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상품투자서 대규모 손실 경험
자신 믿지않고 원칙·예측모델 집중

투자 앞서 1억개이상 데이터 분석
손댔다 하면 수익내는 ‘올웨더’탄생

투자의 모든 것 계량화에 평생 바쳐
세계은행·기업 연기금도 단골 고객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주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주

 

레이 달리오는 결단코 천재가 아니었다. 천재라기에는 차라리 둔재에 가까웠다. 워런 버핏이나 리 루 같은 위대한 투자가들은 대부분 천재적인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포토그래픽 메모리의 소유자다. 레이 달리오는 암기력이 엉망이었다. 다만 레이 달리오의 장점은 자신의 이런 약점을 인식하고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레이 달리오가 월스트리트에서도 거의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시장 분석에 이용한 인물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두뇌를 믿지 않았다. 숫자투성이인 연례 보고서만 보고도 기업의 이상 징후를 찾아낼 수 있는 워런 버핏이나 6년 동안 3개 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리 루가 아니라면 투자자는 결코 함부로 자신의 두뇌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 레이 달리오는 이 원칙을 평생 지켰다. 덕분에 세계 최대의 헤지펀드 브리지워터를 창업할 수 있었다.

1949년생인 레이 달리오는 8세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다. 펜을 잡는 법보다 먼저 배운 건 돈을 버는 법이었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노동의 가치를 일찍 깨우친 건 행운이었다. 12세 때인 1961년부턴 스스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골프장 캐디를 하면서 귀동냥으로 주식 투자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종잣돈은 캐디를 하면서 받은 팁이었다. 1961년은 케네디의 시대였다. 미국의 전성기였다. 미국은 2차 대전에서 승리했고 1950년대 내내 전후 복구 호황을 누렸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고 공언했다.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다.

개별주식보다 시장자체에 관심

레이 달리오는 노스이스트 항공 주식을 샀다. 당시 주가는 주당 5달러였다. 사실 당시 노스이스트 항공은 파산 직전이었다. 그래서 5달러 안팎의 동전주였다. 그런데도 레이 달리오는 노스이스트 항공으로 3배 이상의 시세 차익을 거뒀다. 노스이스트 항공이 델타항공에 인수되면서 주가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12세 레이 달리오가 이런 기업 정보를 미리 알았던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다. 정작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실력으로 착각했다. 주식은 사면 오르는 것이라는 환상에 빠졌다.

첫 사랑 노스이스트 항공으로 돈맛을 본 이후부터 레이 달리오는 고등학생이 된 1966년까지 6년 동안 포춘500대 기업 주식을 모두 사고 팔았다. 레이 달리오는 포춘500대 기업의 연례 보고서를 모두 배달 받았다. 읽는다고는 읽었지만 솔직히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로 주식을 샀다.

그래도 올랐다. 레이 달리오는 스스로 개별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상 상장 지수를 따라가는 인덱스 펀드식 투자를 하고 있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유행하던 주식 투자 방식이 바로 상장 지수 펀드였다. 시장 평균만 따라가도 일정 수익률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67년부터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불안을 느낀 시장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레이 달리오는 계속해서 주식을 샀다. 주식은 오르는 것이라는 맹신 탓이었다. 결국 레이 달리오는 상당한 돈을 잃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평범한 투자자가 저지르는 전형적인 오류에 빠졌던 것이다. 이때 레이 달리오는 개별 주식보다 시장 자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가란 기업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주가에는 시장의 기대감이 더 크게 반영돼 있었다.

삼겹살 투자로 날개없는 추락

이 무렵 레이 달리오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경제사적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레이 달리오는 주식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 폐지를 전격 발표한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였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비용을 감당하느라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고 있었다.

