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 부장판사의 中企人이 알아야 할 법률분쟁 지식(2) 질권자가 담보로 받은 비상장주식을 유질약정 따라 0원에 처분할 수 있는지

법률 분쟁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손해배상책임을 넘어 임직원의 형사처벌이나 폐업, 심지어는 기업 자체를 뺏기기도 한다. 분쟁 발생을 피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법률 분쟁은 상법, 노동법, 공정거래법 등 다양한 법률이 동시에 문제 되는 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에 중소기업인의 법률 분쟁 대비를 돕기 위해 허승 부장판사가 쉽게 설명하는 법률분쟁 사례 시리즈를 매월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일러스트레이션 서용남

김철수는 오피스텔 분양사업을 하는 회사인 중소개발(이하 ‘회사’라고 함)의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김철수는 대부업을 하는 대형금고로부터 중소개발의 주식을 담보로 10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김철수는 회사 명의로 대출약정서를 작성한 후 회사의 대출금 채무를 연대보증했다.

그리고 대형금고의 요구에 따라 회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다는 근질권설정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위 계약서에는 “회사가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대형금고는 일반적으로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방법, 시기, 가격 등에 의해 주식을 처분하고 그 대금을 취득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회사의 오피스텔 분양사업은 100억원의 자금과 김철수의 노력으로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사업 막바지에 인근 주민의 민원으로 사업이 지체됐고, 결국 오피스텔 분양이 시작되기 전에 대출금의 변제기가 도래했다. 김철수는 대형금고에 조금만 있으면 오피스텔을 분양해 대출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수 있다고 사정했지만, 대형금고는 대형금고의 주주인 박영희에게 중소개발의 주식을 0원에 처분했다.

김철수는 대형금고의 주식 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박영희를 상대로 김철수가 회사의 주주라는 확인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 담보권자가 유질계약에 따라 담보로 받은 비상장주식을 부당한 가격으로 처분하더라도 그 처분은 유효함

 

판사 : 김철수와 박영희가 서로 자신이 회사의 주주라고 주장하는 사건이군요.

박영희 : 예. 당연히 제가 회사의 주주입니다. 대형금고는 대출금 변제기가 도래하자 근질권설정계약에 따라 담보로 받은 회사 주식을 제게 적법하게 처분했습니다.

김철수 : 아니 주식을 0원으로 처분했는데, 이게 적법하다고요? 제 연대보증 채무는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채 담보로 맡긴 주식만 상실한다니 말이 되나요?

박영희 :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회사는 현재 자산보다 부채가 많습니다. 주식가치를 0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김철수 : 판사님. 회사의 가치가 정말 없다면, 박영희가 주식을 취득했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장부상 부채가 자산보다 많기는 하지만, 성공이 눈앞에 있는 오피스텔 분양사업이 반영되지 않은 재무제표입니다.

박영희 : 오피스텔 분양이 성공할지 어떻게 알아요? 무엇보다 계약서에 적당한 방법으로 주식을 평가하면 된다고 돼 있는 이상, 재무제표를 근거로 주식가치를 평가한 것에 어떠한 문제도 없습니다.

- 위 사례는 대법원 2021. 11. 25. 선고 2018다304007 판결,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6다32582 판결 등을 바탕으로 필자가 창작한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경영권 분쟁의 모습

최근 SM엔터테인먼트, 한국앤컴퍼니 등 상장기업의 경영권 분쟁 소식이 뉴스에 보도됐습니다. 상장기업은 주식시장에 주식이 분산돼 있기 때문에 공격자나 기존 경영진 모두 주식시장을 통해 지분을 확보하려 합니다. 따라서 상장기업의 경영권 분쟁의 승패는 주식시장을 통한 공개매수의 성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면 중소기업의 경영권 분쟁은 상장기업과는 달리 ‘주식에 대한 질권 실행이 유효한지’인 경우가 많죠.

왜 ‘주식에 대한 질권 실행이 유효한지’가 핵심 쟁점이 되는 걸까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주식은 대부분 대주주 또는 그 가족이 소유하고 있고, 그 주식이 시장에서 유통이 되지도 않기 때문에 대주주의 의사에 반해 제3자가 대주주를 위협할 수 있는 지분을 획득하기는 어렵습니다. 주식매매를 통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이죠.

