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획일적으로 교복을 입던 세대들은 고교시절 으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의무감으로 느꼈던 수학여행지가 긴 세월동안 변해가는 내 의식처럼 새롭게 다가선다. 수년 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처럼, 전혀 기억되지 않은 스토리가 다시 재현되듯이 말이다. 경주에서 으레 찾는 석굴암, 불국사, 남산, 기림사, 보문사지, 대왕암 등은 따로 논하지 않으련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지에서 미처 관심 갖지 못했던 내용들이 경주시내에도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황남빵과 대능원 등 경주 시내 야간 여행
경주에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 바로 황남빵인데, 워낙 유명해지면서 경주 빵의 대명사가 됐다. 황남빵 원조집(054-749-7000, www.hwangnam.co.kr)은 황남동의 단 한 곳뿐이다. 1935년에 일본인으로부터 제빵 기술을 배운 후 나름대로 새로운 기술을 접목, 탄생시킨 것이 황남빵이다. 1939년 당시 21세이던 최영화옹(95년 작고)이 빵집을 개장했고 지금까지 3대가 대물림해서 이어오고 있다. 국산 팥을 이용하며 달지 않아 많이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특징. 최근에는 보리빵집도 많이 눈에 띈다.
그렇게 황남빵을 사들고 도로를 건너면 대능원 매표소(경주시 황남동)를 만난다. 대릉원(사적 제175호)은 신라 고분이 밀집해 있는 경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고분공원이다.
대능원은 약 12만5천여 평의 평지에 많은 유물이 출토된 천마총을 비롯해 신라 13대왕의 무덤인 미추왕릉, 동서 길이가 무려 80m, 높이 25m로 경주 고분군 중 가장 큰 황남대총 등 총 23개의 능이 솟아 있다. 직경이 10m에서 120m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이 고분들은 외형상으로는 대부분 원형토분으로 돼 있으나 표형분고분이라고 하는 부부 합장용의 쌍분도 있고 내부구조는 몇몇 고분의 발굴결과 신라 특유의 적석 목곽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특히 황남 대총(98호 고분)은 부부 총이며 경주 고분 중 가장 크다. 1975년 발굴결과 북쪽 릉은 여자릉이고 남쪽 능은 남자 능이었는데 북릉에서 금관 등이 나왔고, 남릉에선 무기류 등이 나와 총 2만4천900여점 이 출토됐다. 북릉에 부장된 허리띠 끝 부분에 “ 부인대”라는 글씨가 있어 주인공은 여자로 판명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마총으로 들어갔는데, 천마총(155호 고분)은 유일하게 내부가 관광객에게 공개돼 있는 능. 무덤 내부에는 발굴한 금관, 장신구 등의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고 내부에 그려진 천마도 장니(국보 207호)벽화도 감상할 수 있다. 번쩍거리는 금관(국보 188호), 허리장식(국보190호, 금제 과대 및 요패), 금모(국보 제189호)를 비롯한 장신구들 모두 수공으로 만들어 졌을 터인데도 정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단한 신라인들의 솜씨에 감탄사만 연발할 뿐.

안압지의 환상적인 야경
밤이 야속하게 깊어가는 바람에 첨성대, 박혁거세의 탄생지인 계림을 그냥 지나치고 안압지로 향한다. 안압지는 신라 천년의 궁궐인 반월성에서 동북쪽으로 걸어서 십분 거리에 있다. 통일시기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 많은 부를 축적한 왕권은 극히 호화롭고 사치한 생활을 누리면서 크고 화려한 궁전을 갖추는 데 각별한 관심을 두었다. 그리해 통일 직후 674년에 안압지를 만들었으며 679년에는 화려한 궁궐을 중수하고 여러 개의 대문이 있는 규모가 큰 동궁을 새로 건설했다. 훤한 대낮에 보는 전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매혹돼 물속으로 풍덩 빠져들고 싶은 욕망까지 생긴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이 외국여행에 비하겠는가?