결국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게 됐다. 시중에 달러가 너무 많이 풀려버린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이때 달러를 버리고 금을 축적하고 있었다. 시중에는 금의 유통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견디다 못한 닉슨 미국 정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린다. 달러와 금을 1대 1로 바꿔주는 금본위제를 폐지해버린 것이다. 이제 달러는 종이 쪼가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작 주식 시장은 환호했다. 미국 정부가 달러를 마음껏 인쇄할 수 있게 되면서 소위 양적 완화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코로나 시국처럼 돈은 곧바로 주식 시장으로 몰렸다. 미국 증시는 대폭발해버렸다. 시장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돈이 종이 쪼가리가 됐으니 이걸 다른 가치 있는 자산으로 바꾸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1972년부터 이른바 니프티피프티 주식이 증시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IBM, P&G, 코카콜라, 맥도날드, 제록스, 디즈니, GE, 필립 모리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 50개 종목들이었다. 코로나 시국 때부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빅테크 주식들과 닮은 꼴이었다. 그렇지만 주식에 대한 신뢰를 잃은 레이 달리오는 니프티피프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레이 달리오가 옳았다. 니프티피프티는 정점에서 폭락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상장 폐지를 당했다. 대표적인 유명 기업이 폴라로이드였다. 90% 이상 주가가 폭락한 끝에 시장에서 퇴출됐다. 이때 레이 달리오는 주식 시장보단 상품 시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주식 투자는 종이돈을 종이 증서로 바꾸는 거래였다. 상품은 종이돈을 주면 고기, 기름, 곡물처럼 실질적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바꾸는 거래였다. 당시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한 레이 달리오는 상품 거래 분야를 파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월스트리트에선 상품 거래는 비인기 종목이었다. 당연히 월스트리트에서 취업하고 싶어하는 하버드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도 상품 거래는 기피 분야였다.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주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주

 

레이 달리오의 생각은 달랐다. 투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봤다. 금본위제가 폐지됐다. 이제 화폐와 주식은 종이 증서일 뿐이었다. 당연히 가격은 시장 분위기에 따라 널을 뛰었다. 그래서 주식뿐만 아니라 채권이나 상품처럼 정말 내재적인 가치가 있는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만 했다. 이것이 평생에 걸쳐서 레이 달리오가 발전시킨 올웨더 전략의 핵심 아이디어다.

그렇지만 아이디어가 좋았다고 해서 곧바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 달리오는 시카고 상품 시장에서 삼겹살을 선물 거래했다. 삼겹살 가격이 특정 시점에 얼마일지를 놓고 베팅을 한 것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자신의 가격 예측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완전히 틀렸다. 선물 투자답게 엄청난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 거래 정지를 당할 정도였다. 주식 투자로 큰 실패를 경험하고 상품 투자로 전향했던 레이 달리오는 여기서도 참패를 맛봤다. 레이 달리오는 유명한 금융 저널리스트 잭 슈웨거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투자는 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잘못하면 전기에 감전될 수 있다. 삼겹살 거래로 나는 감전의 충격과 공포를 경험했다.”

끊임없이 포트폴리오 재구성

주식 투자와 상품 투자에서의 실패 경험은 레이 달리오가 자신의 약점과 한계를 직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투자 원칙과 예측 모델에 대한 집착은 이때부터 비롯됐다. 자기 자신을 전혀 믿지 않고 원칙과 모델을 믿는 투자자가 된 것이다. 1975년 브리지워터를 창업한 레이 달리오는 상품 시장에서도 특히 가축과 곡물이라는 2가지 분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곡물 가격과 육류 가격은 서로 연동돼 있었다. 가축은 사료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후반 브리지워터는 강수량과 곡물 생산량과 사료 소비량과 가축 재고량의 상관 관계를 분석해서 시장 흐름과 가격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2024년 현재까지 브리지워터가 구축해온 시장 예측 모델의 1.0 버전 정도 된다. 레이 달리오 투자법의 뿌리는 상품 가격의 예측 모델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걸 주식과 채권 등 모든 자산 가격에까지 확대한 것이다.

계산이 느리고 기억력에 자신이 없었던 레이 달리오는 컴퓨터와 통계 마니아가 됐다. 초기엔 공책을 썼지만 나중엔 개인용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과거의 통계 그래프가 미래의 가격 그래프로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집착했다. 레이 달리오의 브리지워터는 과거 200년의 시장 데이터와 창업 이후 50년 동안의 데이터를 통해 예측력을 발전시켰다. 브리지워터라는 회사 이름은 대륙간 상품 거래를 중개해준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이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이름이 됐다.

