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발목 잡는 건 사회 만연한 부패
미래 세대 위해선 반드시 근절해야
다가오는 총선이 명운 가를 분기점

김광훈(칼럼니스트)
김광훈(칼럼니스트)

필자가 다닌 고등학교는 몇 가지 점에서 특이했다. 공립도 사립도 아닌 국립이었고 80년전 처음 설립될 때부터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남녀 공학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 반에 세 명씩 재일동포가 배정돼 있었다. 그 재일동포 동기 중 한 명이 얼마 전 동창 모임에 나왔다. 오래된 우리나라 옛날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는 것만 봐도 영락없는 한국인 핏줄인 건 맞는 것 같다.

모국이라고 온 나라는 자신들이 태어난 곳과는 여러모로 달랐었다고 털어놨다. 그들이 한국에 오기 10년 전에 이미 일본은 거대한 공업국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돼 있었고 칼라TV도 오래전에 생산 중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들은 이야기는 온갖 흉흉한 것뿐이었다. 특히 흑백TV에 냉장고도 없다는 소문도 그들을 아연하게 했다.

그러던 한국이 어떻게 이런 천지개벽을 이뤄냈을까. 필자는 그 단초를 오래전 미국인 고객과 방문했던 동남아 국가들에서 봤다. 그는 미국이 그렇게 지원을 했는데도 한국과 40년 정도 차이가 난다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구도 많고 영어가 공용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기업 하기에 유리하며 이념이 완전히 다른 적성국들과 대치하고 있지도 않으니 경제 발전에 얼마나 유리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나라의 발목을 잡는 것은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한 부패다. 사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외주 패키징 업체가 이 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돌연 하루아침에 폐업을 선언했다. 그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에 의하면 정치권에서 그 회사에 끊임없이 뇌물을 요구해 이를 못 견딘 회사 창업주가 회사 문을 닫아 버린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그 나쁜 고리를 끊은 건 기적이고 국운이 좋다는 증거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세무서, 학교, 공무원, 언론, 교통경찰, 기업 등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뇌물이 오가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금도 완전히 근절된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사회적 지탄은 물론 법적인 책임을 엄격히 묻는 풍토가 정착됐다. 다시는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 되는 나라가 부패가 허용되는 나라다.

여야 모두 정권을 잡기 위해 인기 있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때로 인기 없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 마가렛 대처의 경제 개혁 등은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었지만 역사와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뇌물 관련 스캔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 분야만이 사실상 구태가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다. 저출산 문제보다도 심각한 것이 부패다. 부패와의 밀애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세계 각국에서 그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치인은 길을 안내하는 셰르파지 등반의 주역이 아니다. 어떤 공복이 돼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출마하거나 공직에 진출하기 전에 신촌에 있는 직원 두 명뿐인 우체국에 들를 것을 권한다. 친절한 데다 프로페셔널한 업무처리는 기본이고 사비 또는 후원을 받아 피곤한 고객들이 누구든 마실 수 있게 에너지 드링크도 비치해 두고 있다.

어떤 정치인들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 초에 예정된 총선은 우리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분기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과 기저귀는 같은 이유로 자주 바꿔줘야 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더욱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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