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大·中企 기술분쟁 상생 합의… 실효성 확보는?
‘사업철수’ 사후해석 애매모호
‘확정적’ 아니면 분쟁재연 소지
중기부 조정 통해 신고 취하시
특허청⋅공정위도 보조 맞춰야
엇갈린 행정조사 결과 나오면
대기업에 사업재개 빌미 제공
피해中企 형사고소에도 한계
정부차원 통합부서 신설 시급

지난 5월 30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손배소송 행정조사자료 활용 입법 세미나’가 열렸다.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 장태관 재단법인 경청 이사장 등이 기술탈취 손배소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손배소송 행정조사자료 활용 입법 세미나’가 열렸다.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 장태관 재단법인 경청 이사장 등이 기술탈취 손배소송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상생·상호 합의” “대기업 사업 철수”…. 최근 대·중소기업 기술탈취 분쟁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다. 지난 23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 간 기술 분쟁이 중소기업 기술분쟁 조정을 통해 최종 종결됐다고 밝혔다.

알고케어는 개인 맞춤형 영양관리 디스펜서를 개발·판매하는 스타트업이다. 롯데헬스케어가 올해 1월 ‘CES 2023’에서 알고케어의 제품과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알고케어의 정지원 대표는 반년 넘게 언론과 국회·정부 등을 찾아다니며 대기업의 기술 도용 의혹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해 왔다.

이번 최종 종결의 핵심은 양사가 합의한 조정안에 있다. 중기부가 공개한 조정안은 △롯데헬스케어의 영양제 디스펜서 사업 철수 △상호협력 및 상생 노력 △소모적 비방 금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월 중기부는 알고케어의 기술침해 행정조사 신고를 접수한 뒤로 행정조사를 착수하면서 당사자간 조정절차 참여를 설득했다. 이유는 기술탈취 조사과정에 수반되는 소모적 대립 장기화가 자칫 중소기업에게 큰 타격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기부의 기술분쟁조정제도는 법원판결에 비해 금전적, 시간적 부담을 덜 수 있는 ‘대체적 분쟁 해결 수단’이다.

지난 6월에도 중기부 조정제도를 통해 스타트업인 프링커코리아와 LG생활건강 사이의 유사 제품 출시에 따른 아이디어 베끼기 분쟁을 종결하는 극적인 상생합의를 이뤄내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탈취 법률 소송 관련 전문가와 피해 중소기업 대표들은 “쌍방 합의 종결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지만, 합의된 내용(조정안)의 실효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대·중소기업 간의 최종합의가 진정한 의미의 분쟁 해결 수단으로 정착되려면, 중소기업이 어떠한 부분을 면밀하게 확인해야 할까? 또 현행 기술탈취 관련 법적·제도적 보완 장치가 수반돼야 할까?

상생합의 조건 명확히 규정해야

올해 들어 대기업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 기자회견 및 국회 토론회 등을 연달아 열며 기술탈취 이슈 분쟁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대기업이 조정안에서 약속하는 ‘사업 철수’의 사후 해석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박희경 변호사는 “해당 사업 철수라는 의미를 ‘확정적 철수’인지, 아니면 ‘잠정적 철수’인지 자세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와 특허청 행정신고도 모두 취하를 하거나 마무리가 된 상태라면 사업철수는 확정적 철수로 깔끔하겠지만, 그 반대라면 사업 철수를 두고 나중에 다시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기술탈취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이 기술침해 신고시 중기부를 비롯해 특허청과 공정위를 통해 절차를 함께 밟게 된다.

우선 특허청의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영업비밀 침해와 공정위의 공정거래법상 사업활동 방해(기술의 부당이용)의 방향으로 가장 많이 이뤄지는데 전자는 일선 경찰서 또는 특허청에, 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각각 신고서 내지 고소장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피해 중소기업이 중기부 조정제도를 통해 신고가 취하되고 대기업의 사업철수 합의를 얻어낼 경우 특허청과 공정위의 행정조사를 종결할지 말지와 만약 두 기관의 행정조사를 그대로 진행한 결과를 어떻게 상생합의에 반영할지 등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만약 이를 놓치게 된다면 대기업이 사업 재개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된다.

박희경 변호사는 “만에 하나라도 다른 관할 행정조사 결과에서 대기업 측이 기술침해 사실이 없다는 결론이 일부 나게 되면 앞서 합의한 사업철수의 효력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상생합의를 할 때 사업철수에 대한 작은 분쟁의 불씨를 남겨선 안 된다는 조언이다.