경주 최씨 씨족마을과 경주 법주와 한정식
능원을 걸어 나와 찾은 곳은 교동의 경주 최씨 씨족마을. 경주 향교가 있어서 교동이라는 지명이 붙었는데 이곳은 최씨 집성촌이다. 이 집안에는 정신적 기반이 된 가훈, 경영 철학의 역할을 한 가거십훈, 구체적 상황에 따른 대처법인 육연이 있었다. 최 부잣집의 정신적 기반이 된 가훈에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있다. 도덕적 가치를 지키며 부를 축척했을 뿐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었던 그 집안의 경영 이념과 철학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 사회의 부자들이 나아갈 길 그리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최씨 종택 옆에는 경주 교동 법주를 만드는 기능보유자는 배영신씨네 집이 있다.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로 지정됐는데 이곳까지 들러 특주를 빼놓을 수 없는 일. 교동법주는 신라의 비주라 일컬어지는 술로, 조선 숙종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던 사옹원에서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처음 빚었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 19도가 넘어 국세청의 곡주 허용 규정도수인 11-16도를 초과하다가, 1990년 15도로 낮추는 비법을 창안해 제조허가를 받게 됐다. 석식 또한 경주에서 가장 내로라하는 요석궁에서 맛을 보았는데, 집안 분위기는 두말하면 잔소리 일 정도로 빼어났다. 가격은 2만-10만원 한정식이 있는데, 전통을 고수하는 양념 맛에 담백하고 깔끔한 상차림.

보문호를 바라보는 호텔에서의 숙박과 경주박물관
관광의 도시 경주는 오래 전부터 일본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이 많이 찾은 여행지다. 그런 만큼 숙박지 등 각종 편의시설을 고루 갖추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 보문단지 쪽이다.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현대호텔(054-748-2233)에 투숙하고 눈을 비비고 발코니에 나가니 바다만큼이나 넓어 보이는 호수가 발 아래로 펼쳐지고 야외수영장, 골프장 등이 그림처럼 다가선다.
경주를 전문적으로 설명해준다는 신라사람들(054-748-7707, isilla.co.kr)의 안내에 따라 학생 때의 그 시절로 돌아가 박물관을 순회한다. 우선 성덕대왕 신종 앞으로 간다. 일명 에밀레종으로 알고 있는 종이다. 무게는 18.908t, 높이 3.33m, 지름 2.27m로 제작기간은 34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어 국립경주박물관 서쪽에 있는 안압지관을 찾는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당시 궁중에서 사용했던 생활용기들을 비롯해 나무배 등 700여 점의 대표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단일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로 전시관 하나를 다 채운 것도 보기 드문 일이다. 안압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부장품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신라 무덤의 출토품과는 달리 실생활에서 사용됐던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목제주령구라는 주사위다. 14면으로 이루어진 주사위는 잔치 때 흥을 돋우는 놀이기구이 일종인데 이것을 굴려 나타나는 면에 씌어진 내용에 따라 행동하도록 돼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목제 주사위의 진품이 화재로 인해 불타버렸으며, 현재는 그 모조품만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 외 경주박물관내에서도 눈길을 잡아끄는 것들이 많았지만 일일이 열거하기에는 쉽지 않다. 그중에서 삼국의 와당 모양이다. 수키와 암기와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아주 독특한 얼굴 수막새가 있다. 주로 연화문, 달 토끼문 등을 많이 사용했는데 얼굴형태로 만든 것은 관심을 끌게 한다. ‘신라인의 미소’라 불리게 된 ‘얼굴무늬 수막새’를 비롯해 현존하는 것 중 제일 큰 ‘황룡사 치미’, 안압지에서 출토된 ‘녹유 귀면와’ 등 6세기부터 통일신라 말기까지의 신라기와 400여 점이 선보인다. 이 모형을 따라 LG대기업 로고가 탄생했다고 한다.
■기타 여행정보:경주에서 괜찮은 음식점으로는 삼포 쌈밥집(054-741-4384)과 멸치와 동태로 끓인 시원한 국물에 채썰은 메밀묵이 송송 들어간 팔우정 해장국촌은 경상도식의 진수를 즐길 수 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