레이 달리오는 브리지워터의 시장 가격 예측 모델을 상품, 가축, 채권, 통화 등 최소한 4가지 이상의 시장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경제학에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2가지 요소로 가격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레이 달리오는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 속에 다양한 디테일이 숨어 있다는 걸 통찰했다. 디테일한 시장 가격 결정 요소들 속에서 인과 관계를 찾아내고, 대응 원칙을 입력하고, 컴퓨터가 사람 대신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3단계가 레이 달리오가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었다.

이걸 바탕으로 올웨더 포트폴리오 투자법이 탄생했다.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을 x축과 y축으로 두고 주식, 회사채, 물가연동채, 원자재, 이머징채권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끊임없이 리밸런싱하는 것이다. 레이 달리오의 브리지워터는 이런 시스템과 투자법으로 2010년 사상 최대 수익을 기록했다. 특히 올웨더 투자법으로 운영되는 올웨더 펀드는 연평균 18%의 수익률을 올렸다.

처음부터 맞아떨어졌던 건 아니었다. 데이터가 부족하고 알고리즘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개발 초기엔 10억달러 정도의 전재산을 날린 적도 있었다. 자신의 돈 뿐만 아니라 고객의 돈까지 날리면서 사실상 브리지워터는 파산 직전까지 갔다. 이때부터 레이 달리오가 한 건 매일 하루 1개씩 투자 분석 레터를 고객들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시장을 연구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부족했던건 시스템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정하는 사람의 생각을 가다듬고 시스템을 발전시켜야만 올바른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레이 달리오는 자신이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을 이기려면 적어도 시장보다는 근면성실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레이 달리오는 1982년 8월 멕시코 채무 불이행 사태의 추이를 잘못 예측하는 오류를 범한다. 사실 레이 달리오의 투자 인생은 실수로 점철돼 있다. 자신이 실수와 오류 투성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는 멕시코 모라토리엄 사태가 미국 금융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완전히 틀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레이 달리오는 예측 모델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예측에 따른 인간의 선택이 변수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시장을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라는 2가지 모두의 측면에서 대응 전략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통한 의사 결정과 그에 따른 인간의 의사 결정이 어떻게 연동되는지를 찾아냈다. 무려 1억개 이상의 데이터 세트를 분석했고 투자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레이 달리오가 이끄는 브리지워터는 세계 최대의 헤지 펀드 운용사다. 전세계의 기관 투자가들이 앞다퉈 브리지워터에 돈을 맡긴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해주면서도 왜 그런 포트폴리오 투자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금융공학, 역사적 데이터, 분석력, 투자원칙이라는 4가지 무기로 세계은행부터 기업연기금까지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왔다.

2023년 3분기 기준 브리지워터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1위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차지하고 있다. 프록터앤갬블, 존슨앤존슨, 코카콜라 같은 우량주들에도 투자하고 있다. 대형주 30%, 미국장기국채 40%, 금 선물ETF 10%, 원자재선물ETF 10% 정도의 포트폴리오 비중이다. 레이 달리오는 예측할 수 없는 시장에 대응하는 예측 시스템과 대응 전략, 투자 원칙을 구축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모든 걸 계량화하는 것이 레이 달리오의 목표였고 그렇게 했다.

심지어 레이 달리오는 MBTI를 회사 인사 시스템에 적용한 선구자 중 하나다. 2000년대부터 MBTI를 바탕으로 인사 전략을 짰다. MBTI 역시 예측 불가능한 인간을 분석하는 유용한 툴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레이 달리오는 투자의 원칙처럼 MBTI도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데 활용했다. 통계와 원칙에 집착하는 것만 보면 레이 달리오는 계획하는 걸 선호하는 J처럼 보인다.

정작 레이 달리오는 대표적인 P다. 계획을 바꾸는 걸 선호한다. 어쩌면 레이 달리오는 투자자로서 자신의 P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셈이다. 세계 최강의 J가 된 P다. 역시 약점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올웨더(All-Weather) : 브리지워터의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가 만든 투자전략으로 경기침체, 성장가속화, 인플레이션의 상승과 하락 등 어떤 경제환경에서도 수익을 내자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전 세계 주식을 추종하는 VTI, 미국 장기채(TLT), 미국 중기채(IEF), 금(GLD), 원자재(DBC)에 대한 비중에 맞춰 구성된 투자 전략이라 할 수 있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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