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➊ - 공기업 너마저
한진ENG, 남동발전 카피 제품으로 입찰 짬짜미 의혹 제기
허인순 대표 “대통령이 나서 철저히 밝혀달라” 눈물로 호소
국내 넘어 원천기술 해외 유출로까지 확장, 국가적 손실 초래

처음엔 대·중소기업 간 협업으로 시작했다가 결국 모든것을 빼앗기고 만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아이디어·기술탈취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기술탈취 관련 중소기업계 상담 건수만 매년 6000건에 달한다. 막대한 자금력과 법무 인력을 갖춘 대기업과 비교하면 중소기업이 스스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기술탈취의 전모를 파악할 자료 대부분을 분쟁 당사자이자 가해 기업인 대기업이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울어진 소송전’이 될 게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개최한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대·중소기업의 ‘원팀’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진정한 원팀’이 되려면 중소기업의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땀방울로 일군 기술을 대기업이 무차별 강탈하는 갑질은 근절돼야 한다. 6월 첫째주 경제계 주요 뉴스에서도 어김없이 기술탈취 정책 이슈와 눈물의 피해기업 호소가 쏟아졌다. <중소기업뉴스>가 인상적인 3개의 장면을 정리했다.

허인순 한진엔지니어링 대표가 지난 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대기업뿐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기술탈취가 자행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황정아 기자
허인순 한진엔지니어링 대표가 지난 7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대기업뿐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기술탈취가 자행되고 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황정아 기자

“민간 대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한 것을 알고 나니 정말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발전 공기업이 우리 기술을 계획적으로 탈취하고 특정 업체에 밀어줬습니다. 중소기업의 우수한 기술이 특정 집단의 사익 추구를 위한 먹잇감이 되고 있습니다.”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공기업에서도 중소기업의 값진 기술을 탈취하는 불법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어 놀라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7일 허인순 한진엔지니어링 대표는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에 윤석열 대통령이 적극 나서달라”며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맺어왔던 한국남동발전의 기술탈취 피해 전황을 눈물로 호소했다.

한진엔지니어링은 23년째 플랜트엔지니어링을 제조하는 기술기반의 강소기업이다. 지난 2014년 야적장 비산먼지 특허를 시작으로, 2018년엔 석탄화력발전소의 옥내 저탄장 비산먼지 저감 설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척그린파워, 태안화력, 신보령화력 등의 옥내저탄장에 설치했다.

허인순 대표는 “화력발전소 저장고의 특성상 자연발화를 방지하고, 비산먼지를 저감하는 시스템이 시급해 이를 개선하고자 기술개발에 나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래서 탄생한 기술이 1000대2 비율로 친환경 약재를 배합해 자연발화를 억제하는 기술이다. 먼지 입자보다 작게 물 입자를 쪼갠 뒤 친환경 약재와 섞어 노즐을 통해 안개처럼 분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2018년 남동발전이 고성하이화력발전소 현장에 한진엔지니어링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며 관련 기술자료 요청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허 대표는 남동발전, 국내 대기업 건설사, 한국전력기술에 기술자료를 제공했다.

자료를 넘겨받은 남동발전과 한국전력기술이 해당 기술을 A업체에 유출했고 A업체가 기술을 교묘하게 베껴 특허를 출원했다는 게 허 대표 주장이다. 이후 A업체는 고성그린파워에 납품할 수 있었으며 이어 강릉안인화력발전소와의 수의계약을 따내는 등 각종 정부 사업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정부에 의해 설립된 공기업이 계획적인 기술탈취 후 특정업체 밀어주기를 감행한 이유가 있다. 허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정부가 전국 화력발전소 옥내저탄장화를 위해 1조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러한 정부 사업내용을 사전에 인지한 남동발전이 천문학적인 新시장을 독식하기 위한 불법행위를 꾸몄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동발전은 A업체에 한진엔지니어링의 기술자료를 검토하게 했다. 이후 특허 침해를 피해 가기 위해 교묘하게 차별적인 기술을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허 대표에 따르면 A업체는 한진엔지니어링의 기술에 물 입자 크기를 자동 조절하는 기능을 더해 특허를 냈다.

이를 통해 고성그린파워에 납품 실적을 만들어주고, 해당 실적으로 강릉안인화력발전소는 수의계약을 맺는 치밀함을 보였다.

허 대표는 “그동안 기술기반의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원천특허와 보완특허까지 꼼꼼하게 받아놓은 터여서 마음을 놓았었는데 하루 아침에 특허 기술도 잃게 되고 공기업과의 분쟁으로 인해 기존 시장에서 일감도 거의 사라지게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진엔지니어링은 한때 연 매출이 40억~50억원 수준이었지만 기술유출 피해를 본 이후엔 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러한 공기업의 기술탈취 전모도 지난해 5월께 검찰로부터 전해들으면서 인지하게 됐다. 수원지방검찰청 산업기술범죄팀이 지난해 3월 남동발전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허 대표를 피해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면서 밝혀졌다.

결국 현재 A사 관계자 3명과 시공 발주처 B사 관계자 1명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배임증재, 배임수재,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이다. 그럼에도 남동발전은 기술탈취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남동발전 측은 발전소 건설회사인 설계·구매·시공(EPC) 측에서 기자재 공급, 시공, 하도급 선정 등 대부분의 업무를 주도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기술유출 등 혐의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번 남동발전의 기술탈취 의혹은 단순히 국내에서만 벌어진 기술탈취 문제를 넘어 해외 기술유출로까지 확장되면서 국가적인 손실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서 A업체가 기술의 핵심이 되는 노즐 등의 부품을 일본의 특정 제조사로부터 전량 수입한 것이 시작이다. 해당 일본 기업은 해당 부품이 석탄 비산먼지 저감용으로 사용한 실적이 없었음에도 A업체의 첫 실적인 고성그린파워 사업에 납품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일본 기업은 해외 14개 지사로 영업을 해 2021년부터 인도네시아 화력발전소 등에 한진엔지니어링 기술로 비산먼지 저감 설비가 설치되고 있다.

허인순 대표와 한진엔지니어링의 임직원들이 국가 산업발전을 위해 10년 전 피땀 흘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국내 원천기술이 이처럼 정부 공기업의 탐욕으로 인해 허망하게 해외유출된 것이다. 첨단기술 선점을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산업기술 해외유출 행위는 개별기업 피해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훼손을 가져오는 중범죄다.

한편 허인순 대표는 “남동발전과 한국전력기술은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이 피눈물 흘려 개발한 기술을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이용했다”며 “세상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지만 공기업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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