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식재료·오더메이드로 급성장
경쟁자에 밀려 매출 10년 새 반토막
사모펀드 로어크캐피털에게 매각
공격적 드라마 PPL, 한국시장 공략
중국영토 확대로 제2도약 승부수

서브웨이가 팔렸다. 서브웨이는 지난달 24일 사모펀드 로어크캐피털한테 매각됐다. 인수금액은 96억달러였다. 한화로 13조원이 좀 못 된다. 서브웨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샌드위치 가게다. 미국 매장수만 2만810개에 달한다. 서브웨이 같은 F&B 업체가 사모펀드에 팔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먹고 마시는 소비재는 사모펀드가 바이아웃하기에 적절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바이아웃은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서 기업 가치를 높여서 되팔거나 상장시키는 투자 전략을 뜻한다.

로어크캐피털은 F&B 바이아웃으로는 정평이 나 있는 선수다. 이미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를 인수해서 바이아웃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스크림과 도너츠에 이어 샌드위치까지 더한 것이다. 로어크캐피털의 서브웨이 인수는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다. 1년 동안의 기업 실사 작업이 필요하다. 최종 인수 완료는 2024년 8월이다.

사실 서브웨이는 사모펀드 업계에선 주요 매물로 꼽혀온 아이템이었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로어크캐피털 뿐만 아니라 TDR캐피털과 시카모어 파트너스처럼 유력한 경쟁자들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바이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들이다. 그만큼 서브웨이는 먹음직한 샌드위치였다는 뜻이다.

이유는 서브웨이가 사실상 50년 동안 가족경영으로 유지돼왔기 때문이다. 상장도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 시장까지 진출해서 매장을 473개 운영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가 반세기 동안 가족경영이면서 비상장 회사로 유지돼온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경영혁신의 여지도 많고 상장을 통한 가치상승의 여력도 크다는 의미다.

고교생·핵물리학자 공동창업

서브웨이는 지난 1965년 작은 샌드위치 구멍가게에서 출발했다. 창업자는 2명이었다. 1명은 17세의 고등학생이었다. 다른 1명은 고등학생 아빠의 친구였다. 당시 고딩이었던 프레데릭 드루카는 의대 지망생이었다. 의대를 가려고 학자금을 모으다가 아빠 친구인 피터 벅을 만났다. 프레데렉 드루카의 아버지와 피터 벅은 절친한 사이였다. 가족끼리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렇지만 어울리지 않는 사이였다. 피터 벅은 저명한 핵물리학자였다. 오펜하이머의 후예였던 셈이다. 반면 프레데릭 드루카 집안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노동자 계층이었다. 어쩌다 아버지들끼리 친해져서 가족끼리 가까운 사이가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한 건 고등학생 프레데릭 드루카가 아빠 친구인 피터 벅에게 학자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피터 벅은 친구 아들에게 학자금을 대출해주는 대신 동업 제안을 했다. 피터 벅은 핵분열보단 자본분열에 더 관심이 많은 핵물리학자였다. 늘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피터 벅한텐 아이템도 있었다. 메인주를 방문헀다가 우연히 맛본 샌드위치를 보고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필요한 프레데릭 드루카의 노동력과 자본과 아이템이 있었던 피터 벅의 비즈니스 결합이었다. 스타트업 창업자와 엔젤 투자자의 전형적인 결합이었다. 피터 벅은 프레데릭 드루카에게 1000달러를 투자했다. 당시로선 거액이었다. 드루카는 학자금을 빌리려다가 사업자금을 얻은 셈이었다.

잠수함 닮은 샌드위치 입소문

1호점은 코네티컷주 브릿지포트에서 열었다. 첫날에만 300여개가 팔렸다. 그렇지만 개업 효과였다. 3개월만에 문을 닫아야만 했다. 사업 경험이 없는 창업자들이 첫 샌드위치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드루카는 피터 벅한테 또 투자를 받았다. 2호점이었다. 이번에도 망했다. 1호점보다 더 처참했다. 1968년 3호점이 성공할 때까지 3년 넘게 헤맸다.