반면 중소기업의 대주주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담보권자가 대주주의 의사에 반해 주식을 처분할 수 있죠. 담보권자가 처분한 주식을 취득한 사람은 중소기업에 대표이사 변경을 위한 주주총회의 소집을 청구하고, 기존 대주주는 채권자의 주식 처분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주주총회 소집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식에 대한 질권 실행 방법

주식 또한 담보로 맡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담보권자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을 때 주식에 대한 담보권을 어떻게 실행할까요? 간단한 예를 들어 보죠. A가 B로부터 10만원을 빌리면서 B에게 담보로 100만원 상당의 주식을 맡겼습니다. 이때 A는 B와 ‘A가 돈을 갚지 않으면 B는 적당한 방법으로 주식을 처분한 후 그 대금을 모두 갖는다.’라고 약정을 했습니다.

이러한 약정을 ‘유질약정’이라고 합니다. B는 A가 돈을 갚지 않자 주식을 100만원에 처분했고, 그중 10만원을 A에 대한 채권 변제에 사용했고, B의 A에 대한 10만원 채권은 소멸했죠. 그렇다면 B는 채권 변제에 사용하고 남은 90만원을 그대로 가질 수 있을까요? 유질약정에 따르면 B가 주식의 처분 대가를 모두 가질 수 있지만, 민법은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 보호를 위해 유질약정을 무효로 규정하므로 B는 A에게 90만원을 반환해야 합니다. 반면 A, B가 상인이라면 상법이 적용되는데, 상법은 유질약정을 금지하지 않고 있습니다. B는 유질약정에 따라 90만원을 모두 가질 수 있습니다.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과 질권 실행

상법이 적용되는 경우, 즉 상행위로 인해 생긴 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주식에 대해 질권이 설정된 경우에 질권자가 가지는 권리의 범위 및 그 행사방법은 원칙적으로 계약의 내용에 따라 정해집니다. 현재 실무상 사용되는 근질권설정계약서에는 사례와 같이 “담보권자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적당한 방법으로 주식을 평가·처분해 그 처분대금을 가질 수 있다.”는 유질약정 조항이 있습니다.

문제는 비상장주식은 평가방법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지는 비상장주식이라면 그 거래가격을 기준으로 가액을 정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경우에는 비상장주식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죠. 위 사례에서 대형금고는 중소개발의 가치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차감한 순자산가치로 평가하는 ‘자산가치법’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는 회사의 가치는 프로젝트의 사업성에 대한 평가인 미래 가치가 중요합니다. 기업의 미래수익성을 바탕으로 주식가치를 평가하는 ‘수익가치법’에 따랐다면 중소개발 주식의 가치는 100억원 이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식 담보권 설정에 있어 주의할 점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담보권자의 주식을 낮게 평가해 처분하더라도 그 처분 자체는 유효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허용된 비상장주식 가격 산정방식 중 하나를 채택해 그 처분가액을 산정했다면 그 가격이 합리적인 가격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주식의 처분 자체는 유효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사례에서 대형금고가 중소개발의 주식가치를 0원으로 평가한 것이 부당하더라도 근질권설정계약이 정한 담보권 실행 방법을 따랐다면 그 처분 자체는 유효합니다. 김철수는 대형금고를 상대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는 있지만, 이때에는 김철수가 주식의 정당한 가치를 주장·증명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설사 손해배상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중소건설의 경영권은 되찾기 어렵습니다.

현재 실무상 주식담보계약에 유질약정은 빠지지 않고 포함돼 있습니다. 유질약정이 다소 부당하더라도 돈을 빌려야 하는 입장에서 유질약정의 수정을 요구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적어도 회사 주식의 대부분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릴 때에는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필요는 있습니다. 담보계약의 내용에 따라 힘들게 일군 회사를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요.

※위 내용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허승 부장판사는 현재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 중이며 공정거래법, 세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쓴 책으로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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