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점점 높아지고 파랗고 하얀 뭉게구름이 원 없이 보일 정도로 맑아지지만 가을 햇살은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따갑다. 농부들은 가을 곡식이 알알이 영글어지게 하는 햇살이 고맙겠지만 여행객에겐 가을 문턱에 서서도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어 뺨을 타고 내린다. 그래도 풍요로운 가을은 지천에 널브러져 있다. 알알이 영근 밤톨은 땅에 뚝뚝 떨어지고, 산속에는 이름모를 산열매도 익어가고 야생 버섯도 막바지를 달려가고 있어 여행길의 행보를 더디게 한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족나들이를 떠나볼 수 있는 장소로 가을꽃이 만발한 식물원 여행도 권할만하다.

국내에 이름난 식물원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이름만 들어도 거의 기억될 정도다. 으레 봄이 되면 봄꽃이 만발한 식물원은 대대적으로 언론에 소개되지만 야생꽃은 겨울이 다가오기까지는 꽃을 피우고 진다. 한택식물원(031-333-3558, www.hantaek.com, 경기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은 건설업을 하던 이택주 원장이 1979년부터 부지를 조성하고 시설을 갖추어 1984년 정식으로 개원한 국내 최대의 사립 식물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반인들은 관람할 수 없었고, 2003년 5월에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긴 시간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놓은 식물원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대는 높았고, 그에 부응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다.
개원을 앞두고 있던 2년 전, 식물원에 들렀으나 계절은 야속하게 화사한 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고 사진 자료를 얻어서 기사화 할 수밖에 없었다.
땡볕이 부담스러운 9월말, 한택식물원을 찾았다. 30명 이상 단체객들에게만 해설사가 따라 붙지만 10명도 채 안되는 인원이 해설을 들을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비봉산 산자락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식물원은 동원과 서원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일반인들은 동원만 관람할 수 있다. 서원은 식물의 생태와 번식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 연구소라고 칭할 수 있다. 총 20여 만 평 규모라서 식물원을 돌아보는 데만도 1-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초본 식물 1,800여 종과 목본 식물 700여 종을 포함한 자생 식물 2,500여 종과 3,500여 종의 외래식물 등 총 6,000여 종에 이르는 꽃과 나무가 살고 있다는데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니 그저 보고 마는 것에 그칠 수밖에.
해설사를 따라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을 찍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일정이다. 입구에서는 무료로 국화차를 시음할 수 있는데, 노란 산국화(감국) 등을 소금물에 데쳐내기만 하면 국화차가 된다는데, 꽃향이 사라지고 나니 먹기에 매우 편안하다. 주차장 한 편에는 휴게소와 식당이 있었고, 꽃작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판매대가 있다.
입구를 지나 우선 찾는 곳은 아이들의 관심이 쏠린다는 식충식물관. 파리 등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식충식물은 벌레가 사라지는 이 즈음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버선 모양이나 관이 달린 모습이 신기하다. 식충식물이라고는 하나 자태는 아름답다.
팻말을 따라, 해설사를 따라 천천히 산길을 오르면서 소박하게 피어난 야생화에 폭 빠져 든다. 외우고 외워도 뒤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리는 게 야생화 이름이다. 홈페이지에 가을철에 피는 꽃들을 자료와 함께 올려놓으니 떠나기 전에 한번쯤 확인하고 가면 쉽게 머리 속에 기억될 듯하다.
한택식물원은 총 20여 개의 주제별 공간에 총 450만 본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아이리스원, 원추리원, 관목원, 숙근초원, 전시온실, 잔디화단, 작약, 모란원, 수생식물원, 백합원, 약용식물원, 음지식물원을 비롯해 가을철에는 억새들과 개미취 등이 만발한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기억할 수도 없는 수목과 야생초, 그리고 외래종들. 꽃군락지가 있고, 꿀 향을 풍기면 어김없이 꿀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특히 군락지로 피어난 꽃은 보랏빛, 흰빛의 구절초와 층꽃나무, 둥근잎 꿩의 비름, 절구꽃, 두메부추, 칼잎용담, 천남성과에 속한 애기앉은 부채 등이다. 특히 애기앉은 부채는 족두리 꽃처럼 땅에 거의 맞닿아 꽃이 피었는데, 매개체인 딱정벌레가 손쉽게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란다. 또한 거의 잎이 지고 있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은 가짜 꽃을 피워 매개체를 유인하는 꽃도 관심을 끌었다. 최근 산속에서 흔히 보았던 보랏빛 돌쩌귀(투구꽃), 쥐손이풀 등과 맞닥뜨리니 오래된 지인을 만난 듯 반갑다.
이렇듯 흔히 볼 수 있는 국내 자생식물원은 한택식물원이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특화식물원이다. 국내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과 법정보호식물, 희귀멸종식물 등 1,750여 종을 최대한 자연 조건을 맞추어 보존 관리하고 있다.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약재 등 약용으로 이용되는 식물 500여 종을 심어 약용식물원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쪽, 황칠나무, 황벽나무 등 염료자원이 되는 식물 200여 종을 심어 놓은 염료식물원이 있다.
지금은 꽃이 져서 볼 수 없지만 여름철에 가장 인기를 누리고 있는 1만 평의 인공습지에 조성한 수생식물원. 국내에서 자생하는 수생식물 100여 종과 중국에서 도입한 200여 종의 연꽃을 볼 수 있다.
그저 주마간산 식으로 식물원을 들러본다면 뒤돌아서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한 개도 없을 터. 관심을 가지다 보면 새로운 것이 눈에 띄게 되고, 지속되는 갈증이 생긴다. 우리가 들녘, 산 속에서 무심하게 지나친 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을 한군데 모아 집중적으로 감상하면 어느 순간 혜안의 눈을 갖게 되지 않을까?
■입장료 : 평일:성인(7000원), 청소년(5500원), 주말:성인(8500원), 청소년(6000원)
■대중교통 : 남부터미널에서 백암행 버스를 타고 백암에서 10-4번 시내버스(4회) 이용. 또는 수원, 영통지구에서는 신갈 버스터미널을 이용. 신갈에서 10-4시내버스(8회)를 이용하면 된다.
■자가운전 : 영동고속도로-양지 나들목-17번 국도 이용(10km 직진)-근곡 사거리에서 백암쪽으로 우회전(329지방도)-600m 다리 건너 우회전-청화 아파트에서 좌회전-장평리 방향으로 진입(팻말이 잘 돼 있음). 중부고속도로 이용해 일죽나들목을 이용해 38번국도 따라 장호원 방면으로 오다 죽산을 만나게 된다. 죽산 마을길로 진입하면 나들목에서 거리가 훨씬 가깝다.
■별미집 : 식물원을 찾을 때 거치게 되는 백암면은 오래전부터 순댓집으로 소문난 동네다. 순대 속에 배춧잎을 넣는 것이 특색. 또는 식물원 부대시설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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