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키워내 팝의 주류로 급부상
‘컨셉트의 달인’ 민희진 대표 합류
‘빅히트→하이브’로 리브랜딩 주도
상장대박, 걸그룹 뉴진스 스타트
친근한 아이돌에 잘파세대 홀릭
앨범 나오자마자 K-팝시장 장악

뉴진스
뉴진스

더 걸 원은 민지였다. 2019년 9월 3일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 2개가 올라왔다.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의 티저 홍보 영상이었다.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K-팝 걸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이벤트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호주와 대만 그리고 일본을 돌면서 10월 5일부터 27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영상 속엔 낯선 소녀 한 명이 있었다. 길이는 짧았고 설명은 없었다. 소녀는 단지 “더걸 1”이라고 불렸다. 한 가지는 미뤄 짐작이 가능했다. 그때 이미 K-팝 걸그룹의 최정상이었던 블랙핑크와는 완전히 다른 컨셉이라는 사실이었다. 블랙핑크는 2018년 6월 발표한 대표곡 뚜두뚜두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거침없이 직진 굳이 보진 않지 눈치. 원할 땐 대놓고 뺏지. 착각하지마 쉽게 웃어주는건 날 위한 거야.” 반면 영상 속 더걸 1은 여름 햇살 아래 수영장 주변에서 하릴 없이 물방울 장난을 치며 미소 짓고 있었다. 3년 뒤 2022년 7월 22일 뉴진스로 데뷔할 김민지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방탄소년단을 키워냈다. 당시 이미 BTS는 K-팝 보이그룹의 전설적 존재가 돼 가고 있었다. 2년 뒤인 2021년엔 BTS는 다이나마이트로 그래미어워드의 후보가 된다. K-팝을 팝의 주류로 격상시킨다.

그렇지만 빅히트엔터테인먼트한텐 또 다른 숙제가 있었다. 상장이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그리고 YG엔터테인먼트 같은 1세대 K-팝 기획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주식상장 관문을 통과하는 것이 필수였다. 투자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상장은 필수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한텐 BTS라는 빅히트가 있었다.

BTS외 포트폴리오 확장 시급

포트폴리오 확장이 시급했다. 걸그룹을 빅히트시켜야만 했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창업자 겸 총괄프로듀서가 찾은 답은 멀티레이블 전략이었다. 레이블이라고 불리는 여러 독립 음반사들을 산하에 두고 다양한 음악과 댄스 그리고 팀을 동시 개발하는 것이었다.

BTS 빅히트 덕분에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이때 이미 시리즈D 단계로 상당한 자금을 확보한 상태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쏘스뮤직과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그리고 KOZ 같은 레이블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론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BTS 원팀 회사에서 벗어나려면 멀티레이블 체제를 구축하는 건 전공필수과목이었다. 멀티레이블 체제가 수단이라면 목표와 결과는 걸그룹 개발과 성공이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걸그룹마저 빅히트시킨다면 명실상부 K-팝 시장의 신흥 강자가 될 수 있었다. SM과 JPY 그리고 YG는 모두 같은 경로를 밟았다.

한때 빅뱅을 성공시킨 남성그룹 명가로 통했던 YG는 지금은 블랙핑크라는 글로벌 걸그룹의 소속사로 통한다. 블랙핑크 역시 데뷔 초에는 빅뱅 YG가 만든 걸그룹으로 통했다. K-팝 업계에서 뉴진스가 BTS 소속사가 준비하는 걸그룹으로 소문 났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플랫폼화했다. 빅히트는 여러 레이블 중 하나로 남고 상위 개념인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름인 하이브다. 하이브로 리브랜딩하는 과정에서 합류한 인물이 뉴진스를 탄생시킨 대퓨님 민희진 어도어 대표다. 민희진 대표의 별명은 대퓨님이다. 뉴진스 멤버 중 한 명인 하니가 민희진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다가 대퓨님이라고 오타를 내는 바람에 그렇게 불리게 됐다.

지금은 뉴진스 인스타그램에도 대퓨님이라고 쓰여진 캡모자 사진이 올라올 정도로 보통 명사화됐다. 정작 민희진 대표가 처음부터 대표였던 건 아니었다.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에 CBO로 합류했다. 방시혁 창업자가 민희진 대표한테 요구한 최우선 미션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하이브로 새롭게 리브랜딩하는 것이었다. 하이브라는 이름부터가 민희진 대표의 아이디어였다. 하이브란 쿨하고 세련되고 핫하고 트렌디하다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뉴진스의 히트곡 중 하나인 하입보이와 같은 세계관이다.

비주얼 장착한 K-팝 창출

민희진 대표는 K-팝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역할을 구축한 장본인으로 평가 받는다.  민희진 대표는 2002년 SM엔터테인먼트의 공채사원으로 입사했다. 시각디자인 전공을 살려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앨범 자켓 작업과 행사 포스터 작업이 주요 업무였다.

음악은 듣는 것만이 아니다. 보고 듣는 것이다. K-팝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비쥬얼이 점점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소비자들한테 어떻게 보이는가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민희진 대표는 새로운 K-팝 팀을 개발하는 초창기부터 비쥬얼 비쥬얼 디렉터 역할을 하게 됐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는 컬쳐테크(CT)라는 표현을 자주 썼었다. 컴퓨터 기반의 IT나 바이오 기반의 BT와 같은 CT라는 개념을 제안했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K-팝 그룹 NCT가 그 결과물이다. NCT는 네오 컬쳐 테크놀로지의 약자다. CT의 핵심은 음악과 댄스 그리고 패션과 마케팅이 고도로 분업화되고 산업화되는 것이다. 천재 싱어송 라이터가 우연히 창조하는 히트곡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소가 각각 생산되고 조립되는 것이다.