이때부터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다. 우선 가게 이름부터 어려웠다. 피트의 샌드위치 가게였는데 너무 길고 복잡했다. 맛도 그저 그랬다. 차별성과 경쟁력이 분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등학생 사장이 하는 가게가 차별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대신 드루카는 근방에서 최상의 식재료를 구해왔다. 이걸 손님들이 직접 선택하게 만들었다. 오더 메이드였다. 이걸 길쭉한 빵에 넣어서 샌드위치로 만들었다. 맛을 손님이 직접 결정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긴 샌드위치 모양이 마치 잠수함 같았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서브웨이라고 바꿨다.

1968년 3호점이 겨우 자리잡으면서 서브웨이는 법인화됐다. 이때 법인명은 닥터스 어소시에이션이었다. 의대 지망생인 프레데릭 드루카와 핵물리학 박사인 피터 벅이 창업한 회사여서 의사와 박사가 만들었다는 얘기였다. 일단 자리를 잡은 서브웨이는 차곡차곡 직영점을 늘렸다. 신선한 식재료와 오더메이드 그리고 잠수함 모양이 경쟁력이었다.

당시는 미국 시장에서 F&B 프렌차이즈가 성장하던 시기였다. 맥도날드가 프렌차이즈된 시기가 1955년이었다. 당시 53세였떤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 형제의 햄버거 가게를 프렌차이즈화해서 미국 전역으로 확대했다. 1960년대는 프렌차이즈 전성시대였다. 모두가 맥도날드 프렌차이즈가 되고 싶어했다. 서브웨이는 뒤늦었지만 1974년 1호 프렌차이즈점을 냈다. 서브웨이 잠수함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상승하던 시기였다.

서브웨이의 글로벌 매장수는 가장 많았던 때가 3만7000개까지 늘어났었다. 글로벌 104개국에 진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 매장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2만개 남짓이다. 지하철역에서 출퇴근 직장인과 대학생들을 겨냥하는 마케팅을 했다. 서브웨이의 진짜 의미가 지하철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서브웨이는 미국의 김밥집이라고 할 수 있다. 원리도 가격도 비슷하다. 길쭉한 김밥처럼 길쭉한 샌드위치 모양이기 때문이다. 납작하고 동그란 햄버거와는 형태와 내용 모두 다르다. 무엇보다 서브웨이는 맛을 손님이 결정하게 만든다. 햄버거가 패스트푸드라면 서브웨이는 커스텀푸드다.

가격은 미국에선 매우 저렴하다. 30센티미터 길이 샌드위치가 8달러 이하다. 게다가 햄버거가 세로쌓기라면 샌드위치는 가로쌓기라고 할 수 있다. 서브웨이는 가로쌓기를 아예 매장 형태로도 연결시켰다. 손님과 점원이 서로 마주보고 식재료를 선택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샌드위치가 완성되는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서브웨니는 1970년대에 이런 방식을 완성한 이후 40년 넘게 고스란히 유지해왔다.

서브웨이의 글로벌 매장수는 가장 많았던 때가 3만7000개까지 늘어났었다. 글로벌 104개국에 진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 매장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서브웨이의 글로벌 매장수는 가장 많았던 때가 3만7000개까지 늘어났었다. 글로벌 104개국에 진출했다. 이 중에서도 미국 매장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멕시칸 패스트푸드의 역습

서브웨이의 매출은 2012년 180억달러까지 찍었다. 정점이었다. 그 뒤론 내리막길이었다. 2022년 서브웨이의 매출은 98억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잠수함이 수면 아래로 잠수해버린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경쟁 격화다. 일단 강력한 경쟁자인 치폴레가 급부상했다. 치폴레는 1993년 스티브 엘스가 창업한 프렌차이즈다. 오더 메이드라는 점에서 서브웨이와 매우 유사하다. 대신 더 맛있고 더 저렴하고 더 양이 많다.

