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두들마을(두들에 위치한 원이 있던 마을, 원두들. 원리라 부른다)은 조선시대 때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들의 집성촌이다. 석계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 1640년), 석천서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등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다. 30여 채 정도 되는 촌락이었지만 300년의 세월 지나면서 명목도 잃는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오죽헌이다. 그래서 정작 더 가보지 않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한자를 풀어보면 ‘검은 대나무가 있는 정자’인데 원래는 까마귀처럼 검은 소나무가 많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신사임당(1504∼1551)과 율곡 이이(1536∼1584)라는 두 인물이 떠오른다. 귀에 익숙한 만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과연 그럴까?오죽헌(강릉시
한 겨울이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겨울의 한 모습이다. 예천을 간다. 그다지 빼어날 것 없는 그곳에 대한 기대도 없다. 여행이란 목적이 뚜렷해야 떠날 수 있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말이다. 풍기나들목을 나와 곤충박물관을 찾는다. ‘이 썰렁한 계절에 뜬금없이 무슨 곤충’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있다. 한 겨울에
겨우내 찌들었던 체증 탓에 몸과 마음이 개운치 않은 날의 연속이다. 일상의 돌파구를 찾고 싶으나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온 날이 하루이틀이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 이럴 때는 아주 가벼운 나들이를 하는 것이다. 여행이라고 준비할 필요도 없다. 가족 손 붙잡고 포천으로 가보자.불빛 천국 허
경주에 가서 신라음식을 만난다.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라선재’라는 곳에서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BC 57)로부터 경순왕(AD 935)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신라. 지금으로부터 1000년도 넘은 그 시절의 음식은 어떤 것일까? 자료가 남아 있었나? 궁금증과 호기심 가득 안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의 문을 두드린다.보문관광단지내에 한
아듀~~2009년, 그리고 웰컴 2010년이여. 연초에는 늘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진다. 유명 일출명소를 찾거나 그저 발길 닿는 곳에서 행운의 일출을 맞이하면 더욱 좋으리. 일출을 보러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강릉의 금진항 언덕 위에 선다. 오메가 일출이 떠오른다. 높은 구름층 탓에 포기했던 해맞이. 호랑이해, 독자들도 이렇듯 예상 밖의 희망이 솟구치길
겨울 비가 내린다. 뜬금없이 내린 비처럼 목적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분명 영상테마파크라는 팻말을 봤음에도 길은 엉뚱생뚱하다. 비가 내리는 겨울날, 잠시 길을 잃어 버렸다. 그렇게 헤매다 보니 영산강을 따라 가고 있다. 그러다 홍어거리라는 팻말을 만나게 된다.홍어거리의 첫 방문은 신기했다. 매캐한 홍어냄새가 빗속으로 코끝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아주 오래전부
무등산 자락에 있는 증심사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냥 떠나오기 아쉬워서 두 번이나 증심사로 달려간다. 증심사에 멈추려던 계획을 바꿔 우선 약사암(062-222-9844)으로 방향을 튼다. 1km가 채 안되는 거리임에도 가파른 새인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은 한참이나 이어진다. 새로 지은 듯한 건물이지만 경내에는 오래 묵은 삼층 석탑이 남아 이
광주의 대명사, 무등산(1,186.8m). 참으로 익숙한 산이다. 광주 사람들이야 이웃 산이겠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어찌 그러겠는가? 그곳을 갔다가 의재 허백련 선생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증심사 오르는 길목에 의재 허백련 선생 미술관이 있다. 귀에 익숙한 이름. 진도 소치 선생과 연계가 있는 것일까? 또 궁금증이 스멀스멀 고개를 쳐들고 있다. 사람의 인생을
