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업계가 ‘8월 위기설’에 긴장하고 있다. 3조원 규모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와 노조 파업이 발등에 불로 떨어진 가운데 중국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갈등에 따른 수출 감소도 장기화할 조짐이다. 부품업계는 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가중으로 생존의 기로에 섰다.

기아차 패소시 적자전환에 유동성 부족
8월 위기설의 하이라이트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 결과다. 당초 오는 17일로 예정됐던 1심 선고는 재판부가 기록 확인 등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연기됐다.
이 선고는 업계에서 ‘핵폭탄급’으로 받아들여진다. 소송의 규모와 상징성 때문인데, 소송금액과 대상 인원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이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패소 시 최대 3조원 이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는 상반기 영업이익이 7870억원(영업이익률 3%)으로 44%나 급감, 2010년 이후 최저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2012년 7.5%에서 2015년 4.8%, 2016년 4.7%, 2017년 상반기에는 3% 수준까지 급락하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데다 국내 시장과 미국 시장 역시 판매가 부진하면서 하반기에도 이보다 크게 개선된 영업이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영업이익은 순수하게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 금액이 전액 유보금으로 기업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투자, 법인세, 배당 등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최소 5% 수준의 영업이익을 유지해야 기업이 존속하고 지속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3%인 기아차 영업이익률 수준에서 통상임금 소송 패소시 투자, 법인세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해 더 큰 폭의 자금이 필요해 차입경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아차가 패소 시 최대 3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한다. 이 경우 당장 3분기부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하며 유동성 부족 등으로 인한 경영위기, 나아가 전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신의칙’ 적용 여부가 최대 쟁점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쟁점은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인정 여부다.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신의칙을 인정받기 위해선 우선 정기상여금에 대한 청구여야 하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합의가 존재하고 추가 임금 청구시 기업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해야 한다.
업계에선 기아차의 경우 과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노사합의가 존재하는데다 월평균 20∼50시간 가량 초과근무와 750%의 높은 상여금 지급률, 급감하는 영업이익률에 따른 적자전환 우려 등으로 이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신의칙 적용에 대한 하급심 판결들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관련 기업에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과거 아시아나항공·현대중공업·동원금속 등의 사건에선 1심과 2심에서 신의칙 인정 여부가 엇갈렸다.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할 때에도 삼성중공업 사건(창원지법)에선 현금성 자산을 기준으로 본 반면 현대다이모스 사건(대전지법)에선 이익잉여금을 주요 지표로 삼았다. 동원금속 사건에선 배당금 지출 규모로 판단하기도 했다.
판결 이후에 중장기적으로 여러 문제점도 예상된다.
우선 현대차 근로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부담이다. 현대차의 경우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가 2심까지 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특정 급여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현대차의 상여금 시행 세칙에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 지급 제외’라는 규정이 있다. 특정조건을 만족해야 정기상여금을 받을 수 있어 고정성이 없기 때문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기아차가 패소해 기아차의 통상임금과 임금이 함께 올라가면 현대차 노조가 기아차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임금협상 때마다 더 높은 인상률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5300여 중소협력업체 타격 불가피
협력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상당수 완성차 부품 납품 업체가 이미 급격하게 오른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분을 맞추기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상여금이 배제돼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기준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부품업계의 경영난으로 공급망이 무너지면 완성차 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하고, 산업 기반이 흔들리는 악순환이 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그동안 현대·기아차의 차량 생산 대수에 맞춰 부품을 납품해왔다. 두 회사의 실적 부진으로 납품 물량이 줄어들면 덩달아 매출이 감소하고 납품 단가 역시 내려가게 돼 있는 구조다.
현대·기아차의 1차 협력회사는 300여곳이다. 2·3차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5300여곳에 달한다. 한 부품사 대표는 “기아차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 영세한 2·3차 협력사들은 곧바로 자금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 양극화로 인한 따가운 시선도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키는 경우 평균 연봉이 9600만원(2016년 기준)에 달하는 3만여명의 기아차 생산직 근로자는 평균 1억1000여만원의 일시금을 받아 연봉이 2억원을 넘는다. 향후에도 매년 1000만원 이상 지속적인 연봉 인상이 이뤄지게 돼 대기업 강성노조와 무노조 중소기업 간 임금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통상임금 문제가 자동차 업계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은 자동차·조선·항공 등 전 산업부문 200여개 기업에서 동시 진행 중이다. 이번 기아차 판결이 통상임금을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면, 각 사업장에서는 추가 통상임금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통상임금 정의 규정 입법화해야”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인 35곳(종업원 450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통상임금 소송 건수는 103건으로 집계됐다. 종결된 4건을 빼고 현재 기업당 평균 2.8건의 소송을 치르고 있다.
소송 진행 단계별로는 1심 계류(48건·46.6%) 상태가 가장 많았고, 이어 2심(항소심) 계류(31건·30.1%), 3심(상고심) 계류(20건·19.4%) 순이었다.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으로는 ‘소급지급 관련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인정 여부’(65.7%) ‘상여금 및 기타 수당의 고정성 충족 여부’(28.6%)가 꼽혔다.
기업들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간 묵시적 합의·관행 불인정’(32.6%) ‘재무지표 외 업계현황·산업특성·미래 투자애로 등 고려 부족’(25.6%) ‘경영위기 판단시점 혼선’(18.6%) 등 때문에 신의칙이 쟁점이 된다고 답했다.
설문 대상 35곳 가운데 25곳이 통상임금 소송 패소 시 지연이자, 소급분 등을 포함한 비용 추산액을 밝혔는데, 합계가 8조3673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이들 기업의 지난해 전체 인건비의 3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통상임금 소송의 원인으로는 ‘정부와 사법부의 통상임금 해석 범위 불일치’(40.3%) ‘고정성, 신의칙 세부지침 미비’(28.4%) ‘통상임금 정의 법적 규정 미비’(26.9%) 등이 거론됐고, 해결방안으로는 ‘통상임금 정의 규정 입법’(30.4%) ‘신의칙, 고정성 구체적 지침 마련’(27.5%) ‘소급분에 대한 신의칙 적용’(27.5%) 등이 요청됐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입법화하고 신의칙 등에 대한 세부지침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신의칙 인정 여부를 따질 때도 관련 기업의 재무지표뿐 아니라 국내외 시장환경, 미래 투자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통상임금
일상적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 근로기준법은 야근·주말특근 등 연장근로 시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정기적으로(정기성), 근로자 모두에게(일률성), 추가 조건 없이 일한 시간에 따라(고정성) 지급하는 정기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신의성실의 원칙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원칙(민법 제2조).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노사 합의가 있고,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근로자의 청구로 인해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그 청구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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