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에 모인 젊은이들
묵묵히 할일하는 보통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이 나라 대들보

장경순(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장경순(한림대학교 글로벌협력대학원 겸임교수)

지난달 칼바람이 분다는 소한 무렵 늦둥이 아들이 논산 육군 훈련소에 입소했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올해는 덜 추워서 한시름 놨다.

요새는 군대도 자신의 전공이나 특기를 살려서  지원 입대할 수도 있다는데, 늦둥이 아들은 특기 따지지 말고 그냥 갔다 오라는 큰아들의 쿨한 조언에 무슨 보직이든 상관없이 열심히 몸으로 때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일반 징집병으로 입대했다.

더벅머리 자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먹여 보내고 싶은 어미 욕심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두 시간 넘게 달려서 도착한 논산 시내 이발소에서는 빨강 파랑 흰색의 삼색등이 추억처럼 돌아가고 있다. 곧 넘어질 것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쿠션이 다 꺼진 소파에서 나이 지긋한 영감님 서너 분이 차례를 기다리고 계신다.

이발 의자라고는 덜렁 두 개에 이발사 역시 나이 지긋하신 분이다. 허름한 풍경과는 달리 머리를 정리하고 면도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전문가를 넘어 예술가의 면모가 풍긴다. 무조건 여기서 머리를 자르고 가야겠다.

문제는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온다는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나서도 면도하고 샴푸에 로션까지 순서대로 서비스해야 하니 시간이 꽤 걸리는 듯했다. 난감해서 돌아나가려고 하는데,  조용히 이발을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갑자기 너나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나라 지키러 가는 젊은이 먼저 머리를 잘라 주라’고 하신다. 

그렇게 제일 먼저 머리를 손질하는데 머리를 자르는 내내 이발소 안은 군대 이야기로 왁자지껄해지며 생기가 돈다. 12사단 원통 통신병 스토리부터 요새 군대는 군대도 아니다에 이르기까지. 요새 18개월은 금방이고 월급도 주고 가혹행위도 없고 하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라 지키고 건강하게 돌아오라고 격려해 주신다. 젊어서 예쁘고 보기 좋다고 칭찬도 많이 해 주고 등도 두드려 주면서 밝게 웃으신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군대이지만 입대 첫날부터 낯선 곳,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으니 마음 든든하고 감사하다. 그간 소소한 걱정이나 애달픈 감정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스시 뷔페로 점심을 먹고 찾아간 논산 훈련소 인근은 온통 자동차로 뒤범벅이다. 아무래도 입영 시간에 맞추지 못할 듯해 아들은 먼저 내려 걸어가도록 하고 훈련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입소식장에 들어갔다. 입소식장에 모인 앳된 얼굴의 청년들을 보니 누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내 자식 같고 애틋하다.

누가 그랬던가.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이 지탱하는 거다.’ 논산 훈련소에 모인 평범한 청년들을 보니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묵묵히 주어진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 특권이나 기득권 없이 평범하기만 한 사람들이 내어놓은 시간과 젊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애국자이자 자부심인 나라. 보통 사람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높이 평가하는 나라가 강인한 나라이고 선진사회가 아닌가 싶다.

자식을 군에 보낸 후에야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삼 눈에 밟힌다. 지하철에서 도로에서 군복 입은 청년들이 자주 보이고, 휴가 나온 장병의 식사 비용을 대신 결제했다는 훈훈한 미담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음료 뚜껑에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응원 메시지를 적은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도 가슴에 와닿는다.

나 역시 식당에 갈 때마다 운 좋게 군복 입은 청년을 만나면 음식값은 내가 내리라 다짐하고 기회를 노렸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진 실천하지 못했다.

앞으로 기회는 무궁무진할 것이니 마음만은 변치 말자 다짐한다. 젊음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수많은 보통의 젊은이들에게 감사하지만, 신새벽 아들 걱정에 뒤척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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