광주는 우리나라 5대 직할시로 복잡하다. 그런데 촌로들이 진출해 5일장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곳이 바로 말바우 시장이다. 이 겨울, 뜬금없이 말바우 시장을 찾는다. 마침 장날(2일, 4일)인지 장터 주변은 생기가 넘쳐난다. 큰 거리 주변은 물론 좁은 골목골목 마다 난전이 진을 치고 있다. 생동감이 넘치는 난전을 보면서 주차장을 찾는다. 사람들이 와글거리지만
중경에도 남산이 있다. 서울 남산은 명동의 번화한 곳에 있지만 중경은 한강 너머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경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그 산정에 중국양생회관이라는 식당이 있다. 전통 복장을 한 할아버지와 예쁜 젊은 여성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여느 식당과 느낌이 다르다. 그저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노
자기구(磁器口, ciqikou, 츠치코, 중경시 사평패구)는 시내에서 14km여서 20여분 정도만 가면 된다. 역사의 향기가 가득 배어 있는 자기구는 한마디로 매력이 넘친다. 가릉강변에 위치한 도심 속의 전통마을로 일명 골동품 거리라고 한다. 송대부터 번화한 옛 거리로 1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명나라 개국황제인 홍무제 주원장의 손자인 혜제가 숙부인 연
홍애동(洪崖洞, hongyadong)은 강변을 끼고 도로 건너편에 있어서 복잡한 도심을 그려내진 않지만 건물 뒤켠으로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홍애동의 건물은 매우 현혹적이다. 중경시 전통 건물인 적각루를 재현했다는데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역사유적지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예상을 뒤엎고 길게 쇼핑 단지가 이어진다. 층별로 다닥다
중경시내의 가장 번화가는 강북구다. 강북구는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다. 특히 거리를 활보하는 여인들이 아름답다. 흰 피부에 배가 나온 이가 없으며 각선미가 돋보인다. 옷 매무새에도 세련미가 느껴진다. 그렇다. 이곳은 서시의 고장 항주보다 더 미인이 많은 곳으로 소문난 지역이다. 안개가 많아 햇빛에 노출되지 않아 피부가 곱고 대부분 가파른 언덕이라 많이 걷기
‘으름’을 사들고 관람에 나선다. 엘리베이터 앞 유리창 앞으로 비경이 펼쳐진다 아찔한 절벽에 큰 구멍을 뚫어 놓은 듯한 석문. 눈으로만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의 크고 멋진 석문이다. 협곡의 양쪽은 모두 깎아 지른 절벽이 감싸 안는다. 먼지 풀석거리면서 한없이 내려 가는 길. 절경에 취한 채 연신 셔터를 누르고 있다. 저 멀리 발 밑으로는 잘 지어놓은 한옥이
숙소로 이동하면서 중국 시골에 잠시 차가 멈춘다. 선녀산 근처의 마을일 것이다. 한 민가에는 고부인 듯한 아낙 둘이서 담뱃잎 엮어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때 국물 줄줄 흘리면서 해맑게 웃는 사내아이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방인들이 신기한 듯 마냥 즐거운 듯 뛰어다닌다. 애가 둘이지만 피부가 하얗고 소박한 얼굴을 한 여인네, 사람이 오는지 마는지 열심히 일
중경(重慶, 충칭 Chongqing)을 갔다. 중경의 내로라 하는 관광지 무릉현에 있는 비경을 보기 위함이다. 인천 공항에서 근 4시간, 중경시내까지는 30~40분, 중경에서 무릉현까지 버스로 4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곳의 속살을 들여다보자. 무릉현은 중경에서 128km 떨어진 도시로 당나라(618~907)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고 북지리의 봉황산 중턱에 세운 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알려지기 전까지)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이 있는 곳이다. 절집 대웅전 왼편에는 떠 있는 돌이 있다. 돌이 떠 있어서 ‘부석’이라는 절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이 바위는 의상을 사랑하던 선묘아씨의 이야기가
고암 이응로(1904∼89) 선생에 대해 궁금해진 것은 대전시 취재 후였다, 시립미술관 옆에 있는 고암 이응로 선생 미술관을 찾게 된 것이다. 이응로 선생하면 우선 떠오르는 곳이 예산의 수덕여관이다. 수덕여관은 이응로 선생 본처 박귀옥 살았던 곳이고 그의 부인이라는 것은 인정해주는 것은 그 집 뒤안 우물가에 있던 암각화였다. 두개의 넓다란 바위에 독특한 문
단양읍내의 새로 단장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 터벅터벅 강변으로 나선다. 불볕 더위였는데 이상하리 만큼 저녁바람이 선선하다. 강변의 위력이 이런 정도였나? 에어컨 바람에 비할바가 아니다. 대교에 야경이 밝혀지고 강 너머로 세 개의 폭포수가 희미한 불빛을 받으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소읍의 밤이 낯설지만 그 낯섬 때문에 기분이 묘하게 좋아진다.익숙해지지 않으려