무엇보다 멕시칸 패스트푸드다. 현재 미국 내 라틴계 인구 비중은 20% 이상이다. 6200만명에 달한다. 치폴레는 라틴계뿐만 아니라 여러 이민자 소비자들한테 인기다. 서브웨이가 유럽식 샌드위치를 재해석한 것이라면 치폴레는 라틴계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다. 치폴레라는 이름부터가 멕시칸 할라피뇨를 뜻한다.

샌드위치의 경쟁자는 샌드위치만이 아니다. 퀴즈노, 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 쉐이크쉑 같은 햄버거 브랜드들도 약진했다. 이들은 프리미엄한 맛과 가격으로 서브웨이의 소비자들을 가져갔다. 저렴한 이미지의 서브웨이는 외면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서브웨이의 약점은 속도였다. 오더메이드는 이미 만들어져서 나오는 맥도날드 같은 햄버거에 비해 제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손님의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서브웨이는 점심 시간에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패스트푸드가 아닌 것이다.

‘얼굴깡패’ 차은우가 모델

2010년대에 서브웨이가 돌파구를 찾은 건 해외 진출이었다. 한국도 그 중 하나였다. 사실 서브웨이가 맨 처음 한국에 들어온 건 1990년이었다. 이땐 라이센스였다. 결국 로열티 지급 문제 등이 꼬이면서 한국 사업도 혼란해져 버렸다. 서브웨이가 다시 한국에 직진출한 건 2009년이었다. 2014년 100호점을 돌파할 정도로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무엇보다 드라마 PPL을 공격적으로 하면서 시장 확대를 노렸다. 온갖 드라마에서 서브웨이가 등장했다. 한국 히어로인 도깨비도 드라마에선 김밥 대신 샌드위치를 선물로 전할 정도였다. 결국 400개 매장을 넘어서면서 웬만한 햄버거 가게만큼 자주 보이게 됐다. 현재 서브웨이의 광고 모델은 얼굴 깡패 차은우다. 김밥 대신 샌드위치로 식사를 때우는 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을 노리는 것이다.

정작 서브웨이는 한국에선 그다지 저렴하지는 않다. 이것저것 고르다보면 1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다. 당연히 마케팅비가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서브웨이 입장에선 아직 치폴레 같은 경쟁자가 진출하지 않은 주요 시장이다.

이번 로어크캐피털에 인수되면서 서브웨이는 다시 한번 성장 기회를 찾게 됐다. 로아크캐피털한텐 서브웨이 말고도 아비스와 지미존스 같은 샌드위치 프렌차이즈가 있다. 샌드위치 성장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는 뜻이다. 로어크캐피털의 자산 규모는 370억달러 정도다.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와 햄버거와 치킨윙과 비비큐 같은 다른 F&B 브랜드들도 보유하고 있다.

로어크캐피털은 피트니스 체인점과 치과와 마사지까지 소비재 사업에 대해 광범위하게 투자하는 사모펀드다. 이런 시장을 흔히 무한 수요 시장이라고 본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고프고 아프며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1년 로어크를 창업한 닐 K 애런슨은 무한 수요 시장에 전문가다. US프렌차이즈 시스템이라는 호텔 전문 체인을 성공시킨 경험도 있다.

일단 로어크캐피털의 서브웨이 성공 전략의 중심엔 중국 시장이 있다. 로어크는 앞으로 서브웨이 글로벌 매장을 9000개 이상 늘리겠다는 게 목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중국이다. 전 세계 매장수는 6만개 이상 늘려잡을 작정이다. 지금의 2배에 가깝다.

물론 현재 중국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로어크의 서브웨이 성공 전략이 통할지는 알 수 없다. 부동산 디레버리징에 돌입한 중국 경제는 상당 기간 수요 위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국은 가계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소비 부진은 피할 수가 없다. 중국을 통한 서브웨이의 성장에는 부동산과 서브웨이의 샌드위치가 필요하다. 그것도 꽤 긴 샌드위치가 말이다.

- 신기주 지식정보플랫폼 ‘카운트’(Coun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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