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지난달 25일에 이어 2월 1일에도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법안처리가 무산되면서 83만이 넘는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예비 범법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안전관리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이 많아 처벌 받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중소기업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어렵다. 고물가, 고금리로 산업현장에서 느끼는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는 와중에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의 공포를 더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시급하고 중요한 민생현안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줄곧 요청해왔다. 특히, 지난달 31일에는 전국의 3600여 중소기업인들이 국회에 모여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간곡히 호소했다. 법 유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간절함과 범법자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생업까지 잠시 멈추고, 꼭두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모인 것이다. 중소기업 62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중소기업이 폐업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사업을 할 수 있게 하고, 근로자들도 실직 걱정을 덜고 안전한 일터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회가 늘 강조하던 민생 문제다. 그러나 3600여 중소기업인의 다급한 절규를 정치는 끝내 외면했다.

 

영세 中企에 처벌 집중될 우려 커

현장은 간절한 목소리로 가득했다. 대표가 영업, 관리 등 1인 다역(多役)을 하는 것이 중소기업이기에 장기간의 수사와 재판 등에 따른 대표의 장기간 부재는 폐업과 근로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실형을 확정받은 사례를 보면 사고 발생일로부터 형 확정까지 약 1년 9개월이 걸렸다. 장기간의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버텨낼 수 있는 영세 중소기업인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걱정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인적역량, 재정 부족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조차 모르고 있어 외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그러나 컨설팅을 위한 인력과 인프라의 한계는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지원은 늦어졌고 그나마 충분하지도 않았다. 더욱이 대기업과 달리 전문인력이나 법률 지원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처벌이 집중될 우려도 크다.

 

2월 임시국회서 유예법안 재논의 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5인 미만 사업장이 되기 위해 근로자를 줄이거나 법인을 나누는 것마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고 위험이 높은 고령자 채용을 기피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동안 훈풍이 불었던 취업시장에 냉기가 돌 우려가 크다.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와중에 고용마저 꺾이게 된다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따른 부작용이 너무나 클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에서도 여러 대응을 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산재예방을 위한 인프라를 혁신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산재예방 전담인력을 대폭 확대해 하루빨리 사업장에 산업안전보건체계가 구축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소규모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해주고, 기업이 스스로 산재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조치할 수 있도록 산재예방투자에 대한 세제지원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 지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상 사업장이 83만7000여개에 달하고, 전문인력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당장이라도 지원이 필요한 다수의 중소기업에 지원 혜택이 골고루, 적시에 이뤄지기는 무리가 있다. 게다가 안전 전문인력 육성은 다른 지원 사업들과 달리 예산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결국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가 해법이다. 중소기업계는 무산 이후에도 국회에 다시 한번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유예한다면 더 이상의 유예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회는 중소기업인들의 간곡한 호소에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을 바라보고,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아 주기를 바란다. 남은 2월 임시국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이 다시 논의돼 중소기업의 다급한 절규에 정치가 화답한 상징적인 사례로 기억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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