CT에서 중요해지는 건 컨셉팅이다. 어떤 컨셉을 잡느냐가 결국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이다. 민희진 대표는 2018년까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여러 K-팝 그룹의 컨셉을 잡았다. 소녀시대와 f(x) 그리고 레드벨벳이 대표적이다. 특히 민희진 대표는 걸그룹 컨셉팅에서 탁월한 성과를 발휘했다. 소싯적엔 블랙핑크나 뉴진스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소녀시대의 컨셉트도 민희진 대표의 작품이었다.

하이브 사옥 전경
하이브 사옥 전경

2019년 당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한 민희진 대표는 방시혁 창업자와 함께 새로운 걸그룹 컨셉팅을 시작한다. 2019년 10월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빅히트의 1순위 걸그룹 프로젝트는 뉴진스가 아닌 르세라핌이었다. 물론 당시뉴진스도 르세라핌도 이름도 컨셉도 없는 단계였다.

다만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인수된 쏘스뮤직이 새로운 걸그룹을 개발하고 있는 정도였다. 쏘스뮤직의 소성진 대표 역시 이미 여러 번 걸그룹을 성공시킨 업계 최고 선수였다.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도 쏘스뮤직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들을 선정하고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2가지 서로 다른 컨셉트가 발전하기 시작했다. 르세라핌과 뉴진스라는 하이브 산하 양대 걸그룹이 된 컨셉트였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10월 13일 코스피 상장에 성공한다. 공모주 청약에서만 58조 원 이상을 모으면서 대박을 냈다. BTS는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코로나가 유발한 초저금리는 빅히트의 상장 빅히트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줬다 빅히트 주가는 상장 첫날 상한가인 35만1000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상장에 성공하면서 빅히트한텐 다소 여유가 생겼다. 하이브로 리브랜딩하고 걸그룹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데 좀 더 공을 들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이브는 2021년 11월 쏘스뮤직에서 어도어를 물적분할한다.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 CBO에서 어도어의 CEO로 자리를 옮긴다. 하이브 안에 르세라핌과 뉴진스라는 걸그룹 멀티레이블이 자리 잡은 것이다.

뉴진스는 더걸 1이었던 김민지를 중심으로 플러스 글로벌 오디션 등에서 선발된 4명의 멤버로 완성됐다. 뉴진스라는 그룹명부터 5명이라는 숫자까지 민희진 대표가 처음부터 정해뒀던 것이었다. 토끼라는 아이콘과 음악 컨셉트까지도 마찬가지다. 컨셉팅의 달인으로 통하는 민희진 대표가 구축한 세계관이다.

뉴진스는 2022년 7월 22일 데뷔했다. 데뷔 당시 뉴진스의 평균 연령은 16세였다. MZ세대가 아니라 알파세대다. 뉴진스가 타기팅하는 소비자가 기존 K-팝 걸그룹에 비해 확연히 젊다는 의미다. 뉴진스라는 이름 그대로다. 뉴진스는 새로운 청바지와 새로운 제너레이션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뉴진스의 컨셉트는 미래적이기보단 복고적이다. 1979년생으로 X세대인 민희진 대표의 90년대 복고풍이 넘치게 녹아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차별화 덕분에 뉴진스는 4세대 아이돌로 분류된다. 세대와 컨셉트가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의미다.

아이돌·팬덤 동기화가 성공공식

이미 K-팝 여성 시장의 주류 소비자는 더 이상 남성만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2NE1과 블랙핑크 이후 여성그룹 팬덤의 주류는 여성으로 바뀌었다. 여성 팬덤이 여성 그룹에게 원하는 건 공감이다. 팬들은 아이돌에게 공감하고 아이돌이 자신에게 공감해주길 원한다. 아이돌과 팬덤의 동일시와 동기화는 BTS가 입증한 성공 방정식이다.

BTS와 아미는 서로에게 공감하며 함께 성장했다. 여성 K-팝 시장에선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세대 공감이다. 아이돌은 더 이상 우상이 아니다. 아이돌이라는 명칭부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신 또래 친구거나 멋진 언니다. 만난 적도 없는 인스타그램 친구에게 좋아요를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팬들이 원하는 것도 같은 세상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공감 의식이다.

지난 7월 21일 데뷔 1주년에 맞춰 공개된 뉴진스 2집 타이틀곡 ETA의 포인트는 음악과 춤만이 아니었다. 아이폰 14 프로로 촬영한 컨셉트였다. 알파 세대한테 아이폰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아이폰으로 무언가를 찍고 촬영한다는 건 숨을 쉬는 것과 같다. 뉴진스는 아이폰으로 촬영된 뮤직비디오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팬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덕분에 뉴진스는 팬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스타가 아니라 팬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뉴진스 개개인은 구찌와 디올과 버버리와 루이비통의 글로벌 앰버서더들이다. 그렇지만 럭셔리 마케팅에서도 뉴진스는 3세대 아이돌들에 비해 화려하기보단 일상적이다. Z세대와 알파 세대를 더한 잘파 세대는 더 이상 명품을 선망하기만 하는 세대가 아니다. “너도 갖고 싶지?”라고 과시하는 게 아니라 “너처럼 나도 갖고 있어”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뉴진스가 두 번째 앨범에서도 대박을 내면서 K-팝의 주도권은 확실하게 하이브로 넘어갔다. 4세대 아이돌의 시대도 본격화됐다. 하이브는 K-팝의 원조인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결국 카카오한테 고배를 마셨다. K-팝의 태조인 이수만 회장이 하이브 방시혁 창업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결국 카카오가 이겼다. 그렇지만 이미 방시혁 창업자는 민희진 대표와 함께 SM이 구축해온 CT를 더 정교하게 실현하고 있다. 하이브는 K-팝 산업계의 뉴진스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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