앞서 상생합의의 사례로 언급한 알고케어의 경우 이번 중기부의 조정제도를 통해 롯데헬스케어 측의 사업 철수를 이끌어내면서 현재 진행 중인 공정위와 특허청 행정조사의 결과로 인해 사후 사업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약속까지 받았다.

결국 정부 주도의 상생합의가 대·중소기업의 기술탈취 분쟁을 일단락하는 중요한 제도임에도 유의미한 상생협력의 결과물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이에 부합하는 핵심 조항과 내용이 잘 구성이 됐는가를 검증해야 한다.

사업철수 선언 후 소송 거는 대기업

사업 철수까지 선언한 대기업이 다른 법률상의 분쟁을 중소기업과 합의 종결하지 않고 굳이 다툼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또 다른 숨은 의도가 있어서다. ‘진실 공방’을 통해 얻게 되는 임원진의 실익과 향후 사업 재개의 실마리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익명의 로펌 관계자는 “당장은 대외적인 대기업 이미지 때문에 경영진 차원에서 사업철수를 선언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계속 싸워가면서 분쟁 사업을 총괄했던 사업부 임원은 내부적으로도 ‘기술침해 책임이 없다’는 명분을 회복할 기회가 발생하고, 추후에 유사 사업을 추진할 동력도 얻을 수 있다”라며 “여기에는 대기업이 행정조사와 각종 형사 소송전에 있어 비용 부담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실제로 기술탈취 분쟁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언론이나 정부와 국회 등에 피해 사실을 호소하는 행위만으로 일부 대기업은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업무방해죄로 대형 로펌을 앞세워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는 실정이다.

물론 악의적인 허위사실 유포는 형사고소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정당한 피해사실의 호소는 종국적으로 ‘협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문제는 대기업의 법률 대리인인 대형 로펌에 의해 중소기업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몇 번 조사를 받게 되면 심리적으로 상당한 위협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술탈취 법률 분쟁 안에서도 대·중소기업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연출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박희경 변호사는 “중소기업이 심리적으로 위축이 돼 있는 과정에서 대기업과의 상생합의를 해서는 안 된다”라며 “대기업의 형사고소 이전이나 고소 취하 이후 양사가 상생협력 테이블에서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4월 1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 나서 롯데헬스케어와의 분쟁 상황과 피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가 지난 4월 1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 나서 롯데헬스케어와의 분쟁 상황과 피해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정부차원 통일된 절차 필수

대기업이 자본의 힘으로 중소기업을 얼마든지 소송전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반면에 피해 중소기업이 기술탈취에 대해 직접 형사고소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현재 특허청의 부정경쟁 방지법상의 영업비밀은 피해 중소기업이 이를 직접 형사고소가 가능한 구조이지만 △하도급법상의 기술 침해(기술자료 유용) △상생협력법상의 기술침해(기술자료 유용)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아이디어, 데이터, 성과물 침해의 경우에는 피해기업이 이를 직접 형사고소를 할 수 없다.

기술탈취 피해 당사자가 형사고소를 할 수 없는 이유는 해당 법률들의 구조적 한계에 따른다. 하도급법상의 기술침해의 경우 공정위에게 전속 고발권이 있다. 따라서 공정위가 행정조사 완료 후 기술 유용행위가 있다고 판단한 이후에 직접 고발하는 구조다.

다른 상생협력법상의 기술침해와 부정경쟁방지법상의 아이디어, 성과물의 경우에는 형사처벌 규정 자체가 아예 없다. 피해 기업이 억울한 일을 겪어도 형사고소를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 중소기업은 분쟁의 억울함을 직접 문제제기할 수 있는 형사고소의 주도권 없이 되레 대기업에 형사고소를 당하면서 또 다른 막대한 법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피해 중소기업의 형사고소가 제한적이기에 대기업은 법적 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송전에 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희경 변호사는 “어느 법률을 근거로 하는지, 해당 기술탈취 분쟁 관할이 중기부, 특허청, 공정위 어느 곳인지를 불문하고, 일단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이를 원스톱 체제로 접수하는 정부 차원의 통일된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라며 “아울러 치열하고 힘든 분쟁이 시작되기 이전에 당사자간의 긴밀한 소통과 상생의 장을 조정하게 되는 전담 전문부서(인력)의 신설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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