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의 전신은 철 못 등을 주로 생산하는 임의단체인 제정공업연합회(製釘工業聯合會).
조합의 모태인 제정공업연합회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이 시행되면서 지난 1962년 한국금속공업협동조합으로 전환했고 금속조합은 중소기업협동조합앙회 발기인 조합으로 참여 하는 등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화공(주) 용이식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한 10여명의 업계 대표 인사들은조합 창립을 위한 발기인회를 결성 1962년 3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송주식 전임 이사장은 “요즘 시각으로 보면 못을 만드는 게 산업 축에 끼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조합이 창립될 당시 원자재인 철을 수입에 의존하는 등 국내 공업수준이 그 정도였다”며 “60~70년대 공업화와 더불어 금속산업 또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회고했다.
출범당시 조합원은 32개 업체로 524개사가 가입된 현재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현재 규모면에서 성장한 것은 물론 조합을 구성하고 있는 업종도 다양해져 선재, 나사, 철판, 강관, 가로등, 일반금속, 주방용품 등 7개 분과로 구성돼 있다.
조합의 외형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부터. 그해 한 해 동안 조합에 가입한 회원수는 200개를 넘어섰고 1980년에 이르러 433개사로 늘어났다.

창립 43년 한국산업역사 이끌어

이 같은 외형 성장은 1차 오일쇼크 영향이 컸다는 게 조합 관계자들의 설명으로 중소기업의 존립자체가 위협 받던 상태에서 정부의 자금지원이 조합원사를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을 기점으로 점차 조합원 수가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1979년 2차 오일쇼크로 빚어진 장기간 불황과 10.26 사태로 정치적인 불안이 초래되면서 빚어진 현상이었다.
그러나 국내 금속산업이 발전하면서 1976년부터 양정부, 철문·창호부, 주방기기부, 강관제품부, 울타리자재부 등 5개 업종이 추가돼 모두 10개 업종에 이르기도 했다.
이 같이 다양한 금속관련 조합원사들이 흘린 땀방울 덕분에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기계제작 분야 요소부품공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국가경제의 근간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금속조합의 지난 40여년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때 조합이 존폐의 기로에 설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위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하는 권혁구 이사장은 디지털 시대로 옮겨가는 새로운 기업 환경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조합의 운영 수입은 크게 회원수입과 사업수입 그리고 사업외수입 등 3가지. 현재 조합의 수입예산 구조에서 조합원이 직접 부담하는 회원수익은 연평균 5%대로 전체 수입예산 중에서 극히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조합 수입의 대부분은 사업수입으로 연평균 87%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로 조합의 공동사업 운영에 따른 결과다.
공동사업은 공동구매사업과 공동판매사업으로 나뉘며 조합원 업체가 생산에 필요한 100여종 이상의 원·부자재를 보다 질 좋고 싸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합이 본 궤도에 올라선 지난 92년 이후 공동구매사업은 한층 강화됐으며 금속시험 검사소 등을 설치, 품질향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권혁구 금속조합 이사장은 “향후 전개되는 21세기는 IT, BT, ET, NT 등으로 상징되는 첨단, 신기술의 시대”라고 전제하고 “끊임없는 창의력과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이를 극복해야 하며 재래산업과 신기술을 접목해야 할 것”으로 강조했다.

◇사진설명 : 1978년 개최된 금속조합 제16회 정기총회에서 손원학 전임이사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금속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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