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3조1500억원 규모 수출계약
고종·명성황후 ‘군사대국’꿈 떠올라
K-방산, 美·英도 꺾고 글로벌 위상 우

손정미(역사소설가)
손정미(역역사소설가, 역사소설 <그림자 황후> 작가)

K-방산에 관심이 많은 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장갑차 ‘레드백’ 수출을 최종 계약했다는 뉴스에 환호했다. 모두 129대로 자그마치 3조1500억원 규모였다. 장갑차 강국인 독일의 ‘링스’를 상대로 이겼다는 점에 내심 감격스러웠다.

역사소설을 쓰면서 고대 무기에서부터 첨단 무기에 이르기까지 군사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군사력에 달려있다는 걸 절감한 덕분이다.

K-방산이 세계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고종과 명성황후가 강한 군대를 갖기 위해 기울였던 절절한 노력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얼마나 치열하게 근대식 무기와 군대를 키우기 위해 몸부림쳤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본격적으로 왕권을 잡으면서 경복궁에 왕실도서관이자 집무실인 ‘집옥재(集玉齋)’를 세웠고, 연경(북경)에서 큰돈을 들여 해외 번역서를 들여왔다. 바깥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명성황후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매우 총명했고 늘 지식의 보고인 책을 가까이했다.

당시 청국에서 발간되는 해외 번역서는 서양의 문물을 들여오는 중요한 통로였다. 청국의 ‘강남기기제조총국’은 서구식 무기를 만드는 곳이었지만, 이곳 번역관에서는 서양 문물에 대한 책을 펴내고 있었다.

고종이 들여온 책은 1924종에 달했고, 야전(野戰)을 위한 책부터 유럽의 판도를 바꾼 보불전쟁과 청불전쟁 등 전사(戰史)를 다룬 책, 광물학, 지리학 등이 망라됐다.

그중 눈길을 끈 책이 <극로백포설>이었다. ‘극로백포’는 당시 가장 강력하다고 인정받은 프로이센의 ‘크루프포’를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책은 크루프포의 발사 및 탄 사용법과 포병의 역할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조선을 노리는 청국과 일본을 막아내기 위해 강군을 간절히 원했다. 조선에 대해 처음에는 호의적이었던 미국에 군사교관을 보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고 미국과 서구로부터 총과 탄약, 대포를 수입했다.

제물포 해관(현재의 세관)이 남긴 자료를 보면 수입 품목에 무기 구매 내역이 남아있다. 경복궁에는 크루프포가 실제 배치되기도 했다.

고종은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선 해군이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해양강국인 영국에 해군학교 교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영국은 자신의 큰 시장인 청국과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하고 일본의 눈치를 보면서 조선의 요청을 묵살했다. 영국은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으로 유학 갈 때 지원하는 등 메이지유신 실세들과의 관계가 돈독했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야욕을 잘 알고 있었다. 청국은 서구 열강에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고 있었지만 조선에 대한 지배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영국은 시간만 끌다 고액의 연봉을 조건으로 예비역 해군 대위 윌리엄 콜웰과 하사관 제임스 커티스를 보냈다. 고종은 강화도에 해군학교인 통제영학당을 세워 관리들의 자제 중에서 학생을 선발하고, 300명의 수병까지 뽑아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통제영학당은 문을 닫고 조선의 군대도 해산됐다.

강병을 일으키기 위해 애태웠던 고종과 명성황후를 떠올리면 요즘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선 군사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크루프포의 위력을 자랑하던 독일을 비롯해 미국과 영국의 장갑차를 한국의 ‘레드백’이 이겼다니…….

작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때문에 교통이 엄청나게 막혔지만 나는 한마디 불평도 쏟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한 마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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