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해당되는 기업 수가 83만 7000개에 달한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무려 80%가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많은 중소기업들이 준비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하라고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필요한 조치’를 하라며 의무를 포괄적으로 정하고 있다. 사업주 입장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아직 준비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안전 시설·설비 교체 지원도 중요하지만, 안전 전문인력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사업주가 모든 의무를 직접 다할 수 없으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안전 전문인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중소기업은 기존의 안전 담당자마저도 빼앗길 처지다.

이런 원인을 개선하지 않고, 처벌만 내세우는 것은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전은 처벌이 아니라 예방조치를 통해 달성된다. 대다수 중소기업이 법을 안지키는 것이 아니라 못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처벌은 기업의 예방조치를 촉진시키기 어렵다. 지금 처벌은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12월 27일 정부가 총 1조 5000억원 규모의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중소기업 공동안전관리자 지원사업 등 현장에서 요청한 사항들이 다수 반영됐다. 이러한 정부 지원대책이 원활히 추진된다면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제 시작 단계다.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계 등 일각에서는 즉시 처벌을 고집하고 있다. 유예를 하면 중소기업들에게 ‘버티면 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6단체가 더 이상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한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일각에서는 그간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펼쳐왔으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서만 엄벌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단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과거 “엄벌주의, 응보주의에 기반한 소년범죄 정책은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 방지를 위한 실효적 대안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긍정적 역할을 하기 어렵다”고 해놓고,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냈다. 소년범죄에 대해서는 엄벌주의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면서 기업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엄벌주의는 신중해야 한다. 법을 준수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대한 엄벌주의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유독 기업에 대해서만 엄벌주의를 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범죄를 고의로 저지른 자들에 비해 자신의 사업장에서 사고가 일어나길 바라는 사업주는 단언코 한 명도 없다.

지금처럼 많은 중소기업들이 법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리하게 법을 시행하면 중소기업은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그 피해는 사업주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와 지역경제에도 미치게 된다.

많은 전문가들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마련된 정부 지원대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중소기업 현장에서 이에 따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옳다.

안전을 위한 합리적인 규제는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기업에 대해서만 엄벌주의를 외치는 규제는 효과는 없이 기업 부담만 확대할 우려가 크다. 15일부터 1월 임시국회가 열린다. 법 시행 전 마지막 기회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을 꼭 처리해주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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