 사업자들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조항으로 국가계약법이 금지하는 부당 특약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B 유형의 손해배상액 조항이 무효라고 본 판결은 없습니다.

손해배상예정액 제도를 둘러싼 분쟁은 최근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없어 B 유형을 각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조항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손해배상예정액이 부당특약인지 등을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현재 법원 실무에 의하면 손해배상예정액 제도가 적용되는 입찰에서 담합을 하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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