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만기 ‘5차 재연장’으로 방향타 트는 정부
취약 中企 ‘금융·재정’ 정책협업이 대출만기 연착륙 관건
저금리 대환대출 활성화·이자채무 면제 등 과감한 결단 필요
中企·국회 한목소리 촉구, 대선후보들도 재연장 강력 강조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지난 9일 열린 ‘2022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김기문 회장은 ‘대출만기 재연장’을 첫 번째 중소기업계 현안 과제로 제시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지난 9일 열린 ‘2022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김기문 회장은 ‘대출만기 재연장’을 첫 번째 중소기업계 현안 과제로 제시했다.

지난 2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중소기업계는 중소기업중앙회를 중심으로 하나가 돼 위기극복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다. 특히 코로나 여파로 생존 위협을 받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숨통을 열어 주기 위해 중기중앙회는 그동안 총 4차례의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정부로부터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부족이다. 연초부터 전국적으로 오미크론 대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계의 수많은 취약 차주들은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가 그간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영업시간 제한 조처 등을 강화하면서 중소기업계는 장사는 안 되고 자꾸 빚만 쌓이는 악순환의 늪에 허덕이고 있다.

통화당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지난해부터 연달아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고 금융당국은 질서 있는 정상화를 부르짖으며 오는 3월말 대출만기 재연장 종료를 준비하는 움직임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3월말 재연장 종료시 대출상환을 위해 추가 대출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2%나 나왔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고강도 방역조치가 언제 풀릴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빚을 빚으로 갚을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대출()은 늘어나고 금리는 상승하고 매출은 하락하는 ‘3대 악재속에서 중소기업계에선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취약차주 핀셋지원도 주문

이에 중기중앙회가 금융당국과 재정당국에게 중소기업 관점의 정책조합’(policy mix)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중기중앙회는 금융위원회에 오는 3월 말 종료 예정인 대출만기연장 및 이자상환유예 조치에 대해 추가연장이 필요하다는 중소기업계 의견을 담아 건의했다.

이번 정책 건의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중기중앙회가 4차례 이끌어온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한 차례 더 연장하는 ‘5차 재연장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 및 재정 지원책 마련을 제안했다. 중소기업계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지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부채 상환 시기를 조절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면서 연착륙을 이끌고 재정당국은 정책금융을 활용해 취약차주에 대한 핀셋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주요 요지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환청구권이 없는 매출채권 팩토링 및 저금리 대환대출 활성화 소상공인 등 취약차주 대상 원금을 제외한 이자 채무 면제 융자·보증·2차보전 등 정책금융을 통한 유동성 추가 공급이다.

중기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올해 금리 인상이 계속 이어지면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그간 누적돼온 부채 리스크가 한 번에 터지면서 이른 바 집중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원래 재정 정책의 목적이 어려운 국민을 선택적으로 도와주는 데 있기 때문에 금융당국이 이자상환 유예를 끝내면서 정말 지원이 필요한 차주를 식별해주면 재정당국이 재정으로 보완하는 방식의 연착륙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688만 중소기업계의 다급하고 절박한 목소리에 정부도 ‘5차 재연장으로 정책의 방향타를 틀고 있다.

지난 18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3월말 종료되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의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조치의 시한 연장을 현재 적극 검토하고 있다자영업자를 상대로 한 맞춤형 금융지원 대책을 촘촘히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추가연장이 없다3월말 4차 만기연장의 종료 방침을 강구했던 정부가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는 것은 상징적인 변화다. 중기중앙회가 그간 줄기차게 건의한 대출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 없이는 다른 연착륙 방안은 본질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5차 재연장의 물꼬를 다시 한번 튼 것으로 평가된다.

 

김기문 회장 재연장작심 발언

이러한 정책변화는 연초부터 중기중앙회가 총력을 다해 금융당국과 협의를 하면서 이뤄낸 값진 결실이다. 중기중앙회는 지난 16일 금융위와 대출만기 재연장과 관련한 사전협의를 시작했다.

지난 1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1.00%에서 1.25%0.25%포인트 인상하자 중기중앙회는 즉각 우려를 표하고 3월 말 종료되는 대출만기의 추가 연장 조치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이후 세 차례나 시행된 기준금리 인상은 중소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늘리고 어려움을 가중시킬 게 뻔했다. 중소기업은 기준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때 영업이익 대비 이자 비용이 8.48%포인트 늘어날 만큼 금리 인상에 취약한 구조다.

가뜩이나 지난 113일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출만기 이자상환 유예조치를 종료해야 한다는 엄포를 하면서 대출만기 연장을 주장하던 중소기업계가 깊은 시름에 빠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중기중앙회는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고 대출만기 추가연장의 여론을 극대화하는 작업에 더욱 매진했다.

특히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지난 126일 여의도 국민은행에서 열린 ‘2022년도 제1차 금융지원위원회에서 강력 제언했다. 이날 회의는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비롯해 5대 시중은행장과 정책금융기관장이 참석해 설 명절을 맞아 자금사정을 점검하고 올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금융지원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기문 회장은 최근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87%가 대출만기연장 등의 추가연장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적극적인 검토를 부탁드린다고 역설했다. 중소기업계 입장에선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는 코로나 팬데믹을 견디는 강력한 양대 금융지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 29일에는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날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갖은 김기문 회장은 그간 코로나 대출금 만기 추가 연장을 하게 된 배경에 중소기업한테 귀책 사유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추가 연장을 안할 명분이 없다고 지적하며 재연장의 필요성을 재차 피력했다.

무엇보다 김 회장은 금융권이 대출 만기연장 등 중소기업 자금지원을 계속 해오면서 사상 최대 이익이 나고 있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올해 금융권은 대손충당금(대출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놓는 적립금)도 많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의 심각한 부실 문제가 없다면 대출 연장을 주저할 명분이 없다고 직격했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이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이 15조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중기중앙회 행보에 정치권 공조

중기중앙회가 불을 지핀 대출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재연장촉구에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촉구했다. 앞서 이재명 대선후보도 이와 같은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집권시 긴급 재정명령을 내려 국가가 그들의 채무를 매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을지로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자영업 대출자는 약 250만명으로 대출잔액은 858조원이며 이중 다중채무자는 전체 자영업자의 56%140만여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기관에서 대출을 끌어 쓴 다중채무자가 급증했기 때문에 무리한 재연장 종료는 커다란 금융 부실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을지로위원회는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를 끝낸다는 것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고 있는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떼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올해 들어 대통령 후보들도 중소기업계의 염원인 대출만기 재연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당선 즉시 2차 추경을 해서 코로나로 인한 빚을 탕감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도 저금리 특례보증 대출 50조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역시 금융당국의 결단을 통해 대출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유예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최소한 올해 연말까지는 연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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