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는 지역소멸 완화할 버팀목
청년인재 역외유출 방지에도 최상책
원활한 승계 위한 인센티브 확대 시급

이태희(대구한의대학교 특임교수)
이태희(대구한의대학교 특임교수)

수도권 등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지역소멸 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필자가 생활하는 경북,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경북은 22개 시·군 중에서 15개가, 대구광역시는 9개 구·군 중 3개가 인구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수도권과 광역시 이외 지역의 소도시는 제대로 된 산업 기반을 갖추기 어렵다. 번듯한 건물이라고는 관공서 건물이나 주민 편의시설 등 정도다. 도로에 차량도, 길거리에 사람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가 직면한 지역 소멸의 모습이다.

지역소멸이 경고하는 바는 깊고도 무겁다. 오랜 세월 형성돼 온 지역의 전통과 소중한 사회문화적 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지역 경제의 기반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생산인구 감소, 고령층 증가, 청년층 유출 등 지역 인구구조의 변화는 성장 잠재력 약화와 소비·투자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지역의 오래된 소상공인과 향토 중소기업이다. 이들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자, 일자리의 댐이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이든 터줏대감처럼 수십 년 이상 연륜을 이어오는 기업이나 가게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 ‘백년가게’라고 부른다. 여기서 ‘백년’이란 단순히 숫자로서의 100년이 아닌 ‘시간적, 문화적 무게’를 지녔다는 의미다. 즉 100년이 안 됐더라도 지역에서 30년, 50년 등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면 백년가게라고 할 수 있다. ‘장수가게’라고 부르기도 하고, 일본식으로 노포(老鋪, しにせ)라고 하기도 한다.

필자는 지난 학기에 학생들과 함께 경북의 인구소멸 위기 지역과 그 지역 백년가게 몇 군데를 둘러봤다. 이들이 처한 현실과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해 보자는 취지였다.

현장 탐방 결과, 백년가게의 중요성과 애로사항 등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대체로 잘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판로 확대, 시설개선, 자금융자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이고,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과의 협업 네트워크 구축, 판로지원 등도 일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 가업승계와 관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필자가 둘러본 지역의 백년가게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가업승계가 원만히 진행된 가게와 그렇지 못한 가게다. 결론을 말하면 가업승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게에서는 활력과 생명력을 찾기 어려웠다. 탐방 현장에서도 이런 가게들이 적지 않았고,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2021년 국정감사 자료에서는 약 25%의 백년가게가 가업승계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년가게는 지역의 경제와 사회문화적 유산을 지탱하는 보루이자, 지역 소멸의 충격을 완화할 유력한 대안이다. 백년가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실질적 지원과 가업승계 인센티브 확대 등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가족 외에도 지역의 청년들이 보다 쉽게 백년가게를 승계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자체로서 일자리 창출이 될 수 있고, 젊은 인재들의 역외 유출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외진 시골에 있더라도 전통과 혁신의 콜라보가 이뤄지는 멋진 백년가게가 적지 않다. 이러한 백년가게라면 그 지역 사람은 물론이고, 외지 사람들도 꼭 찾아보고 싶지 않겠는가? 더 많은 백년가게가 지역의 보석처럼 오래오래 빛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소멸의 위기 속에서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그곳에 백년가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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