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달리:끝없는 수수께끼’ 전시회

수수께끼 같다.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에 있는 상설 전시관 ‘빛의 시어터’를 찾는 사람이라면 공간과 시간 그리고 소리가 서로 얽히고 변주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몰입형 미디어 아트(Immersive Media Art) 전시의 특성이다.

전시실에 입장하는 순간 수십 대의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싸여 역동하는 미술 작품과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형이상학적인 풍경이 폭우처럼 쏟아지고 어둠 속에 얼굴을 감춘 스피커에선 록(Rock) 음악이 압도적인 빛처럼 번쩍인다.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광활한 전시실 이곳저곳을 관람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관람 경로 따위는 없다. 사방의 빛이 시시때때로 이동하면서 전혀 낯선 공간이 자꾸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끝없는 수수께끼에 들어선 것이다.

지난 14일 티모넷이 개최한 새 전시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Dali, The Endless Enigma) 개막 사전 행사는 빛의 시어터가 선보인 두 번째 기획 전시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빛의 시어터는 60년의 역사를 지닌 기존 워커힐 시어터의 공간을 재해석해 냈다.

총 면적 1500평, 최대 높이 21m에 달하는 압도적인 전시실 규모를 그대로 살려내 세계 수준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특히 15일부터 공식 론칭한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 전시회는 몰입형 미디어 아트의 특성을 120% 보여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독창적인 작품을 빛과 음악 그리고 디지털 기술로 구현해 냈다.

달리는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미래주의, 야수주의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달리는 현실, 의식, 환상, 기억의 신비를 혼합하해 60년 가까이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빛의 시어터라는 공간이야말로 거장의 60년 작품을 제대로 만끽할 최고의 전시회다.

몽환적 작품세계 35분간 만끽

관람객들은 빛의 시어터 공간을 가득 채운 초현실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풍경 속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다. 천장을 제외한 사방이 모두 달리의 작품으로 가득 차오른다. 최대 높이 21m의 거대 작품이 성큼 걸어 나오기도 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미디어 아트 특유의 역동성이 강렬하다.

전시는 콧수염으로 대표되는 달리의 개성과 그가 구현한 몽환적인 작품 세계가 35분 동안 쉴 새 없이 전개된다. 달리의 뮤즈이자 협력자였던 아내 갈라에 대한 사랑이 담긴 작품들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회화, 드로잉, 사진, 설치, 영상 등을 활용한 시퀀스는 제대로 된 볼거리를 선사한다. 관람객들은 실존하는 공간에 있지만, 달리의 작품(엄밀히 말하면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한 새로운 작품)을 통해 ‘괴짜’ 달리의 머릿속(상상과 무의식)에 들어온 것 같은 속임수를 경험한다. 달리, 빛의 시어터가 아니다.

세계적인 미술 전시 트렌드는 다양한 관객들과 예술적인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되고 공간은 설계된다. 과거 미술작품들이 앞에서 보던 일방통행식 전시였다면 오늘날 몰입형 전시는 상하좌우 발아래까지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둔다. 이렇게 되면 관람객은 이동하는 동선에 따라 자신만의 전시 경로를 구축할 수 있다.

또한 주변을 살펴보고 다른 관람객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상호작용도 할 수 있다. 관람객 사이의 관계와 공통의 경험이 빛의 시어터가 주는 색다른 매력이다. 이는 관람객이 전시의 주변인이 아닌 전시의 주역이자 중심으로 걸어나간다는 의미다. 실제 관람객의 예측불가능한 움직임은 전시기획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달리가 평소에 바라는 바다.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군중, 내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작품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그들의 시선과 생각은 내 작품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이단아’ 핑크 플로이드 음악 접목

빛의 시어터는 ‘음악의 시어터’이기도 하다. 몰입형 전시에서 눈으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로 듣는 소리를 통해 감정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도 관건이다. 전시 운영사인 티모넷도 기획단계부터 이 부분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트 디렉터인 지안프랑코 이안누치는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사운드 트랙을 선택했다. 전시 시간 내내 기술적인 실험을 통해 현대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핑크 플로이드의 경쾌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다.

달리와 핑크 플로이드를 한 데 모은 이유가 있다. 1965년에 결성된 핑크 플로이드는 이성적인 메커니즘을 거부하고 끊임없는 실험을 거듭한 음악사의 이단아이면서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뮤지션이다. 초현실주의적 접근 방식으로 대중 미술의 새 장을 연 달리의 환상적인 상상력과 닮은 꼴이다. 지안프랑코 이안누치 아트디렉터는 20세기 예술과 음악의 상징적인 두 아이콘을 통해 초현실주의적인 접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어쩌면 빛의 시어터는 공간의 예술과 시간의 예술이 혼합되고 변주되는 ‘시공간의 집’을 짓고 있는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미술은 관람객이 한눈에 감상하는 공간적인 예술인 반면에 음악은 창작된 사운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즐기는 예술을 대표한다. 빛의 시어터에선 미술 작품이 음악처럼 흘러 다니고, 음악은 그림처럼 목도된다. 미술과 음악이 건축물과 같이 차곡차곡 쌓아져 융기하는 것이다.

실험적인 ‘상상의 건축’으로 만난 천재들

우연찮게도 달리와 핑크 플로이드는 ‘건축’이라는 테마와 인연이 깊다. 달리는 극장과 박물관을 짓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지난 1974년에 개관한 ‘달리 극장-박물관’은 달리의 마지막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손꼽는다.

1960년부터 15년에 걸쳐 달리가 온 열정을 쏟아 직접 디자인하고 감독 관리한 것으로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 예술 작품이 됐다. 핑크 플로이드도 건축으로 연결되는 탄생 비화가 있다. 결성 당시 멤버들 모두 건축학과 학생들이었다. 실험적인 건축물을 상상하듯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낸 20세기의 천재들이었다.

달리의 끝없는 수수께끼가 35분 동안 전개된 뒤에는 10분의 Short Show가 펼쳐진다. 바로 스페인의 상징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우디 : 상상의 건축가(Gaudí : The Architect of the Imaginary)’ 기획 전시다.

가우디(1852~1926)의 건축이야말로 상상으로 지은 시공간의 결정체가 아닐까. 가우디의 쌍곡선 아치, 비스듬한 기둥, 물결형의 외벽이 빛의 시어터 안에서 율동하고 행군한다. 달리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가우디로 가득찬 빛의 시어터는 인류의 최강의 무기인 상상으로 설계하고 디지털 기술로 건축한 시공간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날 기자간담회장에서 박진우 티모넷 대표는 “2018년부터 제주 ‘빛의 벙커’를 시작으로 몰입형 디지털 아트를 시작했다”며 “몰입형 아트는 미술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도 오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조금 더 쉽게 예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달리: 끝없는 수수께끼’ 전시는 지난 15일부터 광진구 워커힐 호텔앤리조트 내 상설 전시관 ‘빛의 시어터’에서 관람 가능하다.

- 글: 이권진 기자, 사진 : 황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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