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 자가격리 경험하면서] 박훈희 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박훈희(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박훈희(한국블록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

2004년 말, 미국의 한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가 자신의 회사가 개발 중인 제품의 투자유치를 위해 한국으로 건너와 삼성전자 회의실에 들어섰다.

창업자가 야심차게 제품에 대한 발표를 마치자, 이를 듣고 있던 약 20여명의 담당자 중 한 명이 이윽고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이 이걸 만든다고요? 당신 팀에는 고작 6명밖에 없어요. 제정신인가요?” 희망을 품고 먼 길을 찾아왔던 창업자는 결국 쓸쓸히 사무실을 퇴장했다.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바일 사업에 진입할 기회를 계속 탐구하던 회사가 있었다. 바로 구글 (Google)이다. 구글은 이 6명의 엔지니어들이 구상하던 비전에 공감했다. 결국 5천만 달러 (한화 약 610억 원)라는 거액을 들여 그들의 작은 스타트업을 인수했고, 이는 거대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작년 기준 전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의 87%를 점유하고 있는 안드로이드(Android) 창업자 앤디루빈(Andy Rubin)이다. 필자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용 이외에 당시 내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삼성의 실수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당시의 그 스타트업이 오늘날의 안드로이드가 될 것임을 예상치 못했음은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 인간은 누구든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때론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오만과 편협을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라는 미명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듯하다.

미국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논할 때면 대한민국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모범사례다. 70년 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다시 시작한 이 작은 나라가 이제는 당당히 세계은행(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선진국(Advanced Economy) 반열에 올라 자주 기술강국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도 대한민국의 진가는 발휘됐다. 특히 필자는 미국의 거센 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정책대학원에서의 현지 학업을 잠시 멈추고 4월초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뒤로 인천공항에서부터 겪게 된 해외입국자발 국내 확산 방지를 위한 입국 절차와 자가격리 시스템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2주간의 엄격한 자가격리가 한편으론 상당히 고통스럽긴 해도 한국의 체계적인 방역 관리 수준을 몸소 체험하게 된 중요한 경험이었다.

한국은 현재 기술강국답게 모바일앱과 데이터기반의 방역 체계를 구축해 도시 전체의 셧다운(shutdown) 등 극단적인 조치 대신 효과적으로 집중관리(Precision Quarantine) 방식을 활용했고, 여기에 선진 시민의식까지 더해져 G20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정상생활에 근접한 생활방역 단계 돌입하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이렇게 훌륭한 기술역량을 가진 대한민국에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인재들이 2의 안드로이드를 꿈꾸며 열정을 쏟고 있다. 그 중 일부는 분명 2004년 당시 삼성을 찾아온 안드로이드보다도 더 좋은 실력과 높은 완성도를 갖췄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위치에 서있는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2017년 비로소 처음으로 전세계 대중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블록체인은 단순 혁신을 넘어 인류의 생활방식 자체를 바꿔버릴 기술이라 불리기도 했다. 일부는 우연이라 했지만, IT강국으로서의 명성을 떨치던 대한민국이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의 중심이 됐던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였다.

국내외에서 내로라하는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금방이고 세상을 바꿔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흐른 지금, 우리 생활에서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는 많이 희미해진 듯 하다.

이는 결코 블록체인 기술이 과거보다 못해져서가 아니다. 세상을 바꿀거란 잠재력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당시 그 인재들의 실력이 낙후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관심이 사라졌을 뿐이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조금만 시간을 들여 검색해보면 세계 곳곳에서 블록체인을 활용한 혁신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대한민국은 높은 기술력과 세계수준의 인재풀이라는 흔치 않은 조건을 갖췄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정치권과 대중의 관심은 예전같지 않다. 그럼에도 세계 어디선가 기술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시도는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리고 결국, 블록체인업계의 안드로이드또한 반드시 등장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은 시간이 최대 경쟁력이다. 국정운영에 있어 급한 일이 없는 때는 없다. ‘급한 일을 먼저한다는 이유로 블록체인 산업 입법을 미루고, 일부에 그친 악용사례에 휘둘려 산업 전체에 빗장을 걸고 있는 동안, 우리는 또 다시 눈 앞에 찾아온 안드로이드를 놓치고 말지 모른다.

반복되는 실수는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계속해서 오만과 편협을 실수로 둔갑하는 한 국제무대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는 안드로이드는 그저